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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3. 얼어붙은 눈물

by iMac 2017. 5. 27.


3곡 얼어붙은 눈물 (Gefrone Tränen)


눈에서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이 알알이 얼어붙는 형상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하는 전주로 시작한다. 3곡에 대한 이야기는 제목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인 눈물과 얼어붙음으로부터 뻗어나간다. 



페터 안더스 (1945)



추위, 겨울, 전쟁


노래 속 주인공은 겨울에 길을 떠나는 상황이니 추위 때문에 눈물이 얼어붙는 상황은 정황상 자연스럽다. 그로부터 보스트리지는 본인이 추운 겨울 러시아에 가서 겨울 나그네를 공연한 이야기와 함께 겨울과 러시아에 얽힌 전쟁과 슈베르트 시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데 버무린다. 다양한 시대적 배경이지만 전체를 하나로 묶는 주제를 잘 유지하고 있어서 잡다하게 느껴지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그래,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 공연에 대해 언급하면서 페터 슈라이어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녹음한 겨울 나그네 녹음도 언급된다. 이것 역시 저자 자신 10대 시절 겨울 나그네의 세계로 이끈 녹음 중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역시 애플뮤직에서 간편하게 들을 수 있다. 역시 많이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군데군데 살짝 올드패션 같은 느낌이긴 하나 어쩐지 대단히 오소독스한, 전형적이며 안정적인 노련함, 혼연일치된 안정감이 느껴진다. 


얼어 붙은 눈물이라는 제목과 동장군이 위력을 발휘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2차대전 당시 소련과 독일의 격전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특히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한겨울 포위된 독일군의 상황과 겨울나그네라니. 여기에 더하여 나치 정권하에서 클래식 음악의 상황도 살짝 더해지면서 당시에 이루어진 전설적인 겨울 나그네 녹음이 소개된다. 


한스 호터, 미하엘 라우하이젠 (1942) 

페터 안더스, 미하엘 라우하이젠(1945)


다행스럽게도 둘 다 애플뮤직에서 들을 수 있다. 바그너 전문 헬덴테너를 제외하고, '독일 테너'라고 한다면 제일 먼저 프리츠 분덜리히가 떠오르는데 그 이전이라면 페터 안더스(Peter Anders, 1908~1954)를 꼽아야 할 것이다. 강건하면서 또렷한 미성이 일품인데 분덜리히와 마찬가지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 


안더스의 녹음은 특히나 1945년 초반 독일의 패전 막바지 연합군의 공습이 한창이던 시기에 베를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푸르트벵글러의 전시녹음과 같은 기념비적인 성격을 띈다. 관현악 녹음과 달리 독창과 피아노 반주이므로 녹음 상태는 훨씬 듣기에 좋다.





반주자 미하엘 라우하이젠(Michael Raucheisen, 1889~1984)에 대해서는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안더스의 녹음보다 조금 앞선 1942년에 한스 호터(Hans Hotter, 1909~2003)와도 역시 기념비적인 녹음을 남겼다. 호터는 흔히들 '영원한 보탄'으로 묘사되는 가수이지만 이 녹음에서는 정말로 의외로 묵직하지만 편안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겨울 나그네를 부르고 있다. 역시 녹음상태도 양호해서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는 수준.


나름대로 귀중한 역사적인 기록인데, 두 사람이 부르는 얼어붙은 눈물은 좀 느리고 어쩐지 신파같은 느낌이다. 그 시절에 '얼어붙은 눈물'은 그 정도 템포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스타일이었나보다. 슈라이어는 그래도 조금 더 빠르긴 하나 여전히 느리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방울 방울 똑똑 얼어붙어 떨어지는 눈물방울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역시 디스카우/무어의 음반이 딱이다. 



그림 속 노래


전쟁 중 겨울 나그네 녹음에 대한 이야기는 독일 가곡의 시대적 역할에 대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간다. 독일 화가 안톤 폰 베르너(Anton von Werner, 1843~1915)가 1894년에 그렸다고 하는 <파리 교외의 숙사, 1870년 10월 24일>이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그림은 역사책이나 음악사 개설서 같은 책에서 종종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아주 유명한 그림으로 보불전쟁 당시 파리를 점령한 프로이센 군인들이 어느 프랑스 거실에서 피아노 반주로 노래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것까지는 본 적이 있는데, 이 그림 속 피아노 위 악보가 다름아닌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D.957 중 제12곡 '바닷가에서'란다. 노래의 심오한 분위기와 달리 뜻밖에 군악대에서 무척 인기가 있었던 노래라고. 





이 노래는,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슬쩍 훑어 보던 중 귀에 꽂힌 것이 프레가디엔/슈타이어의 음반. 애플뮤직에 올라온 것으로 들었는데 고즈넉하고 넉넉한 분위기가 딱 마음에 들었다. 이럴 때는 디스카우의 명료함과 이지적인 발성이 살짝 안어울리는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림 속에 놓여있는 악보에서까지 슈베르트를 찾아내어 근대 독일국가의 형성 시기 독일 가곡의 역할에 대해서까지 논하다니. 정말 다채로운 접근방법이 놀랍고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다음 곡에서는 또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가 이어질지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