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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2기 #2 - 토스카니니

by iMac 2017. 2. 1.

고정관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에 대해서는 음악을 듣던 초창기 무렵에 막연한 고정관념 같은 것이 형성된 적이 있었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든 일단 생기면 그걸 없애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꽤나 오래 지속되는 성향이 있다. 토스카니니에 대한 고정관념은 토스카니니 VS 푸르트벵글러라는 식의 대결구도 비슷한 방식의 비교 서술들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 타당하지 않은 것이, 1867년생인 토스카니니와 1886년생인 푸르트벵글러는 나이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물론 두 사람이 1920~30년대에 들어 활동영역이 서서히 겹치면서 일종의 긴장관계가 형성된 적은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두 사람만 콕 찝어서 객관주의 VS 주관주의 해석의 대표자로 간단히 도식화 해버리는 것은 객관적인 음악감상을 방해하는 선입견을 조장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나도 아주 오랫동안 토스카니니는 그 이전까지 존재하던 수 많은 적폐(?!)를 일소하고 악보에 충실한 해석의 창시자쯤으로 인식하던 때가 있었다. 이런 식의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순전히 나 자신의 귀만 믿고 음악을 듣고 느껴야 제대로 된 음악감상이 가능하리라.






NBC 심포니 이외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


토스카니니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라면 응당 NBC심포니와의 기록이 가장 유명한 것이 사실이지만 30년대의 기록이라는 컨셉에서는 그 외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기록에 집중하고자 했다. 토스카니니 또한 기록이 여럿 존재하고 발매도 제각각이어서 그냥 쉽게 구해지는 것으로 들으면 되는데 어지간한 것은 모두 애플뮤직에 올라와 있으니 참 편리해졌다. 일단 이번 포스팅에서 정리할 토스카니니의 30년대 베토벤 교향곡 기록은 다음과 같다.




베토벤 교향곡 제1, 4, 6번 '전원' :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1937~39년)

베토벤 교향곡 제5, 7번 :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33, 1936년)





객관주의 혹은 즉물주의


서두에 언급했던 토스카니니에 대한 고정관념은 토스카니니가 객관주의 혹은 즉물주의 해석의 화신처럼 나의 뇌리에 인식되었던 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여러 연주를 들을 수록 뭔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주들과 별도 포스팅으로 당연히 다룰 NBC심포니와의 연주 모두 연주의 형태는 그 무렵 다른 지휘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3번 1악장을 반복하지 않는다거나 곳곳에 가필을 사용하는 등등. 토스카니니가 생전에 가필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뭔가 배신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든 것은 전적으로 말도 안되는 고정관념의 탓이다. 


사실, 토스카니니라고 딱히 이상한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 무렵 다들 그렇게 하던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의 용인될만한 정도까지 손을 대서 연주한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연주를 들으면 비로소 안개가 걷히고 눈에 떠지며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에만 집중하게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럼, 기존에 그렇게 알고 있던 객관주의, 즉물주의, 인템포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는 말인가? 전적으로 그렇게 깨끗이 지워버리지는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보면 왜 그토록 그 당시 음악계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가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알게 될 것이다. BBC 심포니와의 연주 중에서 특히 1번과 6번은 쇠꼬챙이 처럼 심지가 단단한 조형이 인상적이다. 





강인한 조형으로 다듬어진 날카롭게 건강한 울림속에 살아 숨쉬는 활기가 가득한 베토벤.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이건 지금까지 들어왔던 옛날 녹음들과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과연, 압도적이다. 음악 그 자체의 생생한 움직임이 그대로 전달된다. 앞서 들었던 독일계 지휘자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역시 프레이징을 보다 단호하게 마무리짓는 방식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연주들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절제와 단호함이 요구되는 방식이다. 프레이즈를 이렇게 단칼에 잘라버리듯 끝맺음 짓는 것은 어지간한 지휘자들도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좀더 여유롭고 장대하게 울려퍼지는 울림의 유혹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토스카니니는 그걸 해내고 있다. 덕분에 베토벤 음악의 전투적인 맛이 알싸하게 살아난다. 멋지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신경질적이거나 강박적이지도 않다. 이런 연주야 말로 매직이 아닐까? 


뉴욕필과의 5, 7번 역시 숨겨진 명연이다. 얼핏 들으면 토스카니니답지 않게 의외로 진중하고 차분한 접근으로 들리는데 그 와중에도 꼼꼼하고 단호한 만듦새는 여전하다. 5번의 1악장 제시부 반복이 생략된 것이 의아한데 다른 많은 녹음에서 반복을 수행하고 있는 걸 보면 당시 그 녹음을 위한 기술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다. 진중하게 소리의 결을 쌓아가는 손길은 전형적인 독일계열 지휘자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한없이 진지하고 동시에 베토벤의 음악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가는 마술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 역시 대단한 연주. 


결론적으로, 토스카니니는 절대적인 자기확신으로 오케스트라에서 한치의 양보 없이 견고하고 꼼꼼하게 다듬어진 울림을 이끌어낸 탁월한 지휘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객관주의나 즉물주의, 인템포 정도로 한정지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개성이 강한 사람에게 객관주의자라는 타이틀은 뭔가 좀 심심하고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선입견을 걷어내고 들어도 여전히 토스카니니는 대단하다. 이들 연주들의 종합적인 인상은 말년의 NBC심포니와의 연주들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연주라서 그럴까? 여기에 더해서 아무래도 말년의 녹음들에 비하면 2차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비극적인 시대적 경험을 하기 전이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나만의 상상을 해본다. 음악가도 한 시대를 살아간 하나의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 연주들은 앞서 적었듯이 여러 형태로 발매된 듯 하다. 맨 위에 올린 앨범은 RCA 토스카니니 전집 속에서 선택한 2장짜리 앨범으로 BBC심포니와의 연주들이 한번에 담겨 있어 편리하지만 따로 구하기는 어려운듯 하고, 낙소스나 예전 EMI에서 세트로 발매한 것이 나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주저없이 애플뮤직에서 다운받아 듣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녹음상태는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토스카니니의 스타일을 확연히 느끼기에 충분하고 더 나아가 베토벤을 느끼기에도 이만하면 충분히 훌륭하다. 토스카니니 팬, 아니 베토벤 교향곡 애호가라면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기록의 하나로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