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
바다출판사
워낙 유명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으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야말로 '표준적인' 피셔-디스카우의 DG 음반으로 이 곡을 처음 접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이 작품 속에서 제대로 알고 있는 곡은 몇 곡 되지 않는다. 보다 화려한 볼거리, 들을거리로 무장한 오페라에 대한 관심에 밀려 리트는 여전히 막연한 위시 리스트의 영역일 뿐이었다.
보스트리지가 쓴 책이 나온 것은 진작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서 좀 망설이고 있었다. 여전히 선뜻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기에 망설이고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슈베르트 가곡들에 대한 위시 리스트를 품고 있었기에 결국 집어들게 되었다.
슈베르트로 가는 길
처음엔 당연히 과연?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몇 페이지 읽고 나니 마음속에서 무릎을 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책의 구성은 전체 24곡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그 배경에 얽히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방식인데, 그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통찰력과 풍성한 인문학적 소양이 한껏 재미를 끌어올린다. 여기에 더하여, 겨울 나그네 뿐만이 아니라 슈베르트의 다른 작품들까지 하나씩 예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겨울 나그네 뿐만이 아닌 슈베르트의 음악세계로 다가가는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흥미진진한 책이다. 처음에는 다 읽고 독후감이나 올릴까 생각했는데, 첫 곡 '밤 인사'를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 장 한 장 읽고 나서 동시에 소개된 다른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 감상을 적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1곡 '밤 인사' (Gute Nacht)
이 곡은 이 작품의 첫 시작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긴 곡으로 소개되고 있다. 24곡을 이어서 듣다보면 지루해져서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듣다보면 다시 첫 곡부터 듣다보니 자연스레 이 곡은 전곡에서 가장 많이 들었다. 오래 전 이 곡을 처음 들었던 초창기 무렵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해서 늘 마음 한 켠을 아련하게 하는 곡이다.
책을 읽으며 한 곡 한 곡 공부하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텍스트로 삼을 만한 음반을 골라야 했다. 애플뮤직 덕에 선택의 폭이 정말 다양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보스트리지의 겨울 나그네 음반은 보이지 않는다. 보스트리지의 음성이 독특한 것은 인정하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너무 창백하고 호흡을 처리하는 방식도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개성이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가디너와 녹음한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난봉꾼의 행각'(DG) 녹음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저자의 음반은 보이지 않고 해서 몇 가지 더 들어보았는데, 마크 패드모어와 토마스 프레가디엥의 음반에 관심이 갔다. 테너의 미성으로 듣고 싶어서였는데, 잘 부르기는 하다만 결국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 비교감상용 정도? 돌고 돌아 결국은 피셔-디스카우/제럴드 무어(DG)로 돌아왔다. 그래, 이걸 중심에 두고 지루해지면 다른 것을 듣도록 하자.
마왕, 방랑자, 그레트헨
첫 곡 밤인사와 함께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 탐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소개된 대표작들 - 마왕, 방랑자/방랑자 환상곡, 물레질하는 그레트헨. 이것만 해도 들을거리가 꽤 된다.
마왕 (Erlkönig, D.328)
방랑자 (Der Wanderer, D.493)
방랑자 환상곡 (Wanderer Fanstasy, D.760)
물레질하는 그레트헨 (Gretchen am Spinnarde, D.118)
가곡 마왕과 방랑자는 역시 간편하게 피셔-디스카우의 음반으로 감상. 방랑자 환상곡은 예전부터 애청음반이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음반. 하지만, 이번에 진정한 깨달음이라면 바로 '물레질하는 그레트헨'이다. 책의 설명과 가사를 읽어보고 오랜만에 바바라 보니의 음반으로 들어보니, 정말 깜짝 놀랄정도로 감각적이고 대담한 곡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몽환적인 리듬이 시종일관 관통하며 서서히 고조되어 가며 절정으로 치닫는 숨이 멎을 듯한 도취의 순간.
바바라 보니의 슈베르트 가곡집은 오래 전에 구입해서 나름 좋아했던 음반이지만 통 꺼내듣지 않았던 것인데 덕분에 다시 들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다시 들어도 90년대 초반 보니의 목소리가 한창 좋았던 무렵의 녹음이다. 지금은 애플뮤직으로 손쉽게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장을 읽고 거둔 최대의 수확은 '물레질하는 그레트헨'의 재발견이다. 그동안 너무나도 무심하게 파묻어두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노래였다. 역시 슈베르트였다. 앞으로 남은 23개의 노래와 플러스 알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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