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music note

브루크너 : 교향곡 제9번 - 4악장 완성본 (사이먼 래틀/BPO)

by iMac 2012. 2. 20.



브루크너 : 교향곡 제9번 4악장 완성본
4악장 : 사말레-필립스-코어스-마주카 편집(1985-2008, 2010 개정판)
2012.2.9 베를린 필하모니 실황


음악 역사상 여러 유명한 미완성 작품들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역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꼽아야 할 것이고.. 모차르트이 레퀴엠, 말러의 10번 교향곡, 그리고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이 있다.

그 중에 작곡가 사후 다른 사람의 손으로 생명력을 얻고 연주회 프로그램에 올라 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버르토크의 비올라 협주곡이라든가, 쥐스마이어 등에 의한 모차르트의 레퀴엠, 그리고 오늘날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말러의 10번 교향곡까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 브루크너가 자신의 최대 걸작인 9번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너무나 아쉬운 점이다. 실제로도 상당부분 작업이 진척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일찌감치 다른 연구가들에 의해 연주가능 판본이 편집되었던 말러의 10번 교향곡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는 것 같아 더더욱 안타까웠다. 

현재 음반으로 구할 수 있는 9번 4악장 완성판본의 대표적인 연주는 인발/프랑크푸르트(텔덱)의 전집, 낙소스의 요하네스 빌트너의 연주 정도가 언뜻 떠오른다. 모두 다 진정한 메이저급은 아닌데다 실제 들어보아도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의 연주는 최신 판본에 의한 연주로서는 당분간 비교의 대상이 없는 결정판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렉처 콘서트 형식으로 일부만 녹음한 아르농쿠르/빈 필의 음반이 완성본을 녹음하지 않은 점이 정말 아쉬웠다.

말러 교향곡 사이클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가운데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이 심혈을 기울여 연주에 임한 의미심장한 연주회라 생각된다. 일단 기존의 3악장까지 연주도 대단히 만족스러우며 베를린 필의 압도적인 합주력에 뒷받침을 받은 래틀의 확신에 찬 해석이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4악장의 음악도 낯설지만 분명 브루크너의 음악임에 틀림없는 울림을 들려주고 있다. 

연주를 들으면 내내 떠오른 생각이라면, 우선.. 역시 브루크너다.. 라는 생각. 또한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 수록 보수적이 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9번 교향곡의 브루크너는 그 자신을 넘어서서 말그대로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한 모습이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과 창조적인 예술가의 차이점인가 싶었다.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 시절 3악장 초입의 섬뜩한 현의 도입부를 듣고 느꼈던 모골이 송연하도록 스산하게 가슴을 파고들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무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랜만에 래틀이 또 한번 홈런을 날린 것 같았다. 전곡을 암보로 지휘하면서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듯. 마지막 순간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베를린 필의 압도적인 합주력의 매력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요즘 관행이 지휘자가 연주가 끝나고 주요 단원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래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오케스트라로 걸어들어가 주요 단원들과 악수하고 직접 일으켜 세웠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와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라고 해야 할까?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들의 멋진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마지막 장대한 마무리 후 10여초 동안 숨 죽인 정적을 유지하는 청중들의 높은 수준 또한 인상적이다. 진정 음악을 음미하고 연주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래틀은 마이크를 잡고 4악장의 편집자들을 청중들에게 소개하며 연주회를 마무리한다. 많은 갈채를 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충분히 그럴만 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살아 생전 이런 영예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브루크너의 처지가 떠올랐다. 아무튼, 브루크네리안이라면 4악장 만으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공연이라는 생각. 이걸 듣고 나면 역시 9번이야말로 브루크너 교향곡의 최고봉이라는 생각을 더더욱 실감하게 된다. 작곡가 본인의 손으로 완성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 이 연주의 프로그램과 래틀의 인터뷰, 연주 발췌 영상 맛보기는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