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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diary

덩케르크(Dunkirk)

by iMac 2017. 7. 22.


덩케르크(Dunkirk)


백만년만의 영화 감상 후기. 그 동안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하긴, 그 동안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본 것이 그렇게 많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덩케르크는 제작 기사가 나온 시점 부터 '이건 꼭 봐야겠다' 싶었던 몇 안되는 영화중의 하나였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소재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 메멘토(Memento, 2000)는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영화 중 하나인데 그 때는 감독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때였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었더라는. 메멘토 이후의 작품들은 장르가 대부분 내 취향은 아니어서 인연이 없었다. 배트맨 시리즈는 물론 나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대단한 작품들이긴 했지만.


그렇게 한동안 멀어져 있다가 마주친 것이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였다.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는데, 얼핏 대단히 난해해 보이는 과학 지식을 간단히 압축해서 드라마적 설득력을 갖춰 흥행영화로 빚어낸다는 것 자체가 보통 내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덩케르크가 등장했다.







실화의 영화화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할 때, 결론이 너무 뻔하기 때문에 상상력에 제약이 있지 않을까 싶고 덩케르크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때 살짝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드라마이긴 하지만 경과 자체는 대단히 단조로워서 이게 과연 영화로 만들기 쉬울까 싶었다. 자칫하면 신파가 되기 싶상이고 아니라면 밋밋해질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영화'가 아니다. 흔히 전쟁영화라는 장르에서 기대하는 전형적인 클리셰(적과 아군으로 분명히 나뉘어 펼치는 치열하고 긴박감 넘치는 전투장면)를 기대한다면 분명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역시 그런 점에서 철저히 다르고 독창적이다. 


배우들의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고 대부분 불가항력적인 극한 상황에 내몰린 등장인물들이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 상황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찌보면, 재난상황을 다룬 일종의 다큐영화 비스무리한 그 어떤 장르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소개에 이미 나와 있는 설정 세 가지가 정교하게 맞물려 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시점으로 수렴된다.(해안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 


런닝 타임은 100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비교적 짧은 편으로 나의 경우에는, 금새 지나가버렸다. 앞서 소개한대로 상황 자체에 집중하는 형태의 내용이다보니 '드라마'라는 관점에서는 좀 허전한 것은 사실이다. 33만의 인원이 탈출에 성공한 것 치고는 그 과정이 좀 밋밋해 보이는데 어찌보면 극적인 '성공'보다는 앞서 말한대로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순간 순간에 방점을 찍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영화를 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소재가 마음에 들 경우 연출된 장면의 연출에 집중해서 보는 편이고, 특히 시대극의 경우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증, 건물, 소품 등에 관심을 가지고 그 상황을 보는  편인지라, 2차 대전이라는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기에 드라마적인 부분은 그렇게 크게 아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내 취향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나저나, 역사적 사실로 돌아가보면 영국을 코너로 몰아넣은 1940년 당시의 독일도 대단했지만 그 상황에서 끝까지 버틴 영국도 정말 악바리 중의 악바리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가 결과를 보여주듯, 끝까지 버틴 쪽이 이기는 것이고 이런 극한 상황을 버티고 5년 후에 전쟁에서 최종 승리한 것이 영국이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몸만 겨우 빠져나온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성공을 단순히 영국의 '정신승리'로만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타


고증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밀리터리 매니아들이라면 주로 공중전 장면에서 등장하는 비행기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대충 꼽아봐도 스피트파이어, 메서슈미트 BF109, Ju88 등등. 기종의 연식을 세세히 구분할 정도로 관심이 높지는 않지만 볼거리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메서슈미트는 물론 정확히 그 무렵 기체는 아니고 스페인 라이센스버전일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그정도로 떠다니는게 어디인가. 


오랜만에 영상에서 영국 전투기 스피트파이어(Spitfire)의 비행 장면을 보게 되는데, 다시봐도 스피트파이어의 둥글고 유선형인 실루엣은 여전히, 정말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끝무렵 톰 하디가 유유히 활강 비행하는 장면에서 기체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이런 볼거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다.


비행기에 비하면 군함들은 살짝 어설픈 티가 난다. 솔직히, 현재 운항이 가능한 당시 군함이 없을 것이니 비행기보다 고증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구축함의 포신이나 함교 안테나 등의 형상이 어중간하다. 최신형 선박에 단순화한 구조물을 뒤집어 씌운 듯한 티도 나고 그렇긴 한데,  그나마 군함이 더 많이 등장하지 않고 민간 선박들이 구조하러 오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보니 그런대로 눈감아줄만 하다. 



*  사족 : 북프랑스 해안도시 Dunkirk의 지명은 정확히 표기하자면 '뒹케르크' 아니면 '됭케르크' 정도가 맞을 것이다. 영국인들은 '던커크'로 발음하니 한글표기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적당히 뒤섞인 재미난 표기법이다. '덩케르크'가 워낙 오랫동안 우리나라 관련서적에서 통용된 표기법이니 굳이 영화제목에서까지 그렇게 고집할 필요는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