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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음반열전 #6 - 교향곡 제9번 '합창' : 프리트 (Naxos, 1929)

by iMac 2017. 1. 8.

베토벤


교향곡 제9번 d단조 op.   '합창'


오스카 프리트, 지휘 / 베를린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로테 레오나르트, 소프라노

예니 소넨베르크, 콘트랄토

외젠 트란스키, 테너

헬름 구트만, 베이스

브루노 키텔 합창단 (1929년)

Naxos




오스카 프리트


드디어 베토벤 서거 100주기 교향곡 전곡 녹음 시리즈의 마지막 음반에 도착했다.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겠지만, 합창 교향곡은 연주 자체가 만만치 않은 도전인데 레코딩 초창기에는 더더욱 대단한 도전이라고 생각된다. 오스카 프리트(Oskar Fried, 1871~1941)는 베를린 태생의 유태계 지휘자로서 말러리안들에게는 초기 말러 신봉자로서 사상 최초로 말러의 2번 교향곡을 녹음한 사람으로 우선 기억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은 대편성에 합창까지 포함된 스펙타클한 작품을 녹음한 선구자격인 지휘자로구나 싶다. 



오스카 프리트의 경력을 보면 말러와 가깝게 지냈고 베를린에서 말러가 참관하는 가운데 2번 교향곡을 지휘한 바 있기에(젊은 오토 클렘페러가 타악기 연주로 참가했다는 그 연주회) 녹음 자체는 부활교향곡의 어마어마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의 지휘 스타일 어딘가에 말러의 영향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9번 교향곡 연주로 돌아와서 음반을 들어보면 의외로 음질이 제법 들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놀라게 된다. 말러의 2번 교향곡 녹음이 워낙 아무 기대없이 들어야 하는 수준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에 비하면 9번은 훨씬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디테일을 떠나서 음악의 흐름은 내가 익히 잘 알고 들어온 합창 교향곡의 전형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음악이 술술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연주 전반의 템포는 아주 적절한 템포 속에 제법 빠른 편. 그 시절 지휘자들이라고 다 느려터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인 셈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녹음 기술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템포를 빨리해서 한 장이라도 더 적게 녹음해서 전곡을 담아야 하는 현실적인 압박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대 그 정도 예술적 경지에 오른 음악가들이 짤막한 유행가도 아니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녹음하면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템포를 빨리 했어도 지휘자의 스타일이 어디 가겠는가?


아무튼 연주 전반의 인상은 아주 스마트한 쾌연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고 딱 적당하다. 스케르초 초반은 역시 반복을 생략했지만 그 정도는 그 무렵엔 다들 그랬으니 양해할만한 수준. 3악장이 13:56인 것도 선구적이다. 이것과 비교하면 20분에 육박하는 푸르트벵글러는 극과 극의 정점이라 하겠다. 


예상은 했지만 독창자들의 음성이 선명하게 포착된 점도 재미있다. 아무래도 이런 초기 녹음들은 관현악보다는 독주곡이나 독창의 재현에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성악가들의 발성이 살짝 옛스럽긴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지 않고 오히려 좀 담백하게 들리는 점이 흥미롭다. 과도하게 오페라적인 느낌도 없고 절제된 듯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나저나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환희의 송가 선율은 다를바가 없게 들린다. 아득한 시간의 공간을 뚫고 들려오는 베토벤 음악의 변함없는 호소력이 놀랍다. 마지막 마무리까지 프리트의 지휘는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일필휘지로 단호하게 마무리짓는다. 멩겔베르크 식의 장대한 해석과는 완전히 딴판이고 토스카니니식의 뭔가 압도적이지만 한편으로 살짝 강박적인 느낌의 연주와도 다르게 훨씬 객관적인 느낌이다. 합창이 포함되는 작품이어서 애초에 녹음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스러운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는 훌륭한 연주였다. 


*브루노 키텔 합창단도 과거의 명성처럼 훌륭한 모습인데 이 단체가 이후 2차대전 말기 해산되고 브루노 키텔은 전후 나치협력 행적으로 음악계에서 매장되어 버린 씁쓸한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