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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13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바다출판사 평소에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은 집중해서 빨리 읽어버리는 편인데, 이 책은 재미있음에도 장별로 끊어서 읽느라 대략 한 달정도 걸렸다. 그것도 한달간 오롯이 이 책에만 집중한 덕이다. 보통의 독후감이라면 다 읽고 나서 한 번에 쓰는 것인데 이 책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책의 구성은 지금까지 포스팅했던 대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D.911) 전체 24곡에 대해 각각의 곡 마다 하나의 장을 부여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똑같은 작품 해설 방식이 아니라 각 곡마다 접근방법, 이야기 전개 방식을 달리하다보니 읽을거리로서도 무척 다채롭고 흥미진진했다. 2017/05/23 - [Classical.. 2017. 6. 26.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22, 23, 24 22곡 용기 (Mut) 짧지만 연가곡의 끝무렵에 돌연 등장한 다소나마 전투적인 노래. 계속해서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데 마냥 그런 식으로 진행되기만 해서는 곤란하니까 음악적으로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각 곡의 조성이나 템포 등도 면밀하게 생각해서 배치한 것이다. 노래는 짧은데 이번 장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펼쳐진다. 가사에 '세상에 신이 없다면 우리가 바로 신이야!'라는 대목 때문. 바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문장 인용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슈베르트가 성장한 종교적 환경을 짚어보면서 자연스레 그가 남긴 종교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짧은 생의 기간 동안 6곡이나 미사곡을 작곡한 것을 보면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달리 하이든과 모차르트 처럼 보다 전통적인 오스트리아 음악가들의 활동 경향과 비슷.. 2017. 6. 25.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20, 21 20곡 이정표 (Der Wegweiser)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나아가는 느낌의 음악. 보스트리지가 지적하고 있듯이, 맨 첫곡 '밤 인사'와 걸음걸이 같은 느낌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내용적으로는 겨울 나그네 이야기 전체가 어디론가 가고 있는 과정 속 이야기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곡은 길을 가다가 마주친 이정표에 대한 것으로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어디론가 계속 움직이는 느낌이 강하다. 다만, 가고는 있어도 마지막에 힘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곡 초반에는 다소나마 힘과 의지가 느껴졌지만 마지막의 힘없는 마무리에서는 체념한 듯하다. 이제, 이 대목에서 실제로 투병중이었던 슈베르트의 심정이 묻어난다.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은가? 연구자들이 추측하건대, 2.. 2017. 6. 20.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16, 17, 18, 19 16곡 마지막 희망 (Letzte Hoffnung) 방랑끝에 죽음의 냄새를 맡고 까마귀가 따라오더니 이제는 흔들거리는 나뭇잎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음악적으로 아주 대담한 곡이라고 생각되는데, 처음 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피아노의 독특한 음형이 그러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뭇가지에서 바람에 흔들려 곧 떨어질 것 같은 나뭇잎의 모습 같기도 하다. 스트라빈스키의 계속해서 변화하는 리듬과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음악으로 겨울 나그네의 엄청난 음악적 깊이를 새삼 깨닫는다. 언제 들어도 놀랍고, 새로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음악이다. 17곡 마을에서 (Im Dorfe) 내가 듣기에는 어슬렁거리는 느낌이랄까? 혹은 가사 속 내용 처럼 온 마을이 잠들어 .. 2017. 6. 19.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13, 14, 15 13곡 우편마차 (Die Post) 앞서 슈베르트가 처음에는 전체 시를 12개로 알고 12곡으로 만들었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머지 시도 곧 알게 되어서 전체 24곡으로 완성되었는데 숫자도 그렇고 작곡 배경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12곡씩 두 부분으로 묶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 출판 악보에는 판본에 따라 아예 1부, 2부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보스트리지 자신도 12곡까지 부른 다음 잠시 틈을 주고 넘어가기도 했다고 하는데, 함께 공연했던 피아니스트 안스네스가 피아니스트로서 이렇게 긴 시간 앉아서 연주한 곡이 없다고 말한 일화도 전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협주곡이나 독주곡, 실내악 레퍼터리 중 어지간해서 피아니스트가 70여분 동안 내내 앉아서 연주하는 곡은 .. 2017. 6. 14.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11, 12 11곡 봄의 꿈 (Frühlingstraum) 이 곡의 첫 머리 피아노 전주는 늘 들을 때 마다 소박하고 귀에 익은 선율이 친숙하게 들려오는 동시에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가슴이 아련해진다. 봄날의 꿈처럼 현실이 그러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알기에 봄날의 꿈이라는 상황자체가 지독한 역설인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 장에서는 우선 노래의 구조를 보여준다. 1~6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1~3절, 4~6절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음악이 반복되는 구성으로, 꿈을 꾸는 1절과 4절은 그래서 다른 가사 같은 선율로 이루어진다. 2절과 5절은 닭이 울며 달콤한 꿈을 깨 버린다. 3절과 6절은 각각 마무리로서 특히 마지막 6절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가사를 보며 설명을 읽으니 .. 2017. 6. 12.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9, 10 9곡 도깨비불 (Irrlicht) 9곡에 대한 설명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이 곡에 대해서는 악보를 통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제목인 '도깨비불'이라는 현상에 대한 슈베르트 당시의 학구적인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계속해서 읽어 나갈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인데, 하다하다 '도깨비불'이라는 얼핏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근대에 이르러 많은 연구자들이 도깨비불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 또한 과연 이걸 알아서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읽는 동안은 분명, 흥미진진하다. 이 곡의 첫 시작은 기묘한 두 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게 어디선가 다른 곡에서도 들어 본 느낌이 든다. 어디서 비슷한 걸 들었을까 한참을 .. 2017. 6. 10.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6, 7, 8 6곡 넘쳐흐르는 눈물 (Wasserflut) 한 곡 한 곡에 대한 장을 짚어가는 것도 좋지만, 독후감치고 너무 길어지고 결정적으로 포스팅에 진도가 너무 안나가는 것 같아서 슬슬 지치는 감도 있는 즈음에 6~8곡 까지는 그런대로 한 방에 묶어서 감상을 올릴 만 하다. 겨울 나그네 이외에 추가로 소개할 만한 음반 이야기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 한글로 옮겨 놓은 제목은 정말 눈물이 주르륵 목놓아 울부짖는 것 같은데, 적어도 내가 듣기에 노래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지는 눈물. 눈이 내려 고요해진 세상 속에 소리 없이 뚝 뚝 떨어지는 눈물같은 광경. 눈이 수북하게 쌓여 조용해진 호젓한 들판위에 서서 슬픔을 머금고 관조적으로 읊조리는 듯 하다. 물론, 노래는 그런 식으로 읊조리면서 차츰차츰 고조.. 2017. 6. 6.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5. 보리수 5곡 보리수 (Der Lindenbaum) 겨울나그네 중 가장 유명한 곡 '보리수'. 슈베르트가 처음 겨울 나그네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다들 이해를 못하고 그나마 '보리수' 하나 마음에 든다고 말하자 슈베르트가 이 곡 전체가 다 좋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흔히 소개되곤 하는데, 이 책 서두에서 보스트리지는 이것을 일종의 미심쩍은 '신화'만들기로 설명한다. 발표당시 대다수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각광받은 걸작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이야기기인데, 실제 슈베르트 생전에 이미 겨울나그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평론도 있었고 당시 슈베르트 작품들은 꽤나 인기가 높아서 연주도 자주 되고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 잊혀져 비참한 생활을 한 것 같이 생각했던 것은 객관적인 근거없는 막연한 과장이었던 것이다.. 2017.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