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내한공연 (2017.11.20, feat 조성진 ver.2)

R. 슈트라우스

교향시 돈 후안 op.20

라벨

피아노 협주곡 

앙코르 : 드뷔시, '물에 비친 그림자'


인터미션


브람스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

앙코르 : 드보르작, 슬라브 무곡 e단조, op.72/2


조성진, 피아노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


앞전에도 언제가 썼듯이, 이런 공연은 언제 예매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때 쯤에 시간이 돌아온다. 특히나 이번 베를린 필 내한공연은 이래저래 흥미진진 했다.

예매 과정부터 예상 했던대로 오픈 하자마자 접속했지만 적당한 자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처음 몇일은 아예 빈 자리가 하나도 없는 상황. 그러더니 며칠 후 슬금슬금 몇 자리가 뜨기 시작. 그래도 저렴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어쩔 수 없이 거금을 들여 1층 E열에 2자리 겨우 예매. 그것도 부부가 함께 앉지 못하고 따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야만 하는 상황. 이때만해도 일단 이거라도 예매해 놓고 나중에 좀 싼 자리 구하게 되면 취소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 후로 한동안 딱히 자리도 안뜨고 거의 매진 분위기. 그러다가 느닷없이 협연자로 예정되었던 랑랑이 건초염으로 일정을 포기하고 대신에 '조성진'으로 바뀌었단다. 이쯤되니 빈 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해보였다. 조성진은 그냥 리사이틀 표도 구하기 힘든데 무려 베를린 필과 협연이라니. 

조성진에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쯤되면 뭔가 횡재한 기분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내한공연에 앞서 베를린에서 데뷔공연도 하고, 프랑크푸르트, 홍콩을 거쳐 이제 서울에서 실연으로 보게 되었다.


래틀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돈 후안

첫 곡 '돈 후안'은 R.슈트라우스의 초창기 히트작으로 25살에 불과했던 작곡가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멋진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곡인데, 카라얀/베를린 필(DG)의 80년대 음반으로 처음 접했던 만큼 실연에서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모습에 기대가 컸다.

래틀의 해석은 일찌기 디지털 콘서트홀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들어볼 수 있었는데 실제 연주를 듣기 전까지는 반신반의였다. 그러한 의구심은 막상 실제 눈앞에서 연주를 들으니 정말 의외다 싶은 생각과 함께 깨끗이 사라졌다. 

홍콩실황을 비롯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듣던 소리보다 훨씬 무겁고 서늘하며 음의 끝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빛나는 음향. 취향에 따라서는 옛날 카라얀 스타일의 묵직함이 아니라고 아쉬워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오히려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묵직해서 놀라웠다. 

물론, 카라얀 급으로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 수준으로 '돈 후안'을 실연에서 들을 수 있다니 정말 만족스러웠다.

달라진 것은 지휘자의 해석 스타일 탓이지 오케스트라는 정말 희한하게도 예전 베를린 필 그대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색감이 다소 어두우며 농도가 진한 울림. 이러한 소리는 지휘자가 잘 다루면 대단히 위력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소 뻔하고 답답한 연주가 되기 쉽다. 




조성진 - 라벨, 드뷔시

조성진의 연주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미리 본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앉은 자리의 특성상 솔로가 딱히 잘 들리지는 않아서 좀 아쉽긴 했다. 음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취향상, 여전히 조성진의 터치는 현재로서는 미지수. 하지만 음악 그 자체의 윤곽을 깔끔하게 조형해내는 실력은 확실했다. 

베를린 필의 반주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매력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앞서 언급한 악단의 기질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점은 내가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 탓일수도 있겠다.

앙코르는 베를린 실황에서 연주한 드뷔시의 '물에 비친 그림자'. 홍콩에서 '달빛'을 했으니 여기서는 다른 곡을 고른 듯. 

이 날의 연주회장 분위기는 전에 보지 못한 '전석매진'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럭저럭 수준이었지만 한 번 살짝 들렸던 휴대전화 소리나 마지막 끝음의 여운을 음미하지 못하게 총알같이 터져나오는 박수는 여전했다. 


기대 이상이었던 브람스

인터미션 후 마지막 프로그램 브람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나도 처음부터 큰 기대가 없었다. 래틀의 연주 중에서도 브람스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특히 4번은 묘하게 만족스러운 녹음이 많지 않은 곡이기도 했기 때문.

내 기억으로 베를린 필이 연주한 브람스 4번 녹음 중 아주 속시원히 좋았던 연주는 없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여전히 무시무시하긴 했지만 터져버릴 듯한 그 음향이 과연 브람스와 맞는 것인지 놀라움과 별개로 의문. 카라얀의 세 차례 녹음 중에서는 70년대가 제일 좋았지만 여전히 갸우뚱. 

1악장이 특히 소리 만들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점은 역시 베를린 필의 음향 특성과도 상관이 있는 것 같다. 내 취향에는 클라이버/빈 필(DG)의 카랑카랑한 연주가 아직까지 최고였다.

아무튼, 큰 기대 없이 자리에 앉았는데 이게 웬걸, 최고까지는 아니어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점은 맨 첫 곡 '돈 후안'에서 느꼈던 느낌의 연속이었다. 이점은 역시 사람마다 상반된 느낌일 수도 있었겠지만, 앞서도 말했듯, 나는 이날의 연주에서 예전의 그 베를린 필의 음향 특성은 여전하다고 느꼈다.

또한, 이날의 자리도 아주 딱 이상적인 소리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1층 정도는 앉아야 제법 들을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 실제로 듣는 소리는 정말 사뭇 다르다. 언젠가는, 꼭, 베를린에 가서 이들의 연주를 들어야겠다.




* 사진집 - moving music

프로그램을 파는 곳에서 CD, 조성진 달력 등등을 팔고 있었는데 두툼한 사진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베를린 필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팔고 있다. ($49)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recordings.com/moving-music.html

주문할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 보이니 바로 집어들었다. 래틀 재임시절 베를린 필의 사진 기록들. 어릴적 봤던 백과사전 처럼 두툼하고 무겁다. 한동안은 가끔 들여다보며 이날 연주회의 추억을 곱씹는 한 편 베를린에 가서 이들을 보게 될 날을 기약하게 될 것 같다.




댓글(2)

  • 2017.11.21 02:03 신고

    오 직접 보셨군요! 평을 보니 역시 베를린필다운 연주였나 봅니다. 2011년, 2013년 내한은 갔었는데 래틀과 베를린필의 마지막 내한을 놓치니 참 아쉽네요ㅜㅜ 특히 돈 후안은 정말 진국이었을 것 같네요. 다음날 페트루슈카와 함께 래틀의 매력을 가장 잘 살려주는 곡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진집도 소장할 가치가 충분해보입니다. 베를린필이 저런 기념품들을 만드는 데 센스가 확실히 탁월해요.

    • 2017.11.21 07:16 신고

      프로그램 자체는 두번째 공연이 더 래틀에 맞는 듯 합니다만, 대중적인 취향, 일요일 오후 5시라는 시간적 환경 등 종합할 때 첫날 공연이 훨씬 매력적이었죠. 전석 매진이라니.. @.@
      사진집이 좀 비싸긴 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멋진 센스는.. 래틀 시대도 이정도니 카라얀 시절은 어땠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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