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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연말연시 클래식 음악 - 차이코프스키,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 (도라티)

by iMac 2016. 12. 24.


차이코프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전곡


안탈 도라티, 지휘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1975년, 필립스)




어느 새 훌쩍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은 연말이면 언제고 늘 관용구처럼 써먹던 말이지만 2016년은 상상이상으로 현실로 다가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고 크리스마스는 여지없이 다가온다. 과연, 내년 크리스마스쯤엔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정리되어 있을까?


세상은 어지럽지만 음악은 늘 세상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안이 되어준다. 이 무렵이 되면 이런저런 이벤트성 공연들이 이어지는데 클래식 음악에서라면 단연 '호두까지 인형'이다. 매년 이맘때면 반복되니 계속 보다보면 좀 지겹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이야기의 배경 자체가 크리스마스인 것을. 



도라티!



카라얀, 그리고 래틀


예전에는 발레음악 전곡 감상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희한한 고정관념인데, 교향곡이나 심지어 오페라도 전곡을 찾아들을 생각을 하면서도 발레는 뭔가 3류 장르라도 되는 양 그저 발췌버전 감상으로 때우곤 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다고 지금이라고 발레음악 전곡을 열심히 듣는다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특히나 차이코프스키의 너무나 유명한 3부작을 처음 접하고 계속 즐겨들었던 것이 카라얀의 모음곡 버전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카라얀의 관현악 모음곡 음반은(베를린 필, DG 60년대) 그 이전 시대의 유명 지휘자들이 으레 그러했던 경향대로, 8곡을 추려놓은 구성이다. 뭐, 모두 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선곡이고 워낙에 연주가 기가막혀서 사실 1시간 반이 넘어가는 발레음악을 다 듣기보다는 깔끔하게 이거 하나면 분위기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연주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정밀하고 철두철미하게 드라마틱하다. 이거에 맞춰서 실제로 춤을 출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카라얀은 좀 더 뒤져보면 베를린 필을 지휘한 DG반과 그 이전에 빈 필을 지휘한 데카반, 그 이전 필하모니아를 지휘한 EMI반, 그리고 말년에 다시 빈 필과 디지털로 녹음한 DG반까지 여러 녹음이 있다. 다 좋은데 60년대 DG반이 이 작품과의 첫만남인지라 여전히 가장 손이 많이 간다. 


카라얀의 음반이 여전히 멋지긴 한데, 실제 발레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한 예습용으로는 발췌라는 문제가 있다. 현재로서 역시 가장 먼저 추천할만한 것은 이전에도 포스팅했던 래틀/베를린 필의 2009년 녹음. 당시만 해도 최신보였는데, 어느새 6년이나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 음반을 보면, 당시 연애초기 분주하던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발췌음반도 하나 사서 선물했었는데, 결혼과 함께 음반이 다시 돌아왔다는. 또한 이 음반 표지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 EMI 마크가 선명하다. 지금 이 음반은 애플뮤직에서 바로 들어볼 수 있는데, 여전히 낯선 Warner 로고가 들어가 있다.



카라얀래틀



올 해의 새로운 선택


래틀의 음반은 이전에도 썼듯이 여전히 멋진 연주이지만, 또 다른 연주를 찾아보니 언제 장만했는지 도라티의 전곡음반도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 이게 있었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바로 그런 음반. 


안탈 도라티(Doráti Antal, 1906~1988)는 헝가리 지휘자로 최초의 하이든 교향곡 전곡녹음의 위업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반도 녹음을 꽤나 많이 남겼는데 그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게 훌륭하다. 발레음악도 여럿 녹음했는데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으로 이것도 나중에 포스팅해보고 싶다.


콘서트헤보우를 지휘한 이 음반은 일단 녹음이 좋다.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보는 순간 감이 좋은데, 어느 정도 소리를 예상하셨다면 그 예상 그대로라고 말하고 싶다. 맑고 따뜻하고 청명하며, 여유로운 공간감이 느껴지는 시원한 소리. 래틀과 베를린 필의 연주가 잘하긴 했는데, 베를린 필 특유의 울림 때문에 좀 밀도가 높아서 가끔은 좀 시원한 소리를 듣고 싶어질 때도 있다면 그럴 때 바로 이런 연주가 필요하다. 


까칠까칠하면서 또렷한 윤곽을 그리며 진하게 뽑아낸 현의 움직임, 넉넉한 공간감 속에서 아름답게 울리는 목관. 가끔 금관이 좀 오래된 느낌을 줄 때도 있는 것이 살짝 아쉽지만 그 외엔 거의 흠잡을 데가 없다. 템포나 프레이징 설정도 아주 노련하기 그지없다. 70년대 좋았던 시절 아날로그 녹음의 절정이다. 


2막의 끝자락을 여는 장대한 Pas de deux 장면 도입부의 연출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작품에 유명한 대목이 차고 넘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면의 음악을 호두까기 인형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을 들을 때면 정말이지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언제나 뭉클해진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끝없이 펼쳐진 눈덮인 시베리아 벌판의 정경이랄까. 세상에나.. 차이코프스키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감수성을 타고 난 것이지? 이 멋진 음악을 카라얀의 모음곡 버전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 대목을 듣기 위해서도 전곡음반이 필요하다. 아무튼 적극추천!



*래틀/베를린 필의 Pas de deux - 발트뷔네 야외 콘서트 버전인데, 역시 백문이 불여일청! 


*도라티 연주도 애플뮤직에 올라와 있다. 리마스터링 버전이라 표지도 다르고 필업이 도라티가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관현악 모음곡 3, 4번과 커플링 된 것으로 올라와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음반보다 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