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곡 용기 (Mut)
짧지만 연가곡의 끝무렵에 돌연 등장한 다소나마 전투적인 노래. 계속해서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데 마냥 그런 식으로 진행되기만 해서는 곤란하니까 음악적으로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각 곡의 조성이나 템포 등도 면밀하게 생각해서 배치한 것이다.
노래는 짧은데 이번 장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펼쳐진다. 가사에 '세상에 신이 없다면 우리가 바로 신이야!'라는 대목 때문. 바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문장 인용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슈베르트가 성장한 종교적 환경을 짚어보면서 자연스레 그가 남긴 종교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짧은 생의 기간 동안 6곡이나 미사곡을 작곡한 것을 보면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달리 하이든과 모차르트 처럼 보다 전통적인 오스트리아 음악가들의 활동 경향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종교 음악 또는 종교 가곡 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아베 마리아 D.839.
슈베르트의 종교적 작품들에 대해 보스트리지는 범신론적 영감의 산물로서 주목한다. 곡에 따라 경건한 기분으로 작곡한 것도 있고 음악적인 도전으로 볼 수도 있으며 의뢰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필요성도 존재한다. 그 가운데 일종의 공통분모로 볼 수 있는 것이 범신론적 영감으로 그러한 다른 예로 장대한 C장조 교향곡 '그레이트' D.944를 꼽았다.
이 책을 읽으며 슈베르트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서 그런지, 간만에 꺼내들은 9번 교향곡의 아름다움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1825년 바트 가슈타인의 장대한 풍경에서 작곡했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Bad Gastein을 검색해보니 요즘도 등산, 패러글라이딩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음반은 정말 많은데 워낙 길고 반복도 많은 곡이고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색채감도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곡이라 음반을 딱 하나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개중에 하나 고르자면 역시 오랫동안 즐겨 들은 아바도/유럽 체임버(DG)에 손이 간다.
베를린 필 디지털 콘서트홀에서는 어떤게 좋을까 싶어 찾다보니 세미욘 비쉬코프가 지휘한 2014.6.7. 실황이 눈에 들어온다. 그날 전반부 프로그램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도 좋았지만, 슈베르트가 압권이었다. 래틀도 잘했지만 비쉬코프는 느낌이 또 다르며 반복구도 래틀보다 더 많이 이행했다. 보고 듣는 내내 정말 잘한다는 생각과 슈베르트 음악의 아름다움을 실감했다. 일반적인 '지명도'는 얀손스가 우위에 있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비쉬코프가 만드는 음악이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23곡 환상의 태양 (Die Nebensonnen)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알지 못했던 자연현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빛의 굴절로 인해 실제로 해가 세 개로 보이는 현상이라. 이 책을 읽으며 계속되는 이야기지만, 정말 다방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즘 표현대로 '알아두면 쓸데 없는' 지식들처럼 보이지만, 어찌되었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세 개의 태양에 대한 시적 의미도 알려준다. 셋 중 하나는 실제 태양이고, 나머지 둘은 연인의 눈동자. 사랑에 빠져 있을 때에는 연인의 두 눈동자가 태양처럼 빛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겠지만, 연인이 떠나간 다음은 태양이 하나만 남았고 연인이 없는 세상에서 빛을 보고 사느니 차라리 나머지 하나의 태양도 사라져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낫다고 읊조린다.
24곡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
이 곡은 정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강렬한 마무리이다. 이전에 들었던 12곡 '고독'도 분위기상 마무리의 분위기가 충분했지만, 그것도 이 '거리의 악사' 앞에서는 순간 평범해진다. 그정도로 이 곡이 인상적이다.
노래라기보다는 거의 읊조리는 분위기인데 정말 황량함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음악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슈베르트의 가곡 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곡이다. 첫 곡 '밤 인사'로 시작해서 '거리의 악사'로 드디어 끝을 맺는다. 하지만 분위기는 끝나는 듯 하면서도 결코 끝나지 않는 듯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의 여운을 글로 묘사한다는 것이 주제 넘은 일일 것 같다.
'거리의 악사'라는 번역은 내용상 정확한 것이긴 하지만 글자 그대로의 번역은 아니다. 영어로는 허디거디(hurdy-gurdy)라고 부르는 기묘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한 손으로 태엽을 돌리며 현을 짚어 연주하는 희한한 악기이다.
보스트리지가 이 책에서 실제 그 악기 반주로 노래한 연주가 있다고 알려줘서 유투브로 찾아보았다. '마티아스 로이프너'라는 연주자가 허디거디를 연주하고 보스니아 출신의 여배우이자 가수라고 하는 '나타샤 미르코비치 데 로'가 노래하는 '거리의 악사'. 찾아보니 음반도 이미 수입되어 있었다.
실제 들어보니 슈베르트가 만들어낸 음악이 정말 절묘하게 허디거디의 느낌을 포착해냈음을 실감했다. 나른하게 반복되는 피아노의 반주가 만들어내는 울림이 아주 절묘하다. 허디거디 반주로 듣는 겨울나그네는 역시 마지막곡에서의 싱크로율이 최고다. 나머지 곡들은 좀 색다른 느낌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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