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이달의 음반
한 동안 잊고 지내던 보상으로 BBC 뮤직 매거진을 몰아 보고 있다. 7월호의 'Recording of the Month'는 바로 세미욘 비쉬코프/빈 필의 프란츠 슈미트의 교향곡 제2번 녹음. 생소한 곡인데, 일단 비쉬코프와 빈 필의 조합은 그 자체로 들을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또한, 얼마전 슈베르트 포스팅에서도 한 번 비쉬코프에 대해 언급한 다음에 이걸 보게 되어서인지 더더욱 반가웠다. ( 2017/06/25 - [Classical Music/music note]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22, 23, 24 )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본 작곡가 프란츠 슈미트(Frans Schmidt, 1874~1939)는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젊은 시절에는 말러가 지휘하던 무렵 빈 궁정 오페라에서 첼리스트로 있었다고 한다. 과연, 음악은 전형적인 후기 낭만주의 스타일. 빈 필의 나른한 음향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로 이걸 듣고 있으면 절로 말러나 R.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연상된다.
아닌게 아니라 비쉬코프는 이미 R.슈트라우스가 장기인 지휘자로 알고 있는지라 그래서인지 커플링 된 곡도 R.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인테르메초'중 간주곡 'träumerei am kamin' (난로가의 꿈이라고 해야할까?) 호젓하게 시작해서 은근하게 휘감아 올라 현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곡. 역시 기대했던 대로 훌륭하다. 그런데 이걸 듣고 나니 역시 R.슈트라우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서는 귀에 익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프란츠 슈미트는 R.슈트라우스만큼 듣는 이를 홀리는 마력은 부족한 듯.
비쉬코프 추천음반
이 달의 음반 코너는 추천된 연주자의 기존에 리뷰되었던 음반 세 개 정도를 함께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번 비쉬코프의 경우는 슈미트의 교향곡 보다는 오히려 이것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셋 모두 쾰른의 WDR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으로, 악단과 지휘자의 상성이 잘 맞아 떨어진 멋진 결과물들이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어서 반가웠다.
R.슈트라우스 - 엘렉트라 (2004년)
R.슈트라우스 - 알프스 교향곡,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2007년)
바그너 - 로엔그린 (2008년)
셋 모두 작품 자체가 워낙 매력적인 것들인데 연주 또한 훌륭해서 각 곡의 추천음반으로 꼽기에 충분하다. 모든 연주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특히 지휘자가 만들어내는 일관된 음향적 특성이 들으면 들을 수록 매력이 끝없이 배어나온다. 정치정연하게 다듬어진 앙상블은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음악의 자연스러운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정밀한 앙상블과 거침없이 흘러가는 음악의 움직임이 결합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WDR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대단히 기능적이며 서늘한 울림도 무척 매력적이다. 뾰족뾰족 거침없이 튀어 나오면서도 때로는 의외라고 느껴질정도로 은은한 색채감도 곁들여져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울림을 들려준다.
엘렉트라는 데보라 폴라스키가 타이틀 롤을 맡았는데 폴라스키에 대해서는 흔히 라이브만큼 녹음이 성공적이지 못한 가수라는 평이 따라다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실연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알 길이 없지만 음반으로 듣기에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나쁘지 않다. 여기에 안네 슈바네빌름스의 크리소테미스라니. 더할 나위 없다. 펠리시티 팔머의 열연도 인상적인데 1944년생으로 녹음 당시 60세였으니 노익장이 따로 없다.
알프스 교향곡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데, 틸레만/빈 필의 흐드러진 아름다움과 또 다른 서늘하게 각이 잡힌 음향이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비쉬코프의 알프스 교향곡은 마침 2008년 10월의 실황으로 베를린 필 디지털 콘서트홀에도 올라와 있다. 유투브 발췌에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가 올라와 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비쉬코프, 참 잘한다.
마지막으로 로엔그린. 가수진, 특히 여성배역이 아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시 만족스럽다. 이걸 들으면 느낀 점은 WDR의 울림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슈투트가르트의 SWR과 비교할 때 기능적인 면은 유사하지만 현의 음색은 보다 색채감이 은은해서 독일 전통 오케스트라의 느낌에 가깝다는 것이다. 녹음만 가지고 판단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이상 세 가지 녹음을 들으며 공통되게 느낀 점이었다.
로엔그린 녹음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연광철씨가 하인리히 왕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이걸 보면 지금은 2016년 빈 국립오페라 로엔그린 공연에서 연광철씨가 같은 배역을 부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 2017/02/03 - [Travel/europe] - 2016 비엔나 #10 (2016.5.21) - 빈 국립 오페라 (로엔그린) ) 빈 국립 오페라의 무대에서 극장을 가득 메우도록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당당한 발성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여행을 돌아온 지금은 이 음반을 통해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볼 수 있어서 좋다. 다만, 녹음의 한계랄까? 그 때 그 날 현장에서 들으며 느꼈던 압도적인 느낌까지 음반이 되살려 내지는 못한다.
이상 세 녹음 모두 이제는 애플뮤직에 올라와 있다. 덕분에 힘들게 CD에서 리핑해서 옮겨 놓을 필요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 이것 외에도 애플뮤직을 찾아보면 WDR과의 녹음이 여럿 보이는데 하나같이 들을만하다. 비쉬코프가 1952년생인데, 모쪼록 건강하게 오랫동안 멋진 음악을 계속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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