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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2기 #3 - 브루노 발터 / 빈 필

by iMac 2017. 2. 4.

또 하나의 고정관념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에 대해서도 앞선 토스카니니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접해가던 초창기에 주입된 고정관념이 있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묘사되곤 했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온화한 인격자' 정도? 그런데, 예전 우리나라 음악감상 분야의 환경이랄 것이 초창기에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폭넓은 관련자료와 접할 기회도 부족하다보니 대단히 단순화된 고정적인 이미지를 전수받는 상황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발터에게 이런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대부분이 말년에 스테레오 녹음으로 남긴 콜럼비아 심포니와의 녹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노년에 지휘한 것이니 원숙하고 느긋하며 푸근한 접근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오케스트라의 울림 또한 강건하고 기능적으로 우수하기보다 밝고 살짝 느슨한 편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는 임종을 앞둔 노인의 초상화 한장만 달랑 놓고 그 사람의 일생을 판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넘어선 발터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op.68

브루노 발터, 지휘

빈 필하모닉 (1936년 무직페라인잘 녹음)




인격과 음악의 상관관계 


온화한 인격자 운운하는 발터의 이미지는 최근에 접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노먼 레브레히트의 저서들 몇 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서 나름 잘 알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레브레히트의 관점 자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종의 '정보'들은 참고할만 한데, '거장신화'라는 책에 소개된 발터의 인간적인 모습은 말 그대로 파렴치한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논할 수준이 못되니 넘어가더라도 지휘자 개인의 도덕성과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완성도는 구분해서 생각하고 싶다. 단적으로 말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의 인격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30년대 발터의 기록들


이 녹음은 1936년 빈 필을 지휘한 기록으로, 빈 필이 무직페라인에서 연주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연주를 포착하고 있는 아주 소중한 기록이다. 앞선 바인가르트너도 전원은 빈 필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소중하다. 발터라면 전원 교향곡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오래 전부터 콜럼비아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은 고전 명반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녹음 당시 발터는 60대 초반의 나이로 지휘자로서 한창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가 나치의 대두로 독일에서 활동하지 못하면서 빈 필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이 연주는 그러한 시기에 남긴 소중한 기록인데 예전 EMI에서 9장으로 발매한 이 세트 음반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바그너, 말러 등 좋은 녹음들이 많다. 전원 교향곡 외에는 1938년 2차대전 전으로는 빈 필과의 마지막 실황녹음이었던 말러의 9번 교향곡이 인상적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세트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포스팅 해보고 싶다.



주옥같은 명곡들로 가득하다.


앞서 들어본 토스카니니가 명쾌한 조형감각으로 거침없이 오케스트라를 다잡으며 소리를 뽑아내고 있다면 발터는 빈 필로부터 보다 유연하고 편안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30년대 녹음이지만 무직페라인의 공간감과 빈 필의 풍성한 울림이 자연스럽게 잘 포착되고 있어 듣기에도 좋다. 콜럼비아 심포니와의 연주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도 훨씬 팽팽하게 긴장의 끈을 쥐고 있는 것이 분명히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 말년의 초상화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앨범 표지 사진 속 발터의 모습도 자주보던 노년의 호호 할아버지 외모가 아니다. 훨씬 샤프하고 또렷한 윤곽에 강인해 보이는 모습.


토스카니니의 연주가 다이내믹하고 시원시원한 사이다 같은 연주라면, 발터의 연주는 보다 풍성하고 유려한 울림의 연주라고 하겠다. 토스카니니의 연주가 감탄의 연속이었다면 발터의 연주는 아무 생각없이 술술 잘 듣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끝나 있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역시나 좀 더 팽팽한 활력이 느껴지는 것이 말년의 녹음보다 20여년 앞선 시점임을 일깨워준다. 특히 5악장에서 과도하지 않으면서 미묘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듯 강약을 오가는 조형이 인상적이었다. 


빈 필이 멋지게 연주해낸 전원교향곡의 30년대 녹음기록으며, 브루노 발터라면 무조건 온화하고 푸근한 연주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트려줄 음반이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베토벤의 전원을 잘 듣고 즐기게 해준다는 점이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역시 추천할만 하다. 낙소스로도 발매되어 있고 애플뮤직에도 올라와 있는 등 여러 형태로 감상이 가능하니 일청을 권해본다.



* 계획했던대로 30년대 시리즈의 마지막은, 10살 연상인 발터를 제치고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히의 자리를 모두 꿰찬 당대의 한창 떠오르던 지휘자였던 푸르트벵글러의 포스팅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