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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키릴 페트렌코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 (2017.9.13.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by iMac 2017. 9. 16.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앙코르

쇼스타코비치, 왈츠-스케르초

인터미션

말러

교향곡 제5번


이고르 레비트, 피아노

키릴 페트렌코, 지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 




힘겹게 보내던 여름도 어느덧 서늘한 바람에 밀려나고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날씨가 되었다. 언제 예매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쯤 되면 연주회 일정이 다가온다. 


키릴 페트렌코가 사이먼 래틀의 후임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로 선출된 것이 어느새 2015년의 일이 되었다. 그 때에는 정말 임기가 한참 남았는데 벌써 뽑는다 싶었는데 어느새 내년으로 훌쩍 다가왔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의 내한연주는 거의 처음이지 싶은데 이것도 베를린 필 후광에 힘입은 마켓팅인가 싶다.


키릴 페트렌코는 베를린 필 디지털 콘서트홀에 연주가 많이 올라와 있지는 않으나 찾아 들어보면 제법 나쁘지 않았다. 지휘 모습은 그닥 세련되지 않아서 시각적인 재미는 덜하지만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베를린 필 상임이 되기도 전에 국내에서 보게 되었다.



라흐마니노프


이 작품은 물론 쉬운 곡은 아니겠지만 연주효과는 보장되는 곡이라고 생각해왔기에 내심 기대가 컸다. 파가니니의 그 유명한 주제를 가지고 어찌 작품을 망칠 수 있겠는가.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는 바흐, 베토벤, 르제프스키의 변주곡 3곡을 담은 음반으로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본인은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제일 좋아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제법 깔끔하고 세련된 터치가 제법 들을만 한 음반으로 그라모폰 등에서도 추천된 음반. 






러시아 태생으로 독일에 이주한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 앞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변주곡 음반들의 느낌과는 좀 다른,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스타일이어서 한편으로는 반신반의 했는데 실제로 내 느낌도 그랬다.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연주이긴 했지만 라흐마니노프에게서 기대하게 되는 현란한 맛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명불허전 대단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진지하게 접근한 탓인지 음악의 흐름이 살짝 지루하게 느껴졌다.


연주는 어쨌든 멋지게 잘 끝났고 객석의 반응은 정말 열광적이었는데,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연주 시작 전부터 느껴졌다. 시작부터 기대도 컸던 것 같고 그만큼 반응도 무척 뜨거웠다. 이고르 레비트는 어딘지 무척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 같았는데 라흐마니노프가 좀 심심했던 것은 그런 성격 탓일까? 앙코르는 쇼스타코비치의 어린이 소품같은 왈츠-스케르초를 연주했는데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와 작은 음량으로 중간부분과 선명한 대비를 보여준 해석이 나름 들을만 했다.



말러


생각해보니 내가 실연에서 말러의 5번 교향곡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번 정도만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이제 드디어 5번을, 그것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연주로 듣는다니. 다 듣고 난 소감을 결론부터 말하면 실연으로 들은 말러의 교향곡은 정말 위력이 대단했고 그가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는 것이다. 정말 엄청난 음향의 홍수를 경험했는데, 그런 만큼 생각할 것도 많았고 인상적이었던 만큼 아쉬운 점도 분명히 느껴진 연주였다.


우선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예당의 음향. 3층 맨 앞 중앙쯤에서 들었는데 총주에서의 어마어마한 음량이 홀을 가득 메우다 못해 꽉 차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여유롭게 투티를 품어주지 못하고 과포화 직전의 오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음향 밸런스는 여전히 문제인데 중저현은 잘 들리는데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여전히 잘 안들린다. 이 홀의 어느 자리에 앉아야 이상적인 현의 음향을 들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제1바이올린이 그나마 잘 들리긴 하는데 역시 바이올린 특유의 섬세한 선은 그려지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오케스트라는,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정말 잘해주었는데 묘하게 드는 느낌은 딱 거기까지라는 것. 이를테면 베를린 필이나 빈 필이 들려주는 세련된 개성이 아닌 몰개성적인 울림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목관도 정말 잘해주었지만 '음색'이라는 점에서 큰 매력은 못 느꼈다. 이건 정말 종이 한 장 차이같지만 그 차이가 레벨을 가르는 것 같다. 말러의 교향곡, 특히 5번 같은 변화무쌍한 작품에서 그러한 요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 페트렌코는 역시 베를린 필에 가야겠구나, 싶었다.


