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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2017 교향악축제 - 홍콩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7.4.16)

by iMac 2017. 4. 17.


펑람 : 정수

바르토크 :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Sz.112 ( 바이올린, 닝 펑)


인터미션


브람스 :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얍 판 즈베덴, 지휘 / 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 


앙코르

바그너 : 발퀴레의 기행








교향악 축제


매년 이맘때면 열리는 교향악 축제. 열심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항상 관심은 가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올해에는 색다르게 외국 오케스트라가 참가하는 것이 눈에 띈다. '홍콩필하모닉'.


즈베덴, 홍콩필하모닉


홍콩필하모닉에 대해서는 얼마전 애플뮤직에서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이들과 함께 진행중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녹음을 통해 알게 되었다. 녹음은 낙소스에서 발매하고 있고 현재 발퀴레까지 올라와 있는데 일단 시도를 했다는 자체로 놀랍고 궁금하기도 해서 제일 유명한 3막 도입부 부분을 들어보았는데.. 


헛, 잘 하는데?!


일단 홍콩필의 실력에 대해서는 나름 들을만 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고, 지휘자 즈베덴은 작년 5월 빈 여행 당시 빈 국립오페라에서 본 로엔그린 공연의 당초 지휘자였는데 일정이 바뀌면서 만나지 못했던 인연(?) 아닌 인연이 있었다. 빈에 가서 못 만난 사람 이렇게 볼 수 있는 건가 싶어 결국 예매까지 하게 되었다. ( 2017/02/03 - [Travel/europe] - 2016 비엔나 #10 (2016.5.21) - 빈 국립 오페라 (로엔그린) )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서 이걸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딱히 엄청나게 보고 싶은 상황도 아닌데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컨디션은 별로고. 한참 고민 끝에 그래도 일단 가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단 전반부는 컨디션이 별로여서 그닥 잘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인터미션 이후 컨디션이 좀 나아져서 후반부는 좀 들을만 해졌다. 




처음 듣는 소리


결론부터 말하면 가장 최근에 포스팅했던 예술의 전당 연주회들 모두 비교가 안되는 놀라운 수준의 연주회였다. 3층에서 들었는데 앞선 두 연주와 자리는 다르지만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기에 예술의 전당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소리가 이렇게 들을만 했었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내가 예술의전당 연주회에 그렇게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렇게 공간을 여유롭게 꽉 채우며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들었다. 

2016/12/07 - [Classical Music/concert] -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 밤베르크 교향악단 (2016.10.26)

2016/12/09 - [Classical Music/concert] - 정명훈 & 빈 필하모니 (2016.11.2)


나 자신의 컨디션이 별로여서 1부를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첫 곡부터 심상치 않은 음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르톡의 협연자 역시 흠잡을 데 없는 탄탄한 실력을 자랑했는데, 아주 듣기 좋은 톤을 가진 실력파였다. 다만, 내 취향에는 예쁘지만 스케일이 좀 부족해서 비르투오적인 면이 아쉽고, 결국 솔리스트보다는 오케스트라 악장이나 실내악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결국 내 컨디션도 별로고 스타일도 그래서인지 3악장쯤 되니 살짝 지루해졌다.


어쨌든, 흔들림없는 탄탄한 연주임에는 틀림없었고 덕분에 객석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덕분에 파가니니 카프리스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 한 곡을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나름 나쁘지 않았으나 역시 앞서 말한 스타일상의 한계가 아쉬웠다. 



브람스


후반부 메인 프로그램인 브람스 교향곡 1번은 그래도 듣기에 훨씬 수월한데다 컨디션도 좀 나아져서 들을만 하다 싶었다. 제대로 된 실력은 여기에서 가늠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결론적으로 연주회에 가서 이렇게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기도 오랜만이었다. 


엄청난 수준의 연주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일단 오케스트라가 홀의 울림에 잘 적응한 것인지 소리가 아주 들을만 했다. 홍콩이어서 시차적응에 문제가 없어서 컨디션이 좋은 탓인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앞서 포스팅했던 이름값으로는 훨씬 유명했던 단체들보다 훨씬 나았다. 가성비면에서 비교불가.


즈베덴은 시종일관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열정적인 지휘를 선보였는데 해석상 특이한 점은 없었지만 이 작품에서 기대하는 보편 타당한 울림과 흐름을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정도면 정말 잘한 것이라고 인정해야겠다. 현악 앙상블도 전반적으로 훌륭했는데 특히 비올라, 첼로 등 저현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청명하면서도 탄탄한 실력을 자랑한 목관 앙상블은 정말 부러웠다. 전체적으로 이렇게 안정적이라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단원의 상당수가 외국인들이었는데, 홍콩이라는 도시의 성격상 그렇게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도 4악장 초반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 호른 연주자는 중국계였는데 이토록 시원하고 편안한 소리라니. 호른 소리는 실제 연주회에서는 어느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든 항상 조마조마하게 하는데 이날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드넓게 펼쳐지는 현악의 잔잔한 배경 속에서 유유자적 울려 퍼지는 호른과 아름답게 이어지는 플룻. 음악을 들으며 정말 흐뭇했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사실 즈베덴의 브람스 1번은 베를린필 디지털 콘서트홀에도 올라와 있긴 한데, 어제의 연주회만큼 감흥이 크진 않았다. 베를린 필 쪽은 2013년 실황인데, 객원지휘자인데다 해석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재미가 덜했던 것 같다. 홍콩필과의 연주는 디테일에서는 모자라지만 지휘자 자신이 보다 굵직굵직하게 음악을 만들어 나간 점이 결과적으로 더 좋았다. 분명 홍콩필과 베를린 필은 비교 불가이지만 이런게 바로 실황의 묘미일 것이다. 어설픈 실연보다는 잘 다듬어진 오디오쪽이 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어제 같은 경우는 오디오가 넘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객석의 반응이 열광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대미를 장식한 앙코르는 바로 발퀴레의 기행!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 발퀴레 까지 낙소스에서 발매된 상태. 아무튼, 피곤을 무릅쓰고 연주회에 간 보람이 있었다.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마무리. 


최근 1년간 연주회에서 직접 본 오케스트라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어지간해서는 예술의 전당에서 이만한 감흥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 같다. 그동안 예술의 전당의 소리가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의 경험으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단체에 따라서 최상급은 아니더라도 그렇게까지 형편없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역대급 연주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