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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6기 #4 - 클뤼탕스/베를린 필

by iMac 2017. 5. 17.


또 다른 프랑스인(?)


앞서 살펴본 몽퇴의 멋진 녹음이 진행되는 한 편으로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프랑스인처럼 생각되는 지휘자가 몽퇴 만큼이나 의외로 베를린 필과 베토벤 교향곡을 녹음한다. 나름 올드팬들 사이에서 상쾌하면서도 기품있는 연주로 높이 평가받는 클뤼탕스의 녹음이 그것이다.






앙드레 클뤼탕스, 베를린 필 (1957~1960)



프랑스인의 베토벤 그2


앙드레 클뤼탕스(André Cluytens, 1905~1967)는 이름만 보면 프랑스 지휘자인데, 정확히는 프랑스어권 벨기에 태생 지휘자이다. 물론 프랑스어권 출신이다보니 음악적 경력의 상당부분을 프랑스 악단과 함께 했기에 프랑스 지휘자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경력이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빌란트 바그너의 초청으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여러 차례 지휘하기도 했다.


몽퇴나 샤를 뮌쉬 만큼이나 대외적으로 폭넓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레퍼터리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독일 계열 음악에서도 높이 평가받은 지휘자였고, 그 대표적인 기록이 바로 이 베토벤 교향곡 전집일 것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베를린 필이라니!


카라얀의 그 유명한 전집보다도 앞선 녹음이라는 점이 더더욱 놀랍다. 녹음 장소는 베를린의 그뤼네발트 교회로, 초창기 EMI에서 종종 베를린 필 녹음장소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나중에 카라얀이 DG와 주로 녹음했던 예수 크리스트 교회의 울림과 미묘하게 다른 소리를 들려준다. 물론 녹음 방식이 전혀 다르다보니 딱히 뭐라 말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아무튼,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단 나쁘지 않다. 적당히 단단하게 자리잡은 팀파니의 타격위에 특유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베를린 필의 현악과 선명한 관악이 어우러져 제법 들을만한 소리를 들려준다. 역시나 프랑스계 답게 전반적인 분위기는 베를린 필의 연주임에도 미묘하게 밝은 색채감이 감돈다. 남국의 밝은 감각이 베를린필의 어두운 컬러와 잘 조화되어 나름 매력적이다. 





다만, 좋은 것은 딱 거기까지이다. 베를린 필의 강력한 합주력에 힘입어 전체적으로 어지간한 수준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긴 하나 뭔가 색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전곡 내내 비슷한 느낌을 받으며 서서히 지루해진다. 같은 무렵 다른 곳에서 녹음을 진행하던 몽퇴의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클뤼탕스보다 훨씬 투명하고 개성이 강한 음악을 만들었던 걸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과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 무렵 많이 연주되던 일반적인 스타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복구 생략이나 가필의 사용 모두 그 당시 전형적인 스타일 그대로이다. 물론 베를린 필의 연주는 여전히 멋지지만 색다른 해석이 보이지 않으며 악기간 밸런스도 기대만큼은 아니다. 투명한 밸런스라는 점에서 몽퇴의 비범한 해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결국, 이 녹음은 곧이어 떠들썩하게 등장한 카라얀의 첫번째 베를린 필 전집에 파묻혀 버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카라얀의 것이 흥행면에서 그야말로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으니 그럴수 밖에. 여전히 나름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지만 다소 겸손하게 느껴지는 클뤼탕스의 베토벤은 설자리가 좁을 수 밖에 없다. 특유의 밝은 감각 덕에 요즘도 가끔 전원 교향곡 정도가 추천되는 정도. 클뤼탕스의 전원은 분명 좋은 연주이긴 하지만 둘러보면 그보다 더 좋은 전원이 수 없이 많다. 옛날 스타일로 푸근한 연주를 기대한다면 여전히 발터의 전원이 먼저 아닐까?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는 합창 교향곡에서 니콜라이 게다가 부르는 멋진 독창이 기억에 남고, 카라얀 이전의 베를린 필이 그뤼네발트 교회에서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일종의 소중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