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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 - 2017년 5월호

by iMac 2017. 7. 7.


2017 BBC뮤직 매거진 어워즈


해마다 주는 올해의 음반상쯤 되는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 최근 한동안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일종의 후유증이 좀 오래 가는 듯 하다. 차츰 빠져 나오는 중에 BBC 뮤직 매거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만에 뒤져보니 나름 흥미로운 볼거리가 보인다.


우선, 표지 사진은 종종 본 적이 있는 유명한 말러의 사진이 장식하고 있다. 그 외 여럿 흥미로운 기사들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별도 포스팅으로 할애하기로 하고, 가장 보고 싶은 2017년 음반상 수상작을 보니 역시 표지 한켠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바실리 페트렌코/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음반. 뭐, 나름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음반이다.





페트렌코의 음반들은 모두 애플뮤직에 올라와 있으니 찾아 듣기에 전혀 지장이 없다. 일전에도 살짝 밝혔듯이, 개인적으로 페트렌코가 낙소스에서 녹음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을 아주 좋게 들었다. 그 이후로 페트렌코의 지휘에 대해서는 늘 기대감이 앞서는 편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의외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만큼 압도적이었던 음반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찾아 들어보면 하나 같이 꼼꼼하게 잘 마무리되고 쇼스타코비치에서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연주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상하게 잘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페트렌코/리버풀 필하모닉은 음반사를 오닉스(onyx)로 옮겨서 녹음하고 있다. 오닉스쪽이 낙소스보다는 좀더 선명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소리를 담고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 나에게는 재미가 덜하게 들린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도 현재까지는 대동소이하다. 정말 팽팽한 긴장감과 활력에 넘치며 웅장하고 기능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지만, 뭔가 미묘하게 덜 숙성된 느낌이다. 프레이즈 운용이 아주 살짝 조급하게 들리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빠른 템포에 팽팽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긴박감보다는 살짝 서두르는 느낌이 앞선다. 


구석구석 치밀하게 잘 다듬고 드라마틱한 연출도 소홀함이 없지만, 그런 스타일이라면 이미 카라얀/베를린 필(DG)의 70년대 녹음이 비교 불가한 경지를 찍은 바 있고 페트렌코의 연주는 아직은 거기에 비할바는 못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오늘날은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훌륭한 연주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너무 까다롭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나의 느낌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른 작품도 일부 본 적은 있긴 한데 페트렌코는 언제까지 러시아 음악 전문으로만 알려질 것인가? 



파보 예르비/NHK심포니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새로운 신보 리뷰 코너에서 당당히 'Recording of the month'(이 달의 음반)를 차지한 것을 보니 파보 예르비/NHK심포니의 R.슈트라우스 교향시 음반. 예르비가 NHK에 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정말 발빠르게 신보가 나온 셈이다. 그것도 R.슈트라우스라니. 돈 후안과 영웅의 생애. 선곡부터 야심만만하고 일본 오케스트라의 녹음이라는 점에서 서울시향이 생각났다.


반신반의 하며 애플뮤직에서 들어보았는데,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야, 이거 잘하잖아?!' 그냥 잘한 정도도 아니고 아주 잘했다. 독일 오케스트라 같은 무게감은 절대 아니지만, 밝고 선명하며 결이 아름답다. 소리 자체로 우선 들어줄만 한데 연주 또한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예르비의 지휘는 종종 디테일에 집착하면서 음악의 흐름이 정체되는 순간이 있다고 느끼곤 했는데(베토벤 교향곡은 보기 드문 예외), 이 녹음에서는 전혀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달의 음반으로 꼽아도 정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흠을 잡자면 영웅의 생애에서 바이올린 솔로의 수준이 연주 전반의 수준에 살짝 못미치는 감이 있는데, 이 부분은 악장의 비브라토에 대한 내 취향 탓일 수도 있겠다. 


NHK가 잘하는 건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확인하게 되니 새삼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이 두 작품의 베스트는 켐페/드레스덴, 카라얀/베를린 필을 꼽았는데, 좀 더 가볍고 시원스럽고 최신 녹음에서 고르라면 단연 이 것을 꼽고 싶을 정도이다. 기대 이상의 만족스러운 연주로 적극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