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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엘렌 그리모 피아노 리사이틀 (2017.5.7)

by iMac 2017. 5. 8.


엘렌 그리모 피아노 리사이틀

2017.5.7.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베리오 : 물의 피아노

타케미츠 : 비나무 스케치 II

포레 : 뱃노래 5

라벨 : 물의 유희

알베니스 : 알메리아

리스트 : 에스테빌라의 분수

야나체크 : 안개속에서

드뷔시 : 가라앉은 사원

< 인터미션 >

브람스 :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앙코르

쇼팽 : 새 연습곡 1번

라흐마니노프 : 회화적 연습곡 op.33-9

글룩/스감바티 :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멜로디








Hélène Grimaud, Water


사실, 어제의 연주회는 예매하면서도 많이 망설였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엘렌 그리모를 이전부터 좋아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그녀의 음반에 대해 몇 번 포스팅 한 적도 있는데, 연주회에서 직접 보기는 처음인데다 프로그램이 아주 썩 맘에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07/10/27 - [Classical Music/music note] - 최근 구입한 신보들 - DG 10월 신보

2010/10/27 - [Classical Music/beethoven] - 엘렌 그리모 - 베토벤



다들 그러듯이, 이번 프로그램은 그녀의 가장 최근 음반 'Water' 수록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짤막짤막하지만 모두들 '물'을 주제로 하거나 물과 연관되거나 물을 연상시키는 음악들로서 다분히 감각적인 음향으로 가득한 음반.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일단 내 취향은 아니다 싶어서 지레 잘 듣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랴, 엘렌 그리모를 볼 수 있다는데. 거기다가 어쩐 일인지 와이프가 가보고 싶단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며가며 조금씩 음악을 들으니 제법 들을만 한 듯. 그래도 이 음반이 어느새 좋아졌다면서 열심히 들은 와이프 보다는 예습이 현전히 부족한 상태에서 연주회날이 닥쳐버렸다. 


사실, 프로그램이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인기가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여기에 황금연휴와 맞물린 탓인지 객석이 아주 꽉 차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는 좋았다. 합창석 맨 앞줄에 앉았는데, 오랜만에 앉아서 반갑기도 했고 실제로도 보고 듣기에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1부


성큼성큼,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는, 묘하게 남성적이면서도 우아함이 감도는 걸음걸이로 피아노 앞에 나와 정중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연주를 시작한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까 궁금했는데 전체 8곡 사이사이 거의 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서 연주했다. 덕분에 어설픈 박수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고 차분하고 집중력있는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고, 들은 소감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그녀의 연주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종종 타건에 힘이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실제 눈앞에서 보고 듣는 소리는 전혀 그런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스처가 그리 요란하지도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지막 곡 가라앉은 사원의 웅장한 저음이 인상적이었다. 단단하고 투명하며 섬세함이 가득한 울림. 페달의 사용도 절묘해서 마지막 음의 여운을 다듬는 솜씨가 일품.


명료하면서도 때로는 묵직하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다가 잔잔한 안개자욱 호숫가의 일렁이는 물결처럼 고요한 음향. 말그대로 'Water'라는 제목을 실감했다. 



2부, 앙코르


2부는 전반부와 비교할 때 좀 의외로 브람스였다. 브람스의 소나타 작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브람스 답지 않고 낯설게 들려서 썩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아주아주 젊은 시절 브람스의 혈기왕성한 청년의 패기가 넘치는 작품으로 종종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2부에서 역시 앉자 마자 바로 시작. 그 효과는 1부보다 훨씬 짜릿했는데 작품의 첫 시작 자체가 용수철 처럼 당돌하게 튀어나오는 곡이다보니 더더욱 효과 만점이었다. 이후 물 흘러가듯 언제 곡이 끝났는지 모르게 끝났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좀 부담스럽게 느껴서 잘 듣지 않는 곡이었는데 이정도면 좀 들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곡도 조만간 녹음하려나?


2번 소나타만 연주하니 2부는 30분이 채 못되어 끝났다. 객석이 가득차지는 않았어도 비교적 열성팬들이 많이 온 듯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덕분인지 앙코르를 3곡 더 해주었는데, 다 듣고 나니 1, 2부 연주시간이 거의 비슷해진 듯. 






사인회


사인회를 무척 친절하게 응해주는 것으로 들었는데 역시나 그러했다. 사인회 일정을 알고 있었기에 끝나자마자 나가서 줄을 서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편안한 표정과 약간은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정중히 인사하며 무대를 오가며 연주해 주는 앙코르를 마다할 수 없었다. 


처음엔 다들 그러듯 앉아서 사인해주다가 팬들과 일어서서 사진을 함께 찍어주다보니 안되겠던 듯 자리를 아예 서서 사인해주는 방식으로 바꿔버렸다. 그 이후 모든 사람들과 일일이 어깨동무하고 함께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사진을 아예 직원들이 찍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니 오히려 진행이 빨라진듯. 연주회에 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사인회에 줄 선 사람들의 수가 꽤 되었다. 


이제 어느덧 나이가 들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 중성적이며 우아한 매력또한 여전하고 사인해 주는 내내 조용하면서도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편안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사인받은 음반 중 하나는 유명한 늑대와 함께 찍은 사진인데, 늑대 이름이 '루카스'라고 알려줬다. 


아무튼, 과연 어떨지 반신반의 하면서 갔었는데, 정말 의외로 대만족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들은 소리도 어설픈 오케스트라 연주회보다는 차라리 깔끔한 피아노 독주회 쪽이 더 낫게 들려서 음향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최고급 오디오를 눈앞에서 볼륨 가득 올려 마음껏 울려 본 느낌? 또한 오랫동안 좋아하긴 했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던 그리모의 실연을 본 것, 아니 실연이 음반보다 훨씬 좋았음을 실감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처음부터 나보다 적극적으로 가자고 했던 와이프도 역시나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좋았다. 이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리모가 다시 온다면  꼭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