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beethoven

멩겔베르크 - 베토벤 교향곡 전집 (Philips) 1940

by iMac 2009. 1. 6.

베토벤 교향곡 전집 : 멩겔베르크 /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1940, Live) 5CD


이 음반은 도대체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일일이 구입경위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랜동안 CD장에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었는데 정말 제대로된 감상은 최근 며칠간이 처음인 것 같다. 
일단은... 멩겔베르크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닥 좋지 않았다는 점을 꼽아야겠다. 옛날 모노럴 시대의 녹음이라면 역시 푸르트벵글러나 토스카니니에 열광하는 것이 전부이니까. 더더군다나 멩겔베르크는 템포를 마구 주물러대는 스타일이라고 오명을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푸르트벵글러는 상대적으로 훨씬 치밀하고 보다 주술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결국, 사다놓고 잘 듣지도 않았다는 것인데 이렇게 푸대접을 할 바에는 나 자신이 이걸 처음 살 때에는 정말 무슨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한때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열심히 모을 무렵 유명 지휘자들의 것은 하나씩 다 모으려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다.

이 세트는 현재 내가 보유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는 바인가르트너(EMI)의 것 이후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40년 4월~11월의 실황기록이라고 되어 있고 이 세트는 이탈리아 필립스사에서 멩겔베르크 서거 50주년 기념 한정판이라는 타이틀로 2001년에 발매한 것이다. 구성은 대단히 썰렁해서 음반은 종이 낱장 케이스에 담겨 있고 내지에는 악장별 트랙시간도 나오지 않고 해설은 분명 당시 콘서트헤보우의 상임지휘자였던 샤이가 멩겔베르크의 해석에 대해 대담을 나누는 내용으로 짐작되는데 모두 이탈리아어로만 되어 있어서 그림의 떡이다. 50주년 기념 에디션치고는 상당히 조악한 구성인데 이게 오늘날 멩겔베르크의 위상인 듯 싶다. 음반이 나온 것 만으로도 용하다는...

아무튼, 제대로 들어본 결론은 놀랍도록 훌륭한 연주들이라는 것이다. 여태 이걸 왜 안들었을까... 라는 생각. 곧이어 멩겔베르크의 다른 연주들도 구해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이런 식인 것 같다. 뒤늦게 찾기 시작하고 보면 늘 음반이 없다. --;

말그대로 뜨거운 열기로 꽉 들어찬 다이나믹한 울림인데 예상외로 템포도 그다지 느린 편이 아니다. 물론 중간중간 쓸데없이 주물러대며 멋부리는 모습들도 보이긴 하지만 - 쌩뚱맞은 템포 루바토, 현의 포르타멘토 등등 - 대부분의 경우 그다지 과다하게 남발하는 않았고 (9번의 피날레를 제외하면) 내 생각에는 베토벤에 대해서만큼은 이러한 모습을 많이 자제한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5번 교향곡은 이 작품 연주사에 하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중후장대하며 격렬한 움직임도 갖추고 있고 시원스런 박력까지.. 확실히 밀도가 짙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숨막힐 것 같은 푸르트벵글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시원시원하게 들린다. 콘서트헤보우의 뛰어난 합주력도 만만치 않다. 전체적인 밸런스도 대단히 훌륭해서 현과 관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인상적이다. 

녹음상태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양호한 편이나 상태가 다소 들쑥날쑥이다. 3번의 녹음이 가장 처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인데 다행히 나머지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이 전집에서 문제라면 3번의 녹음이 좋지 못하다는 것과 그 유명한 9번의 변태적인 피날레일 것이다. 시종일관 전투적인 억양이 참 독특한데 마지막의 그 장대한(?) 종지부는 정말... 독보적이다.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그 대목을 리타르단도로 처리한 것은 말그대로 언어도단이지만, 나름 재밌기도 하다. 나름대로, 아니 정말로 소중한 기록인 셈이다. 이런 녹음은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변태적이든 아니든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임에는 분명하다.

결론. 토스카니니와의 대화 운운하면서 너무 부당하게 잊혀진 거장이라는 생각이다. 토스카니니를 추켜 세우기 위해 멩겔베르크를 부당한게 깎아내린 셈인데 토스카니니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그런 식의 비유는 지양했으면 싶다. 

바인가르트너(EMI)가 빈 풍의 우아하고 단정한 고전적 아름다움의 베토벤을 들려준다면 멩겔베르크는 훨씬 굵은 선으로 호방하고 남성적이며 전투적인 이미지로 구축한 솔직한 베토벤상이다. 이렇게만 묘사하면 단순히 마초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으나 그의 이러한 해석에 빼어나기 그지없는 콘서트헤보우의 합주력이 더해지면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멋진 결과물로 승화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해석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장을 기록하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빌렘 멩겔베르크 (1871~1951)


* 말러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말러의 교향곡을 정력적으로 소개했으며 R.슈트라우스로부터는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헌정받기까지 했고 그 무엇보다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1895~1945년간 무려 50년동안 지휘하며 당대 최고의 오케스트라중 하나로 키워냈던 이 거장도 나치 점령기간중의 활동 때문에 6년간 활동정지 처분을 받고 결국 해금을 몇달 앞두고 망명지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후의 보다 좋은 녹음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 암울한 정치현실에 잘못 엮여들어간 위대한 예술가의 쓸쓸한 마지막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