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필립 글래스

미국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1937년생이니, 올해에 80을 맞았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애플뮤직에 부쩍 필립 글래스 음반이 많이 올라온 걸 보고도 생각하지 못하다가 이번 31일 기돈 크레머 내한공연 프로그램에 포함된 필립 글래스의 협주곡을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다.

요즘 활동하는 현대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 바가 없지만, 필립 글래스는 일단 알고 있다. 현대 작곡가 중에서 상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사람이니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보았다. 오페라로도 알려져 있고, 영화음악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니 클래식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 치고 최소한 이름 한 번쯤 듣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미니멀리즘

필립 글래스의 음악 스타일을 일컬어 흔히들 '미니멀리즘'(minimalim) 음악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요즘 본인은 그러한 명칭을 부정하고 그저 반복되는 구조의 음악이라고 한다고.(그런게 그게 그거 아닌가?) 

그의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았어도 일단, 간단한 리듬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식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일단 듣기에 크게 무리가 없다. 처음 듣는 음악도 전혀 무리없이 들을 수 있어서 부담이 없다. 그리고 반복의 효과가 참 묘하다. 사실, 고전음악의 대가들도 이미 반복의 대가가 아니었던가?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그리고 반복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브루크너. 그러고 보니 나무위키에는 필립 글래스가 슈베르트를 존경한다는 이야기도 나와있다.(심지어 생일도 1월 31일로 같다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2010)

이번 기돈 크레머와 크레메라타 발티카 20주년 기념 내한공연 관련 기사들을 훑어보니 이번에 프로그램에 포함된 필립 글래스의 이중 협주곡(Double concerto)은 2010년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의 발레 스완송(Swan song)을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애플뮤직에서 찾아보니 바로 그 무렵의 녹음인 듯, 팀 페인(바이올린), 웬디 셔터(첼로), 유르옌 헴펠/헤이그 레지덴츠 오케스트라의 음반이 올라와 있다.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라는 문구도 있는 걸 보니 신문기사에 나온 내용 그대로인 듯. 위키피디아에는 2008~2010기간 첼리스트 웬디 셔터와 로맨틱한 관계(?)였던 걸로 나와 있기도 하다. (He was romantically involved with cellist Wendy Sutter from 2008 until 2010.)

어쨌거나, 음악은 이리저리 흘려 듣던 필립 글래스 스타일 그대로이다. 처음 들어도 딱히 낯설지 않은, 언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악. 두 독주자만의 연주로 이루어진 Duet No.1~4 사이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Part 1~3이 끼어 있는 구조로 전체 7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느 부분이든 듣기에 나쁘지 않아서 술술 잘 넘어간다. 전체 연주 시간은 대략 30분정도. 

크레머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다음에 이 곡을 연결시켜서 유사한 구조로 만들어진 음악 스타일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보여주려는 듯 하다. 바흐의 작품이야 워낙 잘 알려진 명곡이니 두말할 나위 없지만 필립 글래스의 곡은 충분히 협주곡적이면서 적당히 현대적이고 적절한 완성도를 갖추었으면서 듣기에 난해하지도 않아서 딱 적당한 선곡이라고 생각한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들으며 든 생각은, 그가 왜 오늘날 그토록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작곡가인지 이해가 되는 한편으로 적어도 나는 이 사람 음반은 사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름 들을만 하지만 내 취향으로는 딱 거기까지만인 듯. 물론 지금은 애플뮤직 탓에 음반 구입 자체가 거의 멈춰버린 상태이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애플뮤직 덕에 한번이라도 들어보게 되었으니 필립 글래스 입장에서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