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concert

라이너 퀴힐 바이올린 리사이틀 (2018.1.18, 금호아트홀)

by iMac 2018. 1. 28.

다녀오자마자 후기를 올리려고 마음은 먹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도 해서 포스팅이 많이 늦어졌다. 시의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기록해 두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기에 이번 연주회의 감흥은 꼭 남겨두기로 했다. 






라이너 퀴힐 (Rainer Küchl)


금호아트홀에 연주회를 보러 간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어느새 3년이 넘은 것 같다. 그 동안은 주로 예당 쪽 연주회를 많이 다니다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빈 필의 악장이었던 라이너 퀴힐의 연주회라 와이프가 꼭 가고 싶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연주회 일정에서 살짝 언급하기도 했지만, 2016년 9월에도 연세대 금호아트홀에서 같은 반주자와 함께 내한 연주회를 하신 적이 있다. 그 때 참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포스팅 남겨 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





아무튼, 라이너 퀴힐은 1971년 만 20세에 빈 필의 악장이 된 이래 2016년 8월 은퇴하실 때까지 악장으로 활동한 살아 있는 전설인 분이다. 그 시기를 생각하면 대략 칼 뵘, 카라얀, 번스타인 등등 어지간한 거장 지휘자들은 두루 거쳐간 시기를 경험한 분이니 그 자체로 존경심이 절로 생겨난다. 





프로그램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제35번 A장조, K.526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c단조, op.30/2


인터미션


앙리 비외탕,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열정 환상곡, op.35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왈츠 스케르초 C장조, op.34

사라사테, 카르멘 환상곡 op.25


앙코르


크라이슬러

집시 카프리스, 폴리치넬레, 사랑의 슬픔, 탱고(알베니스, 크라이슬러 편곡)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좋았다. 1950년생이시니 70이 다 되어 가는 연세를 감안해서 소소하게 음정이 흔들리는 부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러한 부분을 잊게 만드는 노련한 음악 만들기가 압도적이었다.


45년간 빈 필의 악장을 역임했다는 경력 자체가 과연 대단하구나 새삼 실감했다. 소소한 실수가 있어도 음악 전체의 흐름은 흔들리지 않고 노련하게 수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러한 것을 뛰어넘어 '음악적 설득력'이라는 점에서 압도적이었다. 





전반부 소나타, 특히 첫 곡은 낯선 곡인데다 퇴근 후 피곤함이 더해져 반쯤 졸면서 들었다. 곡 자체도 베토벤 만큼 재밌지는 않았고 첫 곡이어서 그런지 곳곳에서 연주도 불안불안. 두 번째 곡부터 좀 들을만 했는데, 2년전에도 느꼈지만, 엄청난 힘이 실린 진한 보잉이 정말 인상적.


인터미션 후 이어진 곡들은 곡 자체가 달라져서인지 인상이 사뭇 달라졌다. 손이 완전히 풀리신 걸까? 훨씬 드라마틱하고 비르투오소적인 면모가 물씬 풍긴다. 압권은 역시 마지막 곡이었는데, 역동적인 제스처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2년전에도 앵콜을 꽤 많이 해주셨던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도 4곡씩이나 해주셨다. 앵콜에 이르니 손이 완전히 풀리신 듯, 연주가 갈수록 좋아졌다. 분위기가 좋을 수 밖에 없었는데, 집에 가려는 청중들을 계속 다시 나오셔서 붙잡는 듯한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브라보!!!



70이 다 되신 지금도 이정도인데, 젊었을 때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앞서도 말했듯, 소소한 실수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운 에피소드일 뿐, 음악 전체의 완성도를 해치지는 못했다. 전체적인 큰 흐름 속에 강력한 음악적 설득력을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젊은이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지일 것이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흡족했던 연주회.


이날은 사인회같은 것은 없었던 듯. 2년전에 포스팅하지 못했던 사인 사진을 올려본다. 2016년 5월 빈에 다녀온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라 빈에서 가져온 연주회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퀴힐 4중주단 연주회 일정 사진에 사인을 받았다. 돌아가서 얼마 후에 있을 연주회라며 유쾌하게 웃으시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기억으로는, 역시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빈에서 오래 활동하신 분이라 그런지 무대에서 내려온 후의 모습은 의외로 쾌활하고 유쾌한 모습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앞으로도 오래 오래 건강하게 남은 여생 음악과 함께 즐기시며 지내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