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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6기 #3 - 피에르 몽퇴

by iMac 2017. 5. 15.


세계를 지휘한 프랑스인


피에르 몽퇴(Pierre Monteux, 1875~1964)에 대해서 언젠가 '세계를 지휘한 프랑스인'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다. 충분히 그럴만 한 것이, 몽퇴의 경력을 대략 훑어보기만 해도 프랑스 뿐만 아니라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메트로폴리턴, 런던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시절 지휘자로서 이 정도 활동범위를 보여 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 뿐인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 지휘자라는 타이틀은 영원히 몽퇴의 이름과 함께 한다. 물론 몽퇴 본인은 이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20세기 음악의 중요 작품 초연 지휘자로서도 그 이름을 굵게 새겨 놓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세계를 지휘한 프랑스인'이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다. 








프랑스인의 베토벤


활동 경력 뿐만 아니라 여기에 소개할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이야말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몽퇴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비록 단일 오케스트라에 의한 녹음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교향곡 2, 4, 5, 7, 9번, 피델리오, 에그몬트, 슈테판 왕 서곡)

빈 필 (1, 3, 6, 8번)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3번)


기존에 데카에서 더블 CD 형태로 발매했다가 오랫동안 구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엘로퀀스 시리즈로 깔끔하게 한방에 출시되었다. 기존의 전체 9곡 녹음에 보너스로 9번 교향곡 리허설과 라 마르세이에즈, 3번 교향곡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녹음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발매되었다고 좋아했었는데, 애플뮤직이 서비스 되면서 찾아보니 깔끔하게 올라와 있다.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어져서 허무해지기도 했지만 애플뮤직의 편리함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다.


어쨌거나, 연주는 일단 만만치 않게 훌륭하다. 앞선 두 독일계 거장들의 연주와 비교하면 프랑스인의 관점은 확실히 또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발터의 푸근한 연주와도 또 다르다. 전체적으로 밝고 명쾌한 소노리티가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고 박력도 충분하며 작품의 구조를 명쾌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일전에 슈리히트의 전집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프랑스인들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 또한 무시 못할 전통을 지니고 있다. 몽퇴의 명쾌한 그러면서 충분히 효과적이며 유려한 흐름은 정말 수준급 베토벤 연주이다. 무겁고 심각한 독일 스타일과는 또 다른 프랑스인 특유의 명쾌한 감각('에스프리'?)이라고나 할까?


반복구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일반적인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관행적으로 반복을 하는 경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3번의 1악장 같은 경우) 생략하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명쾌하고 투명한 울림 속에 보여주는 객관적인 밸런스가 멋지고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시대에 앞서 관행적인 가필 상당수를 걷어내 버린 것이다.





5번 1악장 재현부에 그무렵엔 흔히들 호른으로 연주하던 대목도 일찌감치 바순이 연주하고 있고, 가장 놀라운 것은 3번 1악장 마지막 트럼펫 가필이 사라진 것이다. 비교적 반복을 충실히 이행했던 클렘페러도 그 대목만큼은 가필을 수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1957년에 이미 빈 필을 지휘하면서 그렇게 한 것이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 대목만큼은 이전에 포스팅했던 에리히 클라이버를 연상케 한다. 

2017/03/21 - [Classical Music/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제5기 #1 - 에리히 클라이버


3번 1악장 코다에서 가필을 하지 않는 몽퇴의 선구적인 혜안은 보너스 CD에 포함된 1962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의 녹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1962년의 영웅 교향곡은 최만년의 녹음임에도 이전의 연주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기민하고 청명한 연주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녹음 상태도 빈 필과의 것보다 더 좋아져서 몽퇴의 영웅 교향곡을 듣고자 한다면 이것을 추천하고 싶다.


몽퇴가 지휘하는 베토벤은 여전히 일정부분 시대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악보를 대하는 객관적인 관점과 투명한 밸런스 감각, 시원시원한 템포 등이 어우러져 기존의 독일계 대가들이 들려주던 무겁고 때로는 신경질적이거나 강박적인 베토벤과는 전혀 다른 순음악적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멋지게 드러낸 탁월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철저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평가하자면 3번 1악장 코다에 가필 없이 연주한 것만으로도 나는 몽퇴의 베토벤 연주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베토벤이 적어 놓은 그대로를 보고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지휘자의 탁월한 균형감각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고 충분히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퇴의 연주는 그것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훌륭하기 그지 없는 연주이니 더더욱 높이 평가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