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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기묘한 만남 -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by iMac 2016. 12. 27.

올해 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교향곡 연주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는 광고를 보니 기묘했던 만남이 떠올라 정리해본다. 전혀 의도치 않게 지휘자 에셴바흐를 연주회에서 작년 10월 이후 세 차례나 보게 된 이야기.


 만나기 전 - 음반 이야기


크리스토프 에셴바흐(1940~)는 지금 지휘자로 알려져 있지만, 올드 팬이라면 70년대 DG에서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이, 모차르트치고는 좀 딱딱한 연주였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이 녹음도 이젠 애플뮤직에서 원없이(?)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자체를 별로 즐겨듣지 않는 탓도 있지만 여전히 재미는 없게 들린다. 말 그대로 우직한 연주.


지휘자로서의 에셴바흐는 이런저런 방송 녹음들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인상들은 다 나쁘지는 않지만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은 착실한 연주들이었다. 그래도 그 중에 우연히 마주친 브루크너 6번 교향곡 연주(런던 필)는 의외의 호연이었다.  이전까지는 더도 덜도 아닌 착실하지만 큰 감흥은 없는 연주라고 느낀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브루크너는 그러한 점이 역설적으로 장점으로 승화되었다. 진중한 접근이 브루크너 작품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 멋진 연주로 기억한다. 역시 애플뮤직에서 들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에셴바흐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그 자신의 개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성실한 모습으로 크게 흠잡을 곳은 없어보이나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전쟁고아 출신에서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음악인이 된 존경할만한 인물이고, 러시아 피아니스트 S.리히터도 회고담에서 에센바흐를 뛰어난 음악인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했으니 그의 음악성은 객관적으로 충분히 인정할만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매력적이었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딱히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지휘자였는데, 작년 10월 이후 희한하게 계속 연주회에서 보게 되었다. 


 연주회에서


1. 빈 필 내한공연, 2015.10.10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교향곡 제40번, 제41번


빈 필의 내한공연인데, 프로그램은 모두 모차르트. 거기에 지휘자는 에셴바흐. 빈 필만 아니라면 그닥 땡기지 않는 프로그램인데, 아무튼 결론은 빈 필이니 가보았다. 피아노 협주곡은 직접 지휘하며 연주를 겸했는데, 전체적으로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연세탓인지 곳곳에서 미스터치는 어쩔 수 없는 듯. 그러고 보면 바렌보임이 정말 대단하구나, 실감했다. 빈 필 특유의 음색과 노련한 면모는 여전했고 연주도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지휘자에게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다소 어거지로 구분지어 보자면, ‘훌륭한 지휘자’와 ‘위대한 지휘자’와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굳이 나눠보자면 에셴바흐는 ‘훌륭한 지휘자’ 정도로 생각되었다. 엄청난 감동까지는 아니지만, 빈 필을 지휘한다는 것이 어디 아무나 가능한 일인가? 그런 점에서 충분히 ‘훌륭한 지휘자’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나에겐 딱 거기까지.



2. 서울시향, 2016.1.9.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최예은)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


이 공연을 예매한 이후 돌연 정명훈 지휘자가 서울시향을 사임하면서 이 날 공연의 성사 여부 자체가 당장 눈앞의 문제가 되었다. 서울시향 공연을 그리 자주 가지도 않았었는데, 하필 간만에 가는데 이런 일이. 사실, 이 날 공연은 독주자최예은(현재 의 이쁨을 받고 있는)의 연주가 궁금해서 예매한 것도 상당부분이었는데 말이다. 


연주회를 몇일 앞두고 에셴바흐가 급거 대신 지휘봉을 잡기로 하면서 연주회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최예은의 멘델스존도 좋았고, 브루크너 9번같은 대곡을 이렇게 큰 문제없이 무난하게 이끌어간 것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고보면 최예은과 협연한 협주곡 영상도 있으니 그 인연도 이어진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다져진 서울시향의 탄탄한 실력도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정말 의도치 않게 에셴바흐를 다시 본 셈이었다.


* 에셴바흐 지휘,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음악제 오케스트라와 최예은의 협연.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연주자세까지 묘하게 무터와 닮아가는 최예은의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있다. 에셴바흐의 지휘모습 또한 덤.




3. 빈 필, 2016.5.20. - 빈 무직페라인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리사 바티아쉬빌리)

슈만, 교향곡 제2번


보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포스팅할 빈 여행기에 적기로 하고, 일단 빈에서 빈 필 연주회를 보기로 하고 겨우겨우 티켓을 예매했다. 원래 예매했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베토벤, 슈테판 왕 서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리사 바티아쉬빌리)

슈만, 교향곡 제3번 ‘라인’

에사 페카 살로넨, 지휘


그렇다, 원래는 ‘살로넨’이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발 몇일전인 5월 12일 다음과 같은 메일이 도착했다. 한참을 다시 봐도 믿겨지지 않는 상황.




Dear friends of music,

 

Unfortunately M° Esa-Pekka Salonen had to cancel his participation in the concert with the Vienna Philharmonic scheduled for 20 May 2016 due to health reasons. We thank M° Christoph Eschenbach who will take over with a slightly changed programme:

 

Friday, 20 May 2016, 7.30 p.m.

Beethoven: Egmont-Ouvertüre, op. 84

Brahms: 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D-Dur, op.77

Schumann: Symphonie Nr. 2 C-Dur, op. 61


All tickets remain valid. We kindly ask for your understanding and remain 

with best regards




살로넨이 건강문제로 취소한 일정을 에셴바흐가 약간 프로그램을 변경해서 대신한다는 내용. 연주회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빈에 가서까지 이 분을 다시 만나다니! 황당하다고나 할까? 서울에서만 3개월 사이에 이미 두 번이나 봤는데 빈에 가서 또 보다니. 슈만 3번을 기대했는데 2번으로 바뀌다니. 지휘자로서도 살로넨이 훨씬 더 흥미로운데. 


이쯤 되니 좀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이 분은 대타 전문 지휘자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음악계에선, 특히 빈 처럼 연주회가 많은 도시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듯 하다. 아무튼 더 자세한 것은 역시나 빈 여행기에서 나중에 포스팅.


여기까지 와서 또 만나다니!


아무나 빈 필 연주회 대타를 맡는 것은 결코 아닌만큼 에셴바흐가 빈 필에서도 인정받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휘자라는 반증이지만, 어쨌든 앞서도 적었듯이 나에게는 아직은, 여전히, 딱 거기까지이다. 하여튼, 결국 빈에 가서까지 또 에셴바흐의 지휘를 보게되었다. 결론은 역시 나쁘지는 않은 잘 다듬어진 연주. 보다 자세한 것은 빈 여행기에서 적기로 하자.


그 이후,동안 잊고 있었는데 마침 연말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회 생중계 광고가 떴다. 찾아보니 지난 7월에도 서울시향 연주회를 지휘한 적이 있었다. 정명훈 지휘자의 사임에서 비롯한 공백상황을 훌륭히 메꿔주러 한국까지 자주도 오셨으니 감사할 일이긴 하다. 


국내 활동 지휘자도 아닌 지휘자를 대략 7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세 번이나 만나게 되었으니, 기묘한 인연이라면 인연인 셈이다. 이번 28~29일 서울시향 베토벤 9번 공연도 작년말의 사태가 없었다면 아마도 정명훈 지휘자가 지휘했을 일정을 역시 대신 지휘하는 것일 듯. 그날은 마침 회사에서 늦게까지 근무하는 관계로 잘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다시 보니 이제는 묘하게 반갑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