그럼 페트렌코는? 라흐마니노프에서 살짝 느꼈던 지나치게 진지해서 지루해졌던 것이 다시 떠오른다. 모든 프레이즈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진중함은 좋은데 가끔은 그게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은 진한 중저역이 더더욱 도드라지게 들리는 음향상태와 해석의 스타일이 맞물려 1, 2악장은 정말 최고의 시너지를 보여줬다. 


덕분에 2악장까지 들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연주회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아주 오래전 연주회를 간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는 늘 실연을 듣는 그 자체가 흥분되는 경험이었지만 어느덧 그런 느낌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는데 이날은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1, 2악장이 1부를 이루는 구성이라는 것을 청중들에게 주지시키려는 듯 약간의 튜닝까지 하고 2부에 해당하는 3악장으로 넘어갔다. 


3악장은 1, 2악장의 두터운 음향에서 벗어난 투명한 음향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순식간에 달라진 음향의 대비가 확연히 느껴진다. 문제는 3악장에 이르니 차츰 1, 2악장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던 요소들이 약점으로 바뀌었다는 것. 


보다 투명하게 변화무쌍한 음향을 보여줘야 하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듣는 음향 또한 현악이 좀 답답하게 들리니 슬슬 아쉬워졌다. 호른 솔로가 잘해주긴 했는데 음색적으로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은 점도 아쉬웠다. 역시 좀 더 긴 휴지를 갖고 3부를 여는 아다지에토로 넘어간다. 


아다지에토는 워낙 유명한 대목인지라 기대도 컸지만 아쉬움도 컸다. 현악과 하프만으로 구성된 곡인데 현의 울림이 답답하게 들리니 감흥의 대부분이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템포는 재보지는 않았지만 요즘 스타일대로 비교적 빠른 진행이었는데 그게 또 뭔가 언밸런스했다. 느긋한 템포로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예전 스타일도 아니고 10분을 넘기지 않는 빠른 템포로 정갈하게 이끌어 가는 스타일도 아닌 그 중간의 애매함. 템포는 빠르나 울림은 아주 진해서 스타일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4악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5악장. 5악장은 정말 요리하기 까다로운 곡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것저것 음반을 들어봐도 아주 속시원하게 흡족한 연주를 꼽기가 어렵다. 이쯤되면 말러가 너무 어려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적으로 전반부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너무 다르다. 거대한 울림과 대위법적인 정교한 구성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스타일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만만치 않다. 덕분에, 마지막 악장은 지루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1, 2악장에서 도달했던 전율이 내 마음속에서는 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끝났다. 물론 마지막 광란의 질주는 대단하긴 했지만.


객석의 반응은 정말 열광적이었다. 앞서 좀 까다롭게 쓰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기능적으로 정말 흠잡을 데 없었고 실제 눈앞에서 보고 듣는 말러 교향곡의 위력은 연주회장 뚜껑이 당장 터져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분명했지만 말러의 교향곡에 대해서만큼은 다시 한번 확실히 인정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러의 교향곡 연주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아쉬움들은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페트렌코의 해석에도 좀 아쉬움이 있었지만 오케스트라가 베를린 필이었다면? 또 달랐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말러가 곡을 너무 어렵게 썼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이 한 곡을 연주하면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이상적으로 보여주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예당의 음향적 환경 또한 아쉽기 그지없었다. 사실, 내가 그날 연주의 음향에서 느꼈던 아쉬움의 절반 정도는 현악을 답답하게 들려준 홀의 음향상태 때문일 것이다. 과연 어느 자리에서 들었어야 이상적이었을까?


또 한가지, 아다지에토는 떠들썩한 악장들 가운데 그 존재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독일적인 울림이어서 재미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불현듯 이 곡에 대해서 R.슈트라우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초의 리허설에 참관했던 R.슈트라우스가 3악장까지는 좋았는데 4악장은 뜬금없이 대중취향적이라서 솔직히 별로라고 평소의 그답게 직설적으로 평을 했었더랬는데 그런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겠구나 싶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론은 잊지 못할 연주회였음은 분명했다. 덕분에 한동안은 말러 5번 음반들을 다시 뒤적거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