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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2기 #1 - 바인가르트너

by iMac 2017. 1. 20.

가필의 대명사?


펠릭스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는 오스트리아 작곡가겸 지휘자인데 그 무렵에는 대부분의 지휘자들의 경력이 다 비슷했던 것 같다. 지휘라는 영역이 독립된 직업으로 정착하기 전에는 유명 지휘자는 동시에 작곡가인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동했던 이러한 사람들 대부분은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작곡가로서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바인가르트너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바인가르트너는 생전에 저술가로서도 이런저런 저작을 남겼으며 특히, 베토벤 교향곡의 가필로 기억에 남는다. 바인가르트너의 가필은 대부분 악기법에 대한 디테일한 수정이 대부분인 듯 하고, 이런 식의 가필은 내 음악적 수준으로는 들어도 어떤 식으로 수정이 루어졌는지 판별해내기 어렵지만 아무튼 일단은 지금의 내 입장에서 바인가르트너의 이미지는 '가필의 대명사'이다.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 - 도시바 EMI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도시바 EMI에서 발매한 것으로 요즘도 구하기 쉬운지는 모르겠다. 낙소스 등에서도 발매한 것 같은데, 5장 구성 전집으로 한번에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간편하고 지금 생각해도 장만하길 잘 한 것 같다. 도시바 EMI 제작답게 만듦새가 깔끔하고 CD 낱장 슬리브도 일반 종이가 아닌 비닐 부직포 비슷한 고급스러운 재질이며 일본어라 독해가 불편하지만 정성껏 제작된 내지도 포함되어 있다.


연주 전반의 음질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지난 1기 포스팅에서 들어본 연주들과 비교하면 음질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단일 지휘자에 의한 전집이라는 점에서 일단 의미 있는 녹음인데, 아쉽게도 오케스트라는 단일하지 않고 녹음시기, 수록곡, 연주단체 등이 혼재되어 있어서 정신없다. 일단 악단별로 전체 수록곡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6번은 1927년 녹음이어서 엄밀히 말해 이 세트도 오롯이 '30년대' 베토벤 녹음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임의적으로 구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빈 필

교향곡 제1번, 에그몬트 서곡 (1937년)

교향곡 제3번 '영웅' (1936년)

교향곡 제7번 & 제8번 (1936년)

교향곡 제9번 '합창' (1936년)


런던 심포니 

교향곡 제2번 (1938년)

레오노레 서곡 제2번 (1938년)


런던 필하모니 

교향곡 제4번 (1933년)

교향곡 제5번 (1933년)

에그몬트 부수음악 (1938년)

헌당식 서곡 (1938년)

피델리오 서곡 (1938년)


로열 필하모니

교향곡 제6번 '전원' (1927년)


뒷면 - 일본어 표기가 어지럽다내지와 속지지휘봉을 든 모습


선입견은 금물!


맨 처음에 '가필의 대명사'라고 적었는데, 그게 사실이라고는 해도 그것 때문에 바인가르트너의 연주를 멀리하는 선입견을 가지면 안될 것이다. '선입견'이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니까. 실제로도 막상 연주를 들어보면 의외로 '객관적'인 연주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관행적인 삭제와 가필은 당연하지만 그건 그 무렵에는 대부분 그렇게들 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 점을 넘어가면 연주 전체의 인상은 놀랍도록 단정하다. 


여전히 다소 옛스럽고 포근한 느낌이 감돌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템포와 프레이징에 있어 후세의 그 어떤 연주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담백하다. 어디선가 바인가르트너를 '즉물주의'해석가라고 언급했을때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이 연주를 다 듣고 나면 그것이 절로 이해된다. 전반적으로 템포도 결코 느린 편이 아니고(6번은 상당한 쾌속이다)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 조금의 과장된 접근도 느낄 수 없고 오케스트라가 서로 다르지만 전반적인 연주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응집력도 만만치 않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지난 번 한스 피츠너의 8번 해석과 거기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틸레만의 이야기를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2017/01/02 - [Classical Music/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음반열전 #4 - 교향곡 제3번 '영웅' & 8번 : 피츠너 (Naxos, 1929/1933) ), 같은 대목을 바인가르트너의 연주로 들어보면 피츠너가 만들었던 임의적인 프레이즈 만들기를 찾아볼 수 없다. 깔끔하게 있는 그대로 시원하게 돌파하는 모습.


이 전집 중 3번에 대해서는 꽤 오래전에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2008/04/25 - [Classical Music/beethoven] - 영웅 교향곡 감상기 - 바인가르트너 (1936, EMI) ) 다시 읽어보면 지금의 감상과는 좀 다른 감이 있다. 그 때에는 옛스러움에 감상의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은 그 때에도 이 연주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프레이징'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점에 중점을 두고 싶다. 


참고로 그 때엔 잘 몰랐던 건데, 스케르초 악장도 커트가 있다. 템포가 빠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4분12초는 요즘 어지간히 빠른 연주들도 가능한 시간대가 아니다. 다만, 피츠너 정도로 많이 자르진 않았다. 원곡이 AA-(B-C-B-C-B)-A, 피츠너가 A-(B-C-B)-A라면 바인가르트너는 A-(B-C-B-C-B)-A 정도. 그 외 이곳저곳 미심쩍은(?!) 금관의 움직임도 들린다. 이런 부분이 사실 한두군데가 아닌데, 이런 거 다 찾아낼 실력도 못되고, 그러려고 애쓰다보면 머리아프니 그냥 맘 편하게 그러려니 하고 듣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에는 같은 무렵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토스카니니에 가려서 마치 구시대의 유물, 가필의 대명사로 마냥 잊혀진 것 같아 안타깝다. 내 생각에 연주의 인상은 오히려 토스카니니보다 더 객관적인데, 토스카니니가 과연 객관주의자였나 하는 점은 나중에 토스카니니에 대한 포스팅에서 따로 생각해보기로 하고, 아무튼 연주의 높은 완성도를 볼 때 그냥 기록으로만 존재하는건 아쉽다. 


한 번이라도 더 들어줄만 한데, 문제는 토스카니니류의 강렬함이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연주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심심한 것이 사실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와중에 교향곡보다 서곡들의 연주가 좀 더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모습인 점이 이채롭다. 오페라 극장에서의 오랜 경력 때문이려나? 교향곡은 절대음악으로 좀 더 차분하게 집중하는 접근법이었을까?


오늘날 관점에서는 삭제와 가필이 더 부각되는 편이라 버전의 문제로도 손이 가지 않는 편. 이것때문에 바인가르트너 특유의 '즉물적인 해석'마저 부당하게 잊혀지는 점이 안타깝다. 이래저래 손해를 보는 전집이지만 현대 베토벤 해석의 원류의 하나를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소중한 기록이다. 앞서 들었던 20년대 녹음보다 진일보한 음질도 좀 더 들을만한 소리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