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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urope

2016 비엔나 #10 (2016.5.21) - 빈 국립 오페라 (로엔그린)

by iMac 2017. 2. 3.


빈 국립 오페라 (Wiener Staatsoper)


현재까지 진행된 이번 여행기 중에서 5월 21일 일정에 대한 포스팅이 가장 상세하게 나뉘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이번 여행의 핵심이 바로 이날이구나 싶기 때문. 빈 필 연주회도 좋긴 했으나 표도 아슬아슬하게 구한데다 자리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기에 좀 더 큰 마음먹고 예매한 오페라 쪽에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오페라 극장 가는 길. 제체시온 옆 지하도로 내려가 쭈욱 걸어가다가 오페라쪽 출구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오페라극장이라. 꿈같은 경험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보러 교통지옥속을 뚫고 운전해 가던 걸 생각하면 정말 환상적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막이 오르기 전


극장 안에 들어서면 내부 구조는 어딘지 좀 좁아 보인다. 아무래도 옛날 건축물들의 오밀조밀한 구조는 오늘날 현대식 구조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중앙 계단으로 올라가다보면 중간에 서 있는 두 남녀 직원이 티켓을 확인하고 안내해 준다. 처음이다 보니 극장 구조가 낯설고 자리를 찾기 힘든데 그 때마다 곳곳에 서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안내해준다. 감탄을 자아내는 구조이긴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시 파리 오페라가 더 낫다. 음악적인 명성에서는 그 반대이겠지만.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중간에 널찍한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음료를 팔고 있다. 그 뒤로 바로 테라스로 연결되는데 매일같이 지나다니며 올려다본 오페라극장의 테라스가 바로 여기. 다시 안으로 들어오면 이 방은 길다란 직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고 양쪽 끝 짧은 면에 테라스방향으로 오른편에 '말러', 맞은편 왼쪽 끝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두상이 서 있다. 이 방에는 사실 이걸 보러 온 것이다.


공연 전 간단한 음료테라스 쪽구스타프 말러. 로댕의 조각이라고 들었다.


이 극장의 주요 음악감독 내지 지휘자를 역임했던 거장들의 두상이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다. 말러와 슈트라우스 외 나머지 지휘자들이 테라스를 바라보는 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클레멘스 크라우스, 카를 뵘, 로린 마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재임기간이 새겨져 있는데, 궁정오페라 시절인 1897~1907년 10년간 재임한 말러의 기록이 그래도 가장 길다. 그 다음이 1956~1964년간 재임한 카라얀. 빈 국립오페라는 각종 암투와 뒷말이 무성한 곳으로 지휘자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젤도 1982~1984년 기간에 불과하고 뵘의 1955~1956년 시즌은 난감하게 마무리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클레멘스 크라우스

카를 뵘


로린 마젤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카라얀이 제일 멋지긴 하다




로엔그린


우리 자리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바로 왼쪽 옆 2층에서 내려다보는 자리로 제법 시야가 좋아 맘에 들었다. 테라스에 의자 셋이 놓여 있는데 오른쪽 두개가 우리 자리. 나머지 하나는 나중에 현지인 중년 여성분이 오셨다. 전날의 무직페라인처럼 보면서 고개 아플일도 없어 좋다. 자리마다 앞에 자막을 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영어 자막을 골라 선택할 수 있다.



지휘자가 원래 알고 있던 츠베덴에서 젠킨스라는 잘 모르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쉽긴 했지만, 빈에 와서 로엔그린을 보는 것 자체로 만족이다. 전날 빈 필 연주회에서 보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속속 자리를 채운다. 이날은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소속이니 정식 직장에 출근한 셈이다. 거의 매일저녁 이렇게 오페라 아니면 발레 공연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이쯤되면 어지간한 오페라는 다 외우고 있을 것 같다.


4시간 가량 진행될 예정이라 로엔그린이라면 전주곡이나 혼례의 합창 밖에 모르는 와이프가 좀 걱정되긴 했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대장면과 음악이 어우러지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와이프도 졸지 않고 재미있게 잘 봐줘서 다행이었다. 무대배경은 원작의 중세시대는 아니고 대략 19세기풍으로 생각되는데 나름 짜임새 있고 재미있는 연출이었다. 출연진은 상대적으로 여성배역들이 더 인상적이었는데 오르투르트역을 맡은 미카엘라 슈스터가 가장 멋졌다. 하인리히 왕역으로 베이스 연광철씨가 출연하고 있어서 반가웠는데, 극 초반 왕이 등장하여 연설하는 첫장면 부터 극장을 가득 메우는 육중한 발성이 대단했다. 


오케스트라는 뭐, 두말할 나위없이 훌륭했다. 자리도 편안하고 소리도 제법 나쁘지 않고 무대는 물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움직임도 함께 볼 수 있어서 오페라를 잘 모르는 와이프도 훨씬 지루할 틈 없이 잘 본 것 같다. 공연 중간중간 쉬는 참에 고개를 쭉 내밀고 무대 위 공연 모습을 올려다보는 단원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사람 생각은 다 똑같나 보다.


자막을 볼 수 있다. 커튼 콜


3막이 한창 진행될 무렵 옆에 계신 아주머니가 갑자기 아이폰을 꺼내들더니 사진을 찍으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버전' 아이폰과 달리 외국인들의 아이폰은 사진을 찍을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새삼 아이폰으로 사진 찍을 때 나는 셔터음이 나지 않는 것이 엄청나게 부러웠다. 이곳에서는 전날 무직페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진찍는 것에 대한 제지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셔터음 때문에 소심하게 조금씩만 찍을 수 밖에. 공연 중간에 사진을 못찍은게 아쉽다.


기나긴 공연이 어느새 끝나버리고 커튼콜. 연광철씨에 대해 객석에서 큰 환호성이 나온다. 현지에서도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활동하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니 내가 다 뿌듯했다. 극장 밖으로 나와 극장을 돌다 보면 옆쪽에 사람들이 잔뜩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가수들의 출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다. 잠시 기다리니 무대에서 보던 주역가수들이 눈앞에서 지나간다. 싸인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하는 모습을 보며 공연의 여운을 느꼈다. 



마무리 - 비트징거



공연이 끝난 밤 늦은 시간. 딱히 배가 많이 고프진 않지만 그동안 지나다니며 궁금하기도 해서 오페라극장 뒤편 모서리에 서 있는 소시지 가게 비트징거(Bitzinger)에 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소시지와 빵을 먹고 있다. 따끈하게 데워진 소시지에 빵을 겯들여 먹는데 그 시간에 그렇게 먹으면 사실 뭐든지 다 맛있을 것이다. 빈에 가서 오페라 극장 근처에 간다면 한번쯤 먹어볼만한 간식. 이렇게 해서 기대가 가득했던 5월 21일 하루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