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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엘렉트라 - 살로넨

by iMac 2017. 5. 1.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엘렉트라

에사-페카 살로넨, 지휘 / 파리 오케스트라, 굴벤키안 합창단

에블린 헤를리치우스(엘렉트라)

발트라우트 마이어(클리템네스트라)

아드리안네 피에촌카(크리소테미스)

미하일 페트렌코(오레스트)

액상프로방스 페스티벌 실황 (2013년)





'전기'라는 단어가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했듯, 엘렉트라는 이름부터 강렬하고 전율이 흐르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라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좋아한다고 일단 말은 했지만서도, 이 피곤한 작품을 자주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 구석구석 잘 아느냐고 자문하면 결코 그렇지는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그렇게 길지는 않다는 것. 그래도 전곡을 진득하게 듣고 있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1시간 40분 남짓 하는 동안 거의 대부분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고 강렬하긴 하지만 동시에 오래 듣고 있으면 귀가 피곤해지는 오케스트라의 포효를 견디고 있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게 바로 오페라 영상물이고, 가급적 한글자막이 있으면 더욱 편리하다. 보고 듣고 하다보면 일단 시간은 잘 간다. 단, 잘 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연출도 볼만 해야 겠다. 얼마 전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적당한 영상물을 고르다가 엉뚱하게 엘렉트라 DVD를 주문해 버렸다. 요즘 음반은 애플뮤직으로 해결하고 영상물은 가급적 블루레이로 극히 엄선해서 구입하자는 주의인데, 이것은 한글자막을 고르다 보니 DVD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칼 뵘이나 아바도/빈 국립 오페라의 것도 가지고는 있는데 좀 오래된 것이고 연출이 심심해서 새로운 영상을 구하고 싶었다.



무대


우선, 이 공연은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던 - 이자벨 아자니가 나온 영화 '여왕 마고'의 감독으로 먼저 생각난다 - 파트리스 쉐로(Patrice Chéreau, 1944~2013)가 연출한 것으로 2013년 7월의 공연이라고 하니, 그 해 10월에 폐암으로 타계한 쉐로의 거의 마지막 순간을 담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페라와 쉐로라면 그 유명한 불레즈가 지휘했던 바이로이트 링 사이클 연출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닌게 아니라 이번 무대 역시 뭔가 살짝 그 당시 무대가 연상된다. 


전반적인 무대나 복장은 시공을 가늠할 수 없는 가운데 적당히 현대적인 것으로 큰 시각적 거부감 없이 극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모던하면서도 작품 자체의 내용과 큰 괴리감 없이 바로 이해가 되는데, 사실 복수극이라는 보편성에 비추어 볼 때 엘렉트라는 현대적인 배경으로 바꿔 놓아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어보이긴 한다. 


잘 보긴 했지만 그래도 좀 일말의 심심함이 남는다면 역시나 음악과 드라마의 강렬함에 비하면 연출이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다. 이 작품의 무지막지한 긴장감과 폭발하는 관현악의 포효를 생각하면 이에 버금가는 시각적 연출은 쉽지 않은 일 같다. 이상적인 무대란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음악


살로넨이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다. 요즘 이런저런 실황 음원으로 접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은 여전히 베를린, 빈, 암스테르담, 뮌헨, 드레스덴 등과 비교하기에 좀 그렇지만 옛날 7~80년대 녹음에서 접하던 것과는 좀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보다 세련되고 투명하게 잘 정제된 느낌? 살로넨이 이끌어내는 자연스런 흐름에 잘 따라와 주고 있다. 무시무시한 맛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히 들어줄만 하다. 


살로넨은 그 무렵을 전후해서 지휘활동을 접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작년 빈 여행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빈 필을 지휘할 예정이었던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엘렉트라 역시 만족스러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고 그 외 몇몇 오페라 영상물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기에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 본다.


주역 가수 3인 모두 훌륭했는데, 헤를리치우스는 틸레만과의 공연에서도 같은 배역을 불렀고 음반으로도 나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배역의 성격상 정말로 열연을 보여주고 있는데, 목소리의 스타일이 아주 썩 내 취향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뭐라 말 할 수 없이 좀 애매한 컬러로 다가온다. 참고로, 같은 연출을 메트에서도 올리고 있는데 메트의 엘렉트라는 니나 슈템메. 내 취향은 니나 슈템메에 한 표. ( 2009/09/12 - [Classical Music/music note] - 야나체크 공부하기 - 예누파!!!  )


발트라우트 마이어는 그녀 특유의 당당한 외모와 진한 발성이 배역의 성격 및 연출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광기에 찬 모습이었으면 하는 점도 있지만 일단 충분히 만족한다. 다만, 클리템네스트라가 오레스트의 사망소식을 듣고 히스테릭하게 웃는 장면의 웃음 소리를 없애버린 연출은 좀 아쉬웠다.


크리소테미스는 요즘 들어 이 작품을 들으면 들을 수록 만만치 않은 배역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점에서 피에촌카의 노래는 아주 훌륭했다. 사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도 크리소테미스이니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역할이다. 지나치게 원숙하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적당한 힘을 갖춘 멋진 가창이었다. 


나머지 배역들은 그럭저럭. 오레스트를 맡은 미하일 페트렌코까지는 제법 괜찮았는데 그 외엔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왕년의 가수들인 프란츠 마추라, 도널드 맥킨타이어(왕년에 불레즈 반지에서의 보탄!!)가 단역을 맡은 모습도 보인다. 세월의 무상함. 


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반응은, 당연히 열광의 도가니. 그만한 열연을 보여줬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보너스로 쉐로의 인터뷰가 담겨 있는데 불과 몇달 후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호프만슈탈의 원작과 고전 그리스 원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해석에 대한 언급을 보면서 과연, 싶었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고는 못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나름대로 이 작품의 이해를 위해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타이틀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