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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 가티

by iMac 2017. 7. 1.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2013년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다니엘레 가티, 지휘 / 빈 필

슈테판 헤어하임, 연출


애플뮤직을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CD구입은 거의 중단하다시피 하고 조금씩 블루레이 영상물 구입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덕분에 음반 구입 비용은 현저히 줄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상물 구입은 다른 한 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음반만큼 썩 열심히 감상에 임하는 편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음반, 아니 이제는 음원 쪽은 접근성도 훨씬 좋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영상물은 좀 더 집중을 요하기 때문에 바쁜 일상 가운데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 문제.


그렇긴 해도, '오페라'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태생이 무대공연을 보고 듣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오롯이 느끼려면 직접 공연을 보거나 영상을 통해 감상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눈은 귀와는 또 다른 감각으로 새로운 것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것이 사실이다. 음반은 그럭저럭 옛 녹음을 감수하고 들을 수 있어도 영상은 보다 고해상도를 찾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블루레이 영상물들은 현 시점에서 나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한글자막이 포함된 타이틀도 종종 보이고 있어서 아직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예전보다는 좀 더 감상환경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바그너의 '명가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바그너가 다 그렇듯이 워낙 길어서 전곡을 완주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극적으로 바그너의 보기 드문 희가극(초창기 작품 제외하고)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종종 안어울리게 무겁다는 생각도 들곤 하는 작품인데, 이 길고 긴 작품을 돌파하기에 영상물만큼 좋은 선택이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쉽고 구할 수 있고, 블루레이이며, 한글자막이 있는 것으로 찾다보니 가티가 지휘한 2013년 잘츠부르크 실황이 눈에 띄었다. 가티의 지휘에 대해서는 아직 살짝 유보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 자체 분위기가 밝고 오케스트라가 빈 필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다 싶어 골랐다. 



다니엘레 가티, 빈 필 (2013년 잘츠부르크 실황)



우선 음악적으로 보면, 가티의 지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작품의 과거 명연들을 들으면서 늘 하던 생각이 희극치고는 음악이 밝은 척 하면서도 무겁다는 것이었는데 가티가 만들어내는 음향은 일단 그러한 무게감을 현저히 덜어낸 것이어서 좋았다. 이래야 희극다운 것이 아닐까? 


무게감은 덜어내고 투명함과 정교함이 부각되면서 바그너가 정성들여 세공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폭의 화폭에 압도당한 듯 감탄을 금할 수 없게된다. 음질도 좋고 빈 필의 노련한 연주덕택에 시종일관 기분 좋게 감상했다. 


가수들 중에서는 역시 타이틀 롤을 맡은 미카엘 폴레가 가장 인상적이다. 연출 특성상 노래 뿐만 아니라 판토마임같은 연기도 상당 부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정말 훌륭하게 해냈다. 그야말로 마이스터징거라고 부를만 하다. 나머지 가수들 모두 크게 아쉬운 구석 없이 이 작품에서 기대하는 배역의 수준에 잘 들어맞는 노래와 연기를 보여준다. 그 중에 개인적으로는 포그너역 게오르크 제펜펠트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상을 이야기하면서 음악과 무대를 구분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데, 그만큼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연출의 모든 부분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고 여전히 명쾌하지 못하고 군더더기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진진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노르웨이 출신의 연출가 슈테판 헤어하임의 무대인데, 광고글을 읽어보니 한스 작스의 백일몽으로 해석했다고 되어있다. 


딱히 그런 식으로 한정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대로 즐기기만 해도 충분하리라 생각되는데, 시기적으로는 대략 바그너가 활동하던 무렵 정도로 보면 되겠다.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황당하고 가사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동선의 연출 등 보는 내내 바그너의 음악만큼이나 정교하게 잘 짜여진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압권은 역시 2막 마지막 야밤의 대소동 장면으로, 고전 동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도 웃긴데(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개구리 왕자, 장화신은 고양이 등등),  이 모든 등장인물이 뒤엉켜 난잡하기 그지없는 광란의 밤을 연출한다. 황당한 블랙코미디 내지는 개그같은데 그것이 허접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훌륭하다. 그에 이어지는 야경꾼의 두 번째 노래가 이렇게 기가막히게 효과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역시 음반으로만 들을 때에는 느낄 수 없는 무대 연출의 힘이다.


앞서 살짝 언급한대로 연출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지는 않았고 여전히 사족이라고 생각되는 점도 있었지만 극적, 음악적, 시각적으로 즐기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연출에 대해서는 현지에서도 마냥 좋아하지는 않은 듯, 무대인사에서 연출자가 나오자 환호성과 동시에 야유가 터져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세 번 정도 나눠서 보기는 했어도 정말 간만에 마이스터징거 전곡을 기분좋게 감상했다. 한글자막도 있으니 더더욱 강추.


바그너라는 개인과 그의 음악을 사악하게 이용했던 세력과는 별개로 그의 음악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오랜만에 다시 들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울수가. 그 옛날 토스카니니가 잘츠부르크에서 이 작품을 연습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