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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13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4. 동결 4곡 동결 (Erstarrung) 제목은 꽁꽁 얼어붙은 상태인데, 음악은 마구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얼어붙은 현상이 아니라 얼어붙은 대지와 마음 속 깊이 들어앉은 과거의 추억을 집요하게 파헤치고자 불안정하게 헤매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얗게 뒤덮인 눈밭, 시간이 흘러 꽁꽁 얼어붙은 눈밭에서 추억을 찾아 헤매인다. 꽁꽁 얼어붙은 눈밭은 실제 펼쳐진 물리적 장소인 동시에 시어에서 묘사하듯, 꽁꽁 얼어붙은 마음 속이기도 하다. 1~3곡을 지나 지금까지 곡 중에서 가장 격정적인 곡인데, 뭐랄까 듣는 입장에서는 화자의 가슴 저미는 상황이 완전 연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남는다. 하긴, 무엇하나 시원스럽게 해소되어버린다면 겨울 나그네의 이야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3분 남짓 이어지는 가운데 시종일관 불.. 2017. 5. 28.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3. 얼어붙은 눈물 3곡 얼어붙은 눈물 (Gefrone Tränen) 눈에서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이 알알이 얼어붙는 형상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하는 전주로 시작한다. 3곡에 대한 이야기는 제목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인 눈물과 얼어붙음으로부터 뻗어나간다. 추위, 겨울, 전쟁 노래 속 주인공은 겨울에 길을 떠나는 상황이니 추위 때문에 눈물이 얼어붙는 상황은 정황상 자연스럽다. 그로부터 보스트리지는 본인이 추운 겨울 러시아에 가서 겨울 나그네를 공연한 이야기와 함께 겨울과 러시아에 얽힌 전쟁과 슈베르트 시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데 버무린다. 다양한 시대적 배경이지만 전체를 하나로 묶는 주제를 잘 유지하고 있어서 잡다하게 느껴지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그래,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 공연에 대해 언급.. 2017. 5. 27.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2. 풍향기 2곡 풍향기 (Wetterfahne) 터덜터덜 수많은 사연을 품고 걸어가는 1곡에 이어지는 2곡은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기. 바람을 맞아 덜그럭 거리는 듯한 돌발적인 음형으로 시작한다. 음악의 흐름도 마음 속을 뒤흔드는 바람이 부는 듯 불안하고 격정적이다. 2곡의 해설 내용도 이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슈베르트와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 바로 그것. 프랑스 혁명의 반동으로 개혁은 물건너가고 억압적인 메테르니히 정권하의 오스트리아에서는 남자가 결혼을 하려면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는지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결혼이 가능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남자들은 대부분 서른살을 넘겨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심지어 슈베르트의 맏형은 쉰한 살에야 결혼했다고. 오늘.. 2017. 5. 26.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1. 밤 인사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바다출판사 워낙 유명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으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야말로 '표준적인' 피셔-디스카우의 DG 음반으로 이 곡을 처음 접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이 작품 속에서 제대로 알고 있는 곡은 몇 곡 되지 않는다. 보다 화려한 볼거리, 들을거리로 무장한 오페라에 대한 관심에 밀려 리트는 여전히 막연한 위시 리스트의 영역일 뿐이었다. 보스트리지가 쓴 책이 나온 것은 진작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서 좀 망설이고 있었다. 여전히 선뜻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기에 망설이고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슈베르트 가곡들에 대한 위시 리스트를 품고 있었기에 결국 집어들게 되었다. .. 2017.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