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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음반열전 #5 - 교향곡 제5번 & 7번 : R.슈트라우스 (Naxos,DG 1926/1928)

by iMac 2017. 1. 3.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op.67

교향곡 제7번 A장조 op.9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지휘 / 베를린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1926/1928년)

Naxos, DG






진짜 고수의 등장 !


지금까지 포스팅했던 베토벤 100주기 교향곡 전곡 녹음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지휘를 했던 피츠너에 비하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Richard Strauss, 1864~1949, 이하 R.슈트라우스) 등장은 말 그대로 진짜 고수가 나타났다고 하겠다. 작곡가로서나 지휘자로서나 그 명성과 평판에 있어 앞선 지휘자들을 가볍게 넘어서는 천재 중의 천재. 천재 작곡가로서 종종 지휘봉도 직접 들었고 녹음이 오래되긴 했어도 기록도 제법 남아 있어 흥미롭다. 빈 필을 지휘한 아래 영상을 보면 반듯하게 서서 무심한 표정으로 오른 손 위주의 간소한 손동작만으로 오케스트라를 말 그대로 끌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옛 지휘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 발췌 - 중간에 조지 쉘이 슈트라우스의 지휘모습을 회상하는 인터뷰도 나온다. 베토벤의 피델리오의 끝무렵을 지루해하며 지휘하다 시계를 꺼내 보고 갑자기 빨라지는 모습을 유쾌하게 회상한다. 


어떠한 순간에도 결코 흥분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지휘하지만 오케스트라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면 흡사 불레즈의 지휘모습을 연상케 하는데, 작곡가겸 지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작곡가로서 작품의 구조적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서 구현해내는 탁월한 능력. 이제 진정한 고수가 지휘하는 베토벤을 들어 볼 차례이다.




교향곡 제5번


우선 다른 녹음들과 마찬가지로 1, 4악장 제시부 반복은 생략. 1악장의 경우 반복을 했다고 가정하면 대략 7분대 초반의 속도로 비교적 빠른 편에 속한다. R.슈트라우스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템포를 빠르게 잡는 편이었다. 1악장 첫시작을 알리는 모티브는 여유있는 템포로 적절히 힘을 실어 음의 윤곽을 잘 살린 다음 이후부터 가속해서 빠른 템포로 진행하는 방식. 연주 전반의 분위기는 꽉 조여진 팽팽한 긴장감 속에 빠른 템포로 전투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 이래야 베토벤이지! 무릎을 탁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연주.  노련하게 완급을 적절히 잘 조절하면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압도적이다. 지금까지 앞서 들었던 이 시리즈의 모든 연주들을 한 방에 다 날려 버린다. 1928년 출시된 녹음으로 역시 열악한 음향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연주는 충분히 전율적이고 다시 듣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가득하다. 맹렬하게 부풀어 올라 치열하게 돌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케스트라를 잘 통제하고 있어서 순간순간 단정하고 품위있는 분위기가 감돈다. 이래서 진정 지휘자의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지휘자의 중요성은 늘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중요성을 새삼 뼈저리게 실감케 해준 음반. 얼마 전에도 적었듯이 '훌륭한 지휘자'와 '위대한 지휘자'의 차이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연주가 정말 훌륭해서 열악한 녹음임에도 다시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데, 낙소스의 것 보다는 역시나 DG에서 나온 음반의 음향이 더 낫다. 좀 더 무게감이 실려 있고 윤곽고 또렷하다. 단, DG쪽은 7장 짜리 세트음반 속에 포함되어 있어서 가격적으로 불리한데 작곡가 본인이 지휘한 자작자연도 들어 볼 수 있어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세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해야 겠다. 역시 둘 다 애플뮤직에서 들어볼 수 있다.



교향곡 제7번


1926년에 출시된 7번은 녹음 자체도 5번보다 빈약하고 연주도 나쁘지는 않으나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다. 물론 여전히 지휘자의 노련한 조형감각이 십분 느껴지는 연주로서 이 시대 녹음에서 여러 목관의 움직임이 정교하게 포착되고 있는 점이 새삼 놀랍다. 7번에서의 템포는 광란의 춤 파티 정도는 아니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인데 마지막 4악장이 4분대로 표기되어 있다. 아무리 반복을 생략해도 6분대는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어딘가 또 생략을 했다는 것.


전개부까지는 듣던대로 진행하다가 재현부가 시작하자마자 이어지는 부분을 몽땅 커트하고 바로 종결부로 넘어가버린다. 역시나 음반 장수 때문에 그랬을까? 그런 시대적 환경의 제약을 감안한다고 해도 연주 전반의 인상은 앞선 5번 연주에 비하면 뭔가 좀 심심하다. 그 무렵에는 7번에 대한 인식이 5번만큼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요즘이야 7번이 엄청난 인기곡이 되었지만 그 무렵에는 5번에 비하면 위상이 요즘 처럼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체적으로 역시 그 시대의 베토벤 해석을 잘 보여주는 음반으로 지금까지 들어본 100주기 기념 녹음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나 5번 교향곡의 압도적인 연주는 열악한 녹음을 감수하면서 몇번이고 다시 듣고 싶게 하는 명연이다. 


흥미로운 것이 맨 처음 소개했던 니키쉬의 5번과 여러모로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한 접근법이 서로 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시종일관 여유로운 템포로 차분하고 꼼꼼하게 웅장한 건축물을 다듬듯 소리를 빚어내는 니키쉬와 달리 R.슈트라우스는 보다 빠른 템포로 이 작품이 뿜어내는 치열한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쪽이나 완성도 자체는 높지만 나는 아무래도 R.슈트라우스의 해석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내가 베토벤의 작품에서 기대하는 진정한 모습이란 바로 그런 것이니까. 유래없이 세상이 소용돌이치며 뒤짚어지던 시대를 살았던 베토벤이기에 그 작품 또한 그 시대의 숨결을 담고 있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니키쉬의 해석은 그러한 세상의 흐름은 초월한, 다분히 벨 에포크 시대의 완숙함이 느껴진다. 어느 쪽이 맞다기보다는 내 취향엔 역시 보다 치열하게 고뇌하는 모습의 베토벤이 더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