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비엔나 #5 (2016.5.20) - 빈 필 & 자허토르테

걸어서 연주회장 가기


서울에서 연주회장, 주로 많이 가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가려면 꽤나 만만치 않은 경로를 뚫고 가야 한다. 운전해서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것도 교통상황에 따라 만만치 않기에 연주회장을 걸어서, 그것도 무직페라인에서 빈 필 연주회를 보러 간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호텔에서 나와 느긋하게 걸어서 저녁 7시 조금 못되어 도착. 여기에서 연주회를 보러 걸어오다니.


도착하니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건물에 들어섰는데, 1870년에 지어졌다는 이곳은 오늘날 우리가 보아온 현대식 건물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보인다. 로비 공간도 그리 넓지 않고 금새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다. 





무직페라인간만에 다시 꺼내 본 연주회 티켓


무직페라인


인터넷에서 예매했기에 우리 자리가 어디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처음 간 곳이라 입구부터 찾기가 좀 애매했다. 곳곳에 안내원들이 서 있어서 표를 보여주니 바로 알려줘서 황금홀에 들어서니 정말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규모가 작아서 요즘 연주회장에 비하면 아늑한 응접실 같은 느낌이 든다. 공간이 작아서 오히려 좋은 소리를 만들기에 유리했던 것일까?



서울에서는 연주회장 자리에 앉으면 곳곳에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과 이를 제지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7, 8은 연주회장 내부 사진을 찍고 있어서 순간 당황했다. 여기서는 그런거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덕분에 편안하게 사진을 찍긴 했는데 여기서 우리 아이폰의 사진찍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우리 자리는 오케스트라 바로 앞 왼쪽 열. 정말 코 앞에서 고개를 잔뜩 들어서 올려다 봐야 하는 자리라 분명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구한게 어디냐 싶었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바이올린 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고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자리를 잡아보리라 다짐했다.



빈 필의 저녁 연주회


이날 연주회에 대해서는 살짝 먼저 포스팅 한 적이 있다.( 2016/12/27 - [Classical Music/concert] - 기묘한 만남 -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 그 기이했던 인연에 대해서는 기존 포스팅을 참고하면 되겠고, 여기서는 연주회 내용만 되짚어 본다. 빈 필은 기본적으로 단원들의 정식 직장은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소속이기에 거의 매일 밤 오페라 반주를 하고 있어 대개의 연주회는 낮에 이루어지는데 이날은 빈 축제 기간의 일부로 이루어진 특별연주회 같은 성격이어서 특별히(!)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는 연주회였다. 우리는 저녁연주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빈 필은 저녁 연주회가 드문 경우이니 나름 보기드문 연주회를 본 셈이다.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리사 바티아쉬빌리)

슈만, 교향곡 제2번


일단 이 자리에 앉아 들으니 지휘자가 기합을 넣는 숨소리 하나하나 다 들릴 정도라 정말 신기했다. 기합을 넣은 정도에 비하면 에그몬트 서곡은 역시나 그런대로 무난한 수준. 이번에 보니 전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여성 단원의 비율이 현저히 증가했음을 실감했다. 바이올린 주자들의 실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들도 사람이 맞긴 하구나 싶었다. 


사실상 가장 기대가 컸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리사 바티아쉬빌리가 독주를 맡았다. 예전 틸레만/드레스덴과 협연했던 영상과 음반에서 압도적인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날 연주는 어딘지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렴 사람이 늘 똑같을 수는 없지. 곡 자체도 워낙 어려운 곡인지라 전반적으로 잘은 했지만 군데군데 힘겨워 하는 것이 느껴졌다. 2악장이 지루했던 건 나만 그랬나? 


마지막곡은 지휘자 변경만큼이나 선곡의 변경이 크게 아쉬웠던 대목. 2번이 나쁜 곡은 아니지만 3번 '라인'을 기대했던 입장에서라면 더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에셴바흐는 확실히 진중하긴 하나 음악을 흥미롭게 만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고 2번은 그럴 경우 지루해지기 쉬운 곡. 


이모저모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빈에서 듣는 빈 필의 음향은 역시 이름값을 했다. 이걸 듣고 나니 서울에서 듣는 빈 필은 제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역시 본고장 이곳에서 들어야한다는 걸 실감했다. 아쉬운 순간도 잠시 어느새 연주회는 끝나버렸다. 정말 찰나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려나? 그래도 다음날 오페라 공연도 예매했으니 이 멤버들을 오페라 극장에서 다시 볼 기대를 하며 일어섰다.


극장 밖을 한바퀴 돌며 둘러보니 뒤쪽 문으로 연주자들이 악기를 챙겨 나오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악기를 챙겨 이야기를 나누다 걸어서 돌아가는 악장의 모습이나 자전거에 올라타는 제2 바이올린 수석의 모습 등등. 이제는 공연 영상을 통해 낯익은 여러 단원들의 모습을 눈 앞에서 다시 보면서 연주회의 여운에 잠겨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연주자들이 나오는 문까페 자허 입구잡지책처럼 멋진 자허 메뉴판




자허토르테 (Sachertorte)


무직페라인에서 나와 조금 만 더 걸어가면 오페라 극장이 나오고 바로 뒤편에 까페 자허가 있다. 정확히는 자허 호텔이 있고 그 1층에 까페가 있다. 그곳에 가면 그 유명한 자허토르테를 맛볼수 있는데 1832년에 시작한 디저트 하나로 가문을 일으켜 세워서 호텔까지 지은 셈이니 대단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누가 원조인지에 대해 까페 데멜과의 소송까지 있었고 오늘날에는 위키피디아에 레시피까지 공개되었을 정도이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꼭 원조라고 하는 곳의 본점에서 먹어보고 싶었다. 



빈 시내 곳곳, 그리고 공항 면세점 내 곳곳에서 자허토르테라는 제품을 팔고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천안호두과자'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호두과자도 다들 생긴것이 똑같고 맛도 비슷하지만 내 입맛에는 역시 원조라고 하는 '학화호두과자'가 제일 맛있었다.(천안 버스터미널 건너편 건물에 할머니 사진이 붙어 있는 곳) 자허토르테도 그런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듯.


연주회가 끝나서 밤 10시가 넘어 까페 자허를 찾았다. 여전히 손님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안내 받았다. 흔히들 비엔나 커피의 원조라고 하는 '멜랑주'에 '아인슈패너', 자허토르테 각각 하나씩 주문. 요즘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뭔가를 섞은 커피는 맛이 텁텁해져서 좋아하지 않는데 멜랑주는 정말 특이한 맛이다. 텁텁하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묘하게 부드럽고 적당히 쌉쌀한 커피맛. 달달한 자허토르테와 맛이 잘 어울린다. 


멜랑주자허토르테알베르티나에서 바라본 오페라극장


자허토르테는 과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아주 달달하고 쫀득한 초콜릿 케익의 식감이 일품이고 그 사이에 자리잡은 새콤한 살구잼이 맛의 정점을 찍어준다. 여기에 더해진 하얀 생크림의 조화. 이어지는 멜랑주 한 모금. 디저트류를 많이 먹어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디저트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날 일정은 오페라극장 뒷편에 위치한 알베르티나에 올라 오페라극장 야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장소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와서 유명해진 곳인데,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이 장소에 꼭 와보고 싶었다. 실제 이곳에 와서 나도 야경을 보다니. 뭐든지 처음이고 하나같이 설레는 경험으로 가득했던 하루가 그렇게 끝나갔다. 하지만, 다음날도 여전히 새롭고 만만치 않은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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