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조식
시간이 어느새 흘러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 시간의 흐름을 붙잡을 수 없음에 아쉬워 하며 마지막 날 일정을 시작한다. 변함없이 조식을 챙겨먹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이렇게 열심히 아침식사를 챙겨먹지 못했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여행이란 많은 걸 변화시킨다.
오후 6:40 빈 국제공항에서 인천공항행 KE938편으로 귀국 예정이기에 대략 오후 3시정도까지 시간 여유가 있는 상황. 짐을 어떻게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결국은 아침에 체크아웃 하면서 호텔에 맡기고 천천히 걸어나가서 호텔 인근 지역 도보 관광을 하기로 했다. 미처 가보지 못한 곳 천지이지만, 조급한 마음은 버리기로 했다. 편안한 마음을 먹으려고 여행을 온 것이니까.
카페 슈페를(Café Sperl)
조식을 먹고 짐을 정리해서 카운터로 내려오니 어느새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기고 아침부터 또 카페에 가기로 했다. 전날은 카페 무제움, 오늘은 카페 슈페를에 가보기로. 숙소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도 베토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두 주인공이 앉아서 대화하던 장소 중 하나.
카페에 들어서니 영화 속 모습이 바로 눈앞에 떠오른다. 9시 40분쯤 도착했는데, 그 시각에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쪽 모퉁이에 자리잡고 멜랑주를 주문. 이젠 당분간 멜랑주와도 안녕이다. 재미있는 것은 카페마다 멜랑주의 맛이 미묘하게 서로 다르다. 이곳도 1880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빈의 유명한 카페들은 어지간하면 다들 그 정도 역사는 기본인 듯.
부르크 공원-왕궁정원 (Burggarten)
10시 반쯤 카페 슈페를에서 나와 10분 남짓 거리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다보면 부르크 공원(왕궁정원, Burggarten)이 나온다. 저멀리 하얀 모차르트 석상이 제일 먼저 보인다. 이것 역시 사진에서 많이 보던 모습. 날씨는 여전히 환상적인 5월의 날씨. 문득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중 첫 곡이 떠오른다. '정말로 아름다운 달 오월...'
모차르트 기념상 앞 벤치 그늘에 앉아 한가로이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렇듯 평화롭고 아무 생각없이 산들바람을 맞으며 편안하게 앉아 쉬는 것이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면 늘 무엇인가를 하고 있거나 회사일이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을 텐데 그 곳에서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네 일상은 이런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 정녕 꿈일까?
벤치에서 일어나 공원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다 보면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면서 널찍한 초록의 공간과 연못이 나온다. 왼편에는 호프부르크 궁전이 위풍당당하게 우뚝 서있다. 말하자면 이 공원은 황궁 뒷편 정원인 셈인데 오늘날에는 이렇게 시민들의 공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알베르티나 (Albertina)
공원과 호프부르크 뒷쪽 공간을 둘러보다가 조금 더 가면 궁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문을 나서면 바로 눈앞에 알베르티나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알베르티나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사위였던 알베르트 공작이 수집한 미술품을 기초로 만들어진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정작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번 일정에서 제일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빈 시내에 위치한 미술관, 박물관 등 전시공간에 들어가보지 못했다는 것.
알베르티나 역시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두 주인공이 시간을 보낸 공간 중 하나로 빈에서 보낸 두번째 날 밤에 이미 한 번 올라가서 오페라 극장을 내려다본적이 있다. ( 2017/01/21 - [Travel/europe] - 2016 비엔나 #5 (2016.5.20) - 빈 필 & 자허토르테 ) 오늘은 이제 낮에 올라가 밝은 대낮에 주변을 둘러본다. 같은 시야이지만 느낌은 당연히 완전히 다르다. 거의 매일같이 보던 오페라 극장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라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덧 시간은 12시가 되어간다. 이제 빈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가라고 하는 케른트너 거리를 둘러보고 점심을 간단히 먹으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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