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music note

로엔그린 - 비쉬코프

by iMac 2009. 9. 13.

바그너 : 로엔그린 (Profil, 2008.5.30~6.14)



로엔그린 : 요한 보타
엘자 : 아드리안느 피총카
텔라문트 : 팔크 슈트루크만
오르트루트 : 페트라 랑
하인리히 왕 : 연광철
전령 : 아이케 빌름 슐테
세미온 비쉬코프, 지휘 / WDR심포니 오케스트라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로엔그린 전곡 레코딩. 비쉬코프는 얀손스와 함께 대표적인 구 소련 출신 카라얀 문하생의 한 사람인데, 최근까지 여러 모로 얀손스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로엔그린 신보는 그간의 무관심을 무안하게 만드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시종일관 느껴지는 지휘자의 원숙한 손길이 정말 대단하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유유히 흘러가는 음악의 흐름이 인상적이다. 오케스트라의 밀도 있는 울림은 물론이요 녹음또한 훌륭해서 진한 표정과 투명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음향을 들려준다. 금관의 시리디 시린 음향은 아무리 볼륨을 높여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가수진도 전반적으로 호연인데, 특히 두 주역인 보타와 피총카의 안정감있는 가창이 훌륭하다. 3막의 2중창은 다소 길고 지루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비쉬코프의 노련한 리드와 함께 엮어가는 자연스러운 흐름덕에 술술 잘 넘어간다. 흔히 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연주라 하겠다. 보타의 경우 평소 비대한 체격에 비해 다소 유약한 목소리로 생각해 왔는데 이번 로엔그린에서는 여전히 밝은 미성이지만 그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다. 최고의 로엔그린 중 한명으로 꼽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 마지막 로엔그린이 이름을 밝히는 장면도 바렌보임판처럼 생략없이 끝까지 연주하고 있는데 통상적인 컷트한 버전에 비해(일반적으로 Lohengrin gennant!에서 자른다) 박력은 덜 하지만 이것도 그런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듣기에 나쁘지 않다.

참고로, 요한 보타와 비쉬코프의 로열 오페라 실황을 비바베르디님 블로그에서 들을 수 있다. 이번 녹음은 쾰른에서 있었던 2번의 성공적인 콘서트 직후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팔크 슈트루크만은 바렌보임과의 음반(Teldec) 이후 다시 텔라문트 역을 맡고 있는데 이전 바렌보임 음반에서 처음 접한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강성이어서 듣기에 부담스럽기만 하고 별 재미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연기를 시도하고 있어서 훨씬 다채롭고 듣기에도 좋아졌다. 

이 음반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페트라 랑이 맡은 오르트루트이다. 로엔그린의 다른 등장인물들이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인형같은 전형적 캐릭터인 탓에 그나마 가장 입체적인 오르트루트역의 존재가 중요하기 이를데 없는데 실제로 오르트루트가 맡은 2개의 주요 장면은 (2막 중반과 3막 마지막) 작품 전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페트라 랑의 가창은 그저 착실하기만 해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크리스타 루드비히나 발트라우트 마이어등이 보여주었던 소름끼치는 섬찟한 충격에 비하면 포스가 턱없이 부족한데 확실히 오르트루트역은 두 얼굴을 오가는 변신을 보여주기도 해야 해서 그냥 잘 부른 정도로는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려운 배역이다. 

전체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완성도 높은 연주이기에 오르트루트역의 평범함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탄산음료수에서 톡 쏘는 맛이 살짝 사라져버린 듯.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적극 추천할 수 밖에 없다. 전체적인 흐름이 대단히 훌륭하고 녹음 또한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일반 CD로 들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제대로 갖춰진 SACD 시스템으로 들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럴 때마다 SACD를 다시 장만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다시 들곤 한다. 물론 제대로 된 SACD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문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곧바로 생각을 접고는 있지만 이런 좋은 연주를 접할때마다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