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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그20, 21

by iMac 2017. 6. 20.


20곡 이정표 (Der Wegweiser)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나아가는 느낌의 음악. 보스트리지가 지적하고 있듯이, 맨 첫곡 '밤 인사'와 걸음걸이 같은 느낌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내용적으로는 겨울 나그네 이야기 전체가 어디론가 가고 있는 과정 속 이야기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곡은 길을 가다가 마주친 이정표에 대한 것으로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어디론가 계속 움직이는 느낌이 강하다.


다만, 가고는 있어도 마지막에 힘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곡 초반에는 다소나마 힘과 의지가 느껴졌지만 마지막의 힘없는 마무리에서는 체념한 듯하다. 이제, 이 대목에서 실제로 투병중이었던 슈베르트의 심정이 묻어난다.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은가? 


연구자들이 추측하건대, 25~26살 무렵 매독에 감염되어 투병이 시작되었으니 그로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년 정도였던 셈이다. 병세가 호전과 악화를 오가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슈베르트가 작곡한 음악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그 고통스러운 와중에 남겨 놓은 작품들의 수와 높은 수준을 생각하면 그의 요절이 더더욱 아쉽다.


이 장에서는 슈베르트의 투병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짧지만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페니실린이 개발되기 전의 치료법들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 그 효과가 의심스러운 방식들이다. 슈베르트가 이렇게 된 것은 방탕한 친구 쇼버(Franz von Schober, 1796~1882)와 어울려 다니다가 병을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쇼버는 슈베르트가 숨을 거두던 1828년 11월 무렵에는 병이 옮을까봐 슈베르트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방탕하게 지내며 친구가 요절하게 된 환경을 제공하고도 쇼버는 80이 넘게 장수했으니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다. 세상일이 다 이런 식이란 말인가?


어릴 적 축약판으로 읽었던 미국작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 1789~1851)의 소설 '모히칸 족의 최후'(The Last of the Mohicans, 1826)의 작품 소개란에서 이 작품이 당대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고 말년의 슈베르트도 읽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슈베르트가 쇼버에게 쓴 1828년 11월 12일자 생애 마지막 편지에는 쿠퍼의 작품 중 본인이 아직 읽어보지 못한 다른 책이 있으면 구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투병 중에, 작곡 중에 틈틈이 머리를 식히려고 당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는 슈베르트의 모습. 이러한 일화를 통해 순간 슈베르트라는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가 살갑게 다가온다. 그 시대에 미국 소설가의 작품이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심지어 괴테마저도 쿠퍼의 작품들을 읽은 독서 기록을 남겨놓고 있을 정도였다고. 





마지막에 짤막히 슈베르트의 마지막 순간인 1828년 11월의 일정이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11월 14일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4번 c#단조 op.131(1826)을 듣고 너무도 기쁘고 흥분해서 친구들이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간만에 이 곡을 들어보는데, 특히 1악장을(Adagio ma non troppo e molto espressivo)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겨울 나그네의 먹먹한 분위기가 평온한 초월의 경지로 옮아간 듯 자연스럽게 들린다. 정말, 뭉클해지는 순간.


그리고, 닷새 후인 11월 19일 오후 3시 슈베르트가 죽었다.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들은 귀가 거의 멀어서 온전히 정적의 상태에 있던 말년의 베토벤이 형식은 물론, 세상의 이목 또한 완전히 초월한 음악적 자유 속에서 고고한 경지에 도달하여 써내려간 최후의 걸작들인데, 이 곡은 전체 7악장의 자유로운 모음곡 같은 구성에 모든 악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서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이 걸작을 들으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슈베르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랜만에 꺼내든 린지 사중주단의 연주. 린지의 신녹음인데 언젠가는 살 수 있겠지 하다가 세 장 밖에 사지 못하고 영영 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애플뮤직을 검색해보니 5집부터 9집까지만 올라와 있다. 1부터 4까지도 언젠가는 올라올까?



21곡 여인숙 (Das Wirtshaus)


여인숙의 음악은 다분히 찬가풍이다. 처음 들을 때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귀에 익은 선율 진행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사의 내용은 대놓고 장례식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경건한 장송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지칠대로 지친 몸을 끌고 들른 여인숙. 하지만 이곳에서도 안식은 찾을 수 없다. 쓰러질 듯 허약한 몸을 끌고 계속 가는 수 밖에 없음을 토해내는 노래. 


'여인숙'에서 새벽 두 세시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던 슈베르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토록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던 그가 이제는 죽음을 목전에 둔 장소인 여인숙을 노래하는 것이다.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슈베르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