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아름다움
피곤한 일상 속에서 간혹 아무 생각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듣는다기 보다는 그냥 흘려듣는 정도인데, 이럴 때 좋은 것이 나에게는 바로크 음악인 것 같다. 물론 이것도 그때 그때 다르긴 하다. 아무 생각없이 고즈넉한 그런 분위기에 젖고 싶은가보다.
낯선, 그러나 편안한
애플뮤직에 올라온 신보들을 둘러보다가 간만에 파비오 비온디의 음반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글로싸(Glossa) 레이블에서 발매된 것으로 르클레르의 바이올린 협주곡 1, 3, 4, 5번이 수록된 음반. 사실 개인적으로 르클레르의 음악을 많이 들어본 적은 없다. 음악사적으로 르클레르라면 내 기억에는 바이올린 소나타들이 먼저 떠오른다. 바이올린 음악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으로 각인된 사람. 그래서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제목만 보고 선뜻 골랐다.
음반을 고를 때 그냥 '감'이라는 것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그 '감'이 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잘 맞은 듯 하다. 바이올린 음악의 명수라는 르클레르의 평가를 믿고, 또 한편으로는 파비오 비온디의 이름을 믿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기대되는 음향을 떠올리며 골랐는데 썩 마음에 든다.
처음에 적었던 것처럼 내가 기대했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현악합주와 쳄발로 통주저음 반주 속에 섬세한 아름다움을 머금은 바이올린 독주가 여유롭게 유유자적한다. 예전에 비온디가 비발디의 4계에서 보여주었던 파괴적인 모습을 생각한다면, 혹은 걱정한다면 그럴 일은 전혀 없다. 작품이 작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듣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듣는 낯선 음악들이지만 일상에 지친 심신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느낌이 참 좋다. 여유로운 공간감 속에 따스하게 울려 퍼지는 녹음도 대단히 마음에 든다. 간만에 듣는 비온디의 바이올린도 무척 매력적인데 그의 톤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놀랍다. 르클레르가 만들어내는 바이올린의 움직임은 물론 당시로서는 대단히 선구적인 기교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오늘날 듣기에는 과도하게 기교에 함몰되지 않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으로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
의문의 죽음
르클레르(Jean-Maire Leclair, 1697~1764)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그의 집에서 누군가에 의해 칼에 찔려 숨진 채 바닥에 쓰러 진 상태로 발견되었던 것. 문제는 그 살인사건이 결국은 미제사건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주변 사람 중에 살인 동기를 가진 사람에 대해 추리해 보는 이야기가 있었다.
미제사건이라 결국 추측에 불과하고 답은 안나오는데, 1.그의 동생, 2. 조카, 3. 전 부인, 4. 라이벌 등으로 소개하면서 르클레르의 음악세계를 두루두루 개괄하는 짤막한 글이었는데 결론이 용두사미라 좀 허무하긴 했지만 나름 르클레르에 대해 흥미를 일깨워 준 글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일상의 피곤을 씻어내기 위해 들은 음악에 대한 뒷이야기로는 좀 안어울리는 측면이 있지만, 르클레르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음악을 듣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듯 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원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반가웠던 비온디, 그리고 낯선음악이지만 편안한 아름다움으로 일상의 피로를 자연스레 씻어내준 음악 모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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