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곡 보리수 (Der Lindenbaum)
겨울나그네 중 가장 유명한 곡 '보리수'. 슈베르트가 처음 겨울 나그네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다들 이해를 못하고 그나마 '보리수' 하나 마음에 든다고 말하자 슈베르트가 이 곡 전체가 다 좋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흔히 소개되곤 하는데, 이 책 서두에서 보스트리지는 이것을 일종의 미심쩍은 '신화'만들기로 설명한다.
발표당시 대다수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각광받은 걸작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이야기기인데, 실제 슈베르트 생전에 이미 겨울나그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평론도 있었고 당시 슈베르트 작품들은 꽤나 인기가 높아서 연주도 자주 되고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 잊혀져 비참한 생활을 한 것 같이 생각했던 것은 객관적인 근거없는 막연한 과장이었던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연한 추측과 그것이 고착된 그릇된 상식을 가볍게 뒤집어준 것 만으로도 이 책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보리수가 일단 '노래'로서 듣기에 좋은 곡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민요풍의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사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은 이 곡을 끝까지 다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보리수가 안식을 찾으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죽음의 손짓이나 다름없으니 이걸 마냥 소박한 민요풍의 노래라고 하는 것은 분명 넌센스다.
보리수가 독일전통에서 자리한 역할에 대한 이야기에서 보스트리지는 이 곡을 민요풍으로 순화해서 국민가요처럼 널리 부른 독일어권의 전통을 짚어가면서 더 나아가 독일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고찰로까지 넘어간다. 과연, 독일은 어떻게 해서 나치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던 것일까?
대중가요풍으로 번안되어서 널리 불린 보리수를 흥얼거리는 택시 기사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전설적인 독일 테너였던 리하르트 타우버(Richard Tauber, 1891~1948)가 영화속에서 부른 버전이 유투브에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한켠에 우울함을 머금은 병적인 낭만주의적 경향에서 집단적인 자해로 이어지는 경과를 유추해가는 이야기는 나름 흥미진진하다. 그 과정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까지 예를 드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마의 산'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그 유명한 마들렌 과장 장면까지 인용되니 이쯤 되면 정말 폭넓은 지성의 향연이 넘쳐난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느꼈지만 다시 한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마지막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유행했던 이미지인 방랑하는 사람의 우울한 이미지의 마지막 끝자락에 위치한 말러의 연가곡이 소개된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마지막곡에도 보리수가 나온다. 보스트리지는 원곡이 테너와 피아노를 위한 버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덕분에 또 다시 애플뮤직에서 테너 버전을 찾아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믿고 듣는 프레가디엔.
바리톤과 메조소프라노로만 들었었는데, 테너와 피아노 반주로 듣는 맛도 어색하지 않고 듣기 좋았다. 이 버전도 종종 들을 것 같다. 슈베르트의 보리수로 시작해서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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