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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4. 동결

by iMac 2017. 5. 28.


4곡 동결 (Erstarrung)


제목은 꽁꽁 얼어붙은 상태인데, 음악은 마구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얼어붙은 현상이 아니라 얼어붙은 대지와 마음 속 깊이 들어앉은 과거의 추억을 집요하게 파헤치고자 불안정하게 헤매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얗게 뒤덮인 눈밭, 시간이 흘러 꽁꽁 얼어붙은 눈밭에서 추억을 찾아 헤매인다. 꽁꽁 얼어붙은 눈밭은 실제 펼쳐진 물리적 장소인 동시에 시어에서 묘사하듯, 꽁꽁 얼어붙은 마음 속이기도 하다.


1~3곡을 지나 지금까지 곡 중에서 가장 격정적인 곡인데, 뭐랄까 듣는 입장에서는 화자의 가슴 저미는 상황이 완전 연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남는다. 하긴, 무엇하나 시원스럽게 해소되어버린다면 겨울 나그네의 이야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3분 남짓 이어지는 가운데 시종일관 불안, 초조, 격정, 안타까움 등등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듣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대놓고 엉엉 우는 것은 아니지만 심란하게 만드는 상황이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 곡이다.



라이너 트로스트 (낙소스)



성적인 함의


슈베르트는 불과 31살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여러 가지로 추정되지만 그 주된 사인은 매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보는 것일 맞을 것이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사랑에도 실패하고 현실적으로 경직된 국가의 통제하에 결혼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성병에까지 감염되어 결국 생을 마감하는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타깝다. 


뭐라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남긴 음악 작품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아무튼, 이번 곡에서는 슈베르트 음악에 담긴 성적인 함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니메트 D.544, 격노한 디아나에게 D.707, 탐닉 D.715이 소개되는데 이럴 때 애플뮤직의 편리함은 이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가니메트는 먼저 소개한 보니의 음반, 탐닉은 찾아보니 드디어 이 책의 저자인 보스트리지와 줄리어스 드레이크의 위그모어홀 실황음반이 보인다. 그 외에 프레가디엔(이젠 믿고 듣는 프레가디엔!)과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라이너 트로스트의 음반에서 격노한 디아나를 찾았다. 보스트리지의 노래는, 물론 잘 부르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트로스트의 음반은 낙소스라서 녹음이 좀 아쉽지만 노래 자체는 아주 좋아서 추천할만 하다. 특히 이 음반은 나에게 맨 첫곡 어부의 노래 D.881을 알게 해준 소중한 음반이다. 


음반은 애플뮤직에 뒤져보면 정말 많지만, 정리하면 위 세곡은 일단 보니, 트로스트, 프레가디엔의 것으로 들었다. 다들 잘 부르고 좋은 노래들인데 역시 유명한 노래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가니메트는 언제 들어도 멋진 곡이다. 나머지 두 곡은 흥미진진했던 해설에 비하면 타이틀 곡인 '동결'만큼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슈베르트가 바그너의 선배이긴 하지만 슈베르트 음악이 그 정도로 직접적으로 성적인 흥분을 표출하고 있지는 않은 탓이다. 몽환적인 에로틱함으로 말하자면 먼저 소개한 물레질하는 그레트헨 D.118이 훨씬 압도적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다른 작가가 성적인 장면에 이용한 음악으로 현악 5중주 D.956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내용에 대한 공감 여부는 뒤로 하고, 일단 오랜만에 5중주를 꺼내 들었다. 이 곡은 참 쉽지 않은 곡 중의 하나인데, 나에게는 꽤 오랫동안 난공불락의 난해한 곡으로 남아있었다. 워낙 길어서 곡을 익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구조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구조적인 이해는 제쳐두고 소리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접근하고서야 이 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역시 명곡 중의 명곡이라 음반도 넘쳐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아마데우스, 파벨 하스, 린지까지 세 종류이다. 물론 5중주이기에 현악 4중주단 + 게스트 첼로1의 구성이다. 아마데우스의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초창기에 너무 오랫동안 이 곡에 힘들어 했던 과거의 기억이 함께 하는 음반이어서 요즘은 손이 잘 가지 않는 편이다. 린지는 사다놓고 어쩌다보니 잘 듣지 않았다. 


파벨 하스는 최근 각광받는 스타 4중주단인데, 슈베르트의 5중주는 1악장의 경우 좀 조급하게 들린다. 요즘 스타일의 빠른 연주를 전반적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빠른 것과 조급하게 들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적어도 1악장은 Allegro 'ma non troppo'가 아닌가? 나머지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고 최신 녹음이라는 점이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한다. 멋진 녹음으로 포착한 현의 아름다움은 정말 특별하다. 





위의 세 음반을 포함해서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애플뮤직 덕에 피츠윌리엄 4중주단+크리스토퍼 반 캄펜의 음반(Decca)을 발견했다. 이번 장 최고의 플러스 알파를 바로 이것으로 꼽고 싶다. 이유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데, 아무튼 지금 현재 내 감각으로는 아주 딱 만족스러운 연주에 녹음이다. 듣자마자 바로 느낌이 왔는데, 잔향도 적당하고 볼륨감도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고 딱 적당하다. 템포설정도 좋고 적당히 예리하며, 구조적인 입체감도 훌륭하고 충분히 포근함도 있다. 일단 현재로서는 나 자신의 슈베르트 현악5중주 레퍼런스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