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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libro

마농 레스코

by iMac 2009. 1. 29.

아베 프레보 (1673~1763)

오페라를 감상하는 입장에서 마농 레스코는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기는 좀 뭣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이 있는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여러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만들긴 했겠지만 결국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작품은 마스네와 푸치니의 두 종류. 그래도 같은 원작의 오페라가 두 종류나 살아 남은 것도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마스네이든 푸치니든 어느쪽도 진지하게 감상해본적은 없었고 단편적으로 훑어본 정도였는데 바로 앞에 포스팅한 메트 실황 DVD를 보고나서 푸치니와 마스네의 두 작품 모두를 꼼꼼하게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곡음반은 이전부터 한쪽 구석에서 잠자고 있었으니 꺼내 듣기만 하면 되고 DVD도 양쪽 모두 갖추어졌으니 준비는 다 된 셈이다. 

본격적인 오페라 연구에 앞서 최소한 이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라면 원작도 읽어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스네와 푸치니의 작품은 같은 원작으로 만든 오페라이지만 각색의 과정에서 상당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원작에서 어느 부분을 선택했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군다나 책 자체만으로도 이미 연애소설의 고전중의 고전이 아니던가? 

이 작품의 원제목은 '슈발리에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1731)인데.. 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 전개도 상당히 속도감이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빨리 다 읽을 수 가 있다. 프레보가 34세에 출판했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을 쓴 것을 보면 그 나이에 이미 상당히 기구하고도 다양한 인생경험을 한 것 같다. 아무튼 이 작품 전반에 걸쳐 있는 끈적하고 격정적인 분위기는 그 시대 작품의 것으로는 정말 놀라운 것으로서 당시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튼, 다 읽고 난 소감은 원작이 품고 있는 격정에 비하면 마스네와 푸치니의 오페라는 솔직히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왜 그토록 데 그리외는 마농과 함께 파멸의 길로 줄달음질쳐 갔단 말인가... 상당히 오래된 고전 소설이라 현대적인 노골적인 묘사는 없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절묘한 감정의 출렁임이 정말 기묘하게 읽는 내내 관능적인 아찔한 향기를 뿜어낸다. 

또한 친구인 티베르주와의 논쟁장면은 당시 사회적 기준에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절묘하게 글을 전개하고 있음이 느껴지는데 이 장면만으로도 이 작품은 단순히 말초적인 자극을 위한 연애 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순수한 감정 그 자체를 묘사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라 할 것이며 바로 그것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이성이 마비되어 버리는 여인에 대한 열정, 성실하기 그지없는 친구의 우정, 사랑스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타는 부정... 여기에 한없이 흔들거리는 여인의 마음과 지극히 불성실한 도박꾼들의 삶... 대단히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기 그지없다. 앞서도 말했듯 표현 자체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기에 절제되어 있으나 그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놀랍도록 솔직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재미있는 점은, 내가 읽은 책의 해설에 나오듯 마농의 외모에 대해서는 별다른 묘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며 덕분에 상세한 묘사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무리가 좀 썰렁하기는 한데, 이 작품이 원래는 연작소설중의 한 편에 해당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다른 이야기들은 다 잊혀지고 일곱번째에 해당하는 이 작품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언제나 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오늘날까지 인정받으며 전해지는 고전이라고 하는 작품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다시금 실감했다.

*원 제목에 대해서는.. 내가 읽은 책속의 표기도 그렇게 되어 있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기사 데 그리외..' 보다는 '슈발리에 데 그리외..' 쪽이 낫다고 본다. 책을 읽어보면, '슈발리에'란 '기사'라는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주인공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애칭'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스러운 태도로 '슈발리에야...'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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