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concert

파우스트, 멜니코프, 케라스 트리오 (2017.3.7) LG 아트센터

by iMac 2017. 3. 9.

슈만


피아노 트리오 제1번 d단조 op.63

피아노 트리오 제2번 F장조 op.80

인터미션

피아노 트리오 제3번 g단조 op.110


이자벨 파우스트, 바이올린

쟝-기엔 케라스, 첼로

알렉산더 멜니코프, 피아노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


일단, 이 세 명의 연주자를 한 번에 연주회에서 본다는 것 자체로 무척 기대되는 연주회임에 틀림없었지만, 살짝 망설여졌던 것은 프로그램이 슈만의 피아노 3중주 세 곡이라는 점이었다. 슈만이라면 역시 피아노 4중주와 5중주가 훨씬 유명한데다 실제로 3중주는 분명 어딘지 모르게 재미가 덜한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3중주곡들은 어딘지 모르게 내가 듣기에는 정서적 불안감이 4중주나 5중주보다 더 심한 것 같아서 이 세곡을 한 연주회에서 내리 듣고 있는 것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만, 워낙 연주자들이 기대되는 사람들이라 결국 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슈만의 피아노 3중주는 내가 애청하는 곡이 아니었지만, 이번 기회에 좀 더 열심히 들어본 느낌으로는 의외로 1번이 가장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느껴졌고, 그 중에 가장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이 2번이었다. 3번은 심히 불안하긴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게 느껴진 덕에 1번 보다 더 낫게 들었다. 




튜닝의 어려움


1부에서 듣는 내내 아쉬웠던 것은 파우스트의 바이올린이 조율이 잘 되지 못했던 점이었다. 처음 시작부터 튜닝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악장 사이사이에도 계속 튜닝을 했다. 실제로 소리도 가장 먹먹하게 들려서 시원스럽게 터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상대적으로 명료하게 돋보이는 케라스의 첼로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게 들렸다.



이것이 튜닝의 문제라는 것은 2부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소리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1부에서의 소리는 튜닝에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현악기의 튜닝이 이렇게나 힘들구나 새삼 실감했다. 파우스트 정도의 정상급 연주자도 이렇게 애를 먹을 정도라니. 첼리비다케가 연습과정에서 현악기 조율에만 엄청난 시간을 쏟곤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아무튼, 덕분에 마지막 3번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걸맞게 연주 또한 이날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면 멋지게 마무리했다. 



놀라운 앙상블


사실 연주회 경험이 객관적으로 아주 많지도 않고 특히나 이런 피아노 트리오 공연경험은 손꼽을 정도라서 듀오 연주회를 제외하면 이정도 정상급 연주자들에 의한 실내악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고 들어왔던 모든 실내악 연주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음악적 완성도를 경험했다. 



앙상블의 긴밀함이 정말 놀라웠는데, 셋이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나올때 나오고 받쳐줄때 받쳐주는 모습이 정말 철두철미했다. 결성된지 10년은 넘은 팀같이 보여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음반으로야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 눈앞에서 보고 들으니 정말 압도적이었다. 


1부에서 튜닝 때문에 시종일관 답답했던 파우스트에 비해 나머지 두 사람은 큰 기복없이 멋진 존재감을 보여줬다. 명징하기 그지없는 멜니코프의 터치에 아주 적당한 볼륨감을 유지하는 케라스의 낭랑한 첼로. 파우스트야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요즘은 뒤늦게 케라스의 매력에 빠져드는 중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멋지고 멜니코프와 함께 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전집도 대성공이었다. 


셋 중에 가장 유쾌한 모습을 보인 것도 케라스인데, 밝고 하이톤의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앵콜 곡을 소개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다만, '감사합니다' 이후에는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것이 함정이긴 했지만. 그래서 앵콜 곡은 엘지 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찾아봤다. 첫 곡 엘리엇 카터의 작품은 아주 짧지만 강렬한 피치카토의 주고 받음이 인상적이었다.


- 엘리엇 카터(Elliott Carter, 1908-2012) Epigrams for Piano, Violin and Cello 중 1번


-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환상 소곡집(Phantasiestucke), Op.88 중 3번 Duett




사인회, 기타 등등


이날은 연주회 시작부터 파우스트의 헤어스타일이 지금까지 보던 것과 확 달라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전까지는 워낙 짧은 머리여서 이렇게까지 밝은 금발인줄은 느끼지 못했었다. 케라스는 역시나 가장 밝고 유쾌한 모습이었고, 파우스트는 전형적인 다소 차가운 듯한 독일인의 모습. 멜니코프는 의외로 셋 중 가장 순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평일 저녁 연주회는 다녀 오면 꽤 피곤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튼 꽉 찬 음악적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사인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옆에서 서성거리는 박찬욱 감독의 모습을 본 것은 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었던지라 과연, 싶었다. 




예술의 전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방문 빈도는 적지만 최근 몇 번 다녀온 바로는 엘지 아트 센터도 나름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 예당보다 집에서 더 먼 것이 아쉽지만 이 정도 규모의 연주회에는 더 낫게 들리고 이날의 경우 연주회 프로그램도 깔끔한 사이즈에 무료로 나눠줘서 좋았다. 앞으로 방문 횟수가 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