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곡 도깨비불 (Irrlicht)
9곡에 대한 설명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이 곡에 대해서는 악보를 통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제목인 '도깨비불'이라는 현상에 대한 슈베르트 당시의 학구적인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계속해서 읽어 나갈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인데, 하다하다 '도깨비불'이라는 얼핏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근대에 이르러 많은 연구자들이 도깨비불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 또한 과연 이걸 알아서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읽는 동안은 분명, 흥미진진하다.
이 곡의 첫 시작은 기묘한 두 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게 어디선가 다른 곡에서도 들어 본 느낌이 든다. 어디서 비슷한 걸 들었을까 한참을 생각했는데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말러의 교향곡 제1번 1악장 첫 시작음과 비슷하게 들렸다.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말러의 교향곡이 슈베르트의 작품과 닮았다고 해야 순서에 맞을 것이다.
'도깨비불'이라는 제목처럼 노래의 선율도 어딘지 옛 민요나 전설을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그렇긴 해도 이 연가곡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모든 고통은 무덤을 만나리..'
슈베르트 - 빈 시립공원 (2016.5.21)
10곡 휴식 (Rast)
이 곡의 소개에서 일정부분은 가사 속에 등장하는 '숯꾼'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간 에너지원의 비중에 대한 그래프까지 나온다. 19세기 초반 서서히 산업혁명이 진행되어가던 시기에 나무에서 숯을 구워서 팔던 숯꾼은 차츰 사라져갈 운명을 맞고 있었던 것이다.
숯꾼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한 분석을 동반하고 있어서 그게 주제인줄 알았지만 이야기는 차츰 역사책에 등장하는 용어인 '비더마이어(biedermeier)'시대에 대한 것으로 옮겨간다. 슈베르트가 활동하던 무렵, 슈베르트의 사후 한동안 이어진 오스트리아의 시대적 배경을 역사책에서는 흔히 '비더마이어시대'라고 명칭하고 있다.
여러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 장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앞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극히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통치하에 살던 시대 상황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철저하게 강압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던 오스트리아에서 모든 출판물에 대해 검열이 이루어지던 시대적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던 예술가들의 이야기.
슈베르트의 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인 요한 젠은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생활 후 추방당하기까지 했는데 그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행복한 세상' D.743, '백조의 노래' D.744가 소개된다. 예전에 슈베르트의 가곡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방대한 규모와 이를 포함한 음반 구입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애플뮤직 덕에 더 이상 이유가 되지 않는다.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고 피셔-디스카우의 방대한 슈베르트 가곡집에서 다 들어볼 수 있다.
아무튼, 진실은 맨 마지막 순간에 밝혀진다. 작가인 뮐러 역시 검열로 인해 여러 차례 작품 출판이 금지 당했는데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의 통치에 저항하는 비밀결사단체로 등장한 것이 저 유명한 '카르보나리(Carbonari)'였고 '카르보나리'란 이탈리아어로 '숯꾼'을 의미한다고 한다.
숯을 굽는 사람으로 위장한 것인지, 혹은 사회 하층민인 숯꾼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층민을 대변한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시인은 독일어 가사와 내용을 통해 알게 모르게 검열을 피해 저항의지를 담아 놓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시집은 그저 단순히 실연으로 겨울날 정처없이 고통스럽게 길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단순한 실연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세계의 모든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의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노래는 과연, 어딘지 모르게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듯 격정이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 보스트리지는 '행동할 용기가 없었던 자들의 억눌린 에너지와 고통이 절절이 드러난다'고 서술한다. 이런 느낌, 그 옛날 그 시대만의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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