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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libro

드리나 강의 다리

by iMac 2008. 11. 1.


이보 안드리치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인데, 발칸의 호메로스라고까지 불리우며 196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유고슬라비아의 작가이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사라져 버린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세르비아계 작가로 분류해야 할 듯 싶다.

드리나 강의 다리는 그의 대표작으로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살던 비셰그라드를 관통하는 드리나 강에 건설된 다리를 중심으로 하는 400여년간의 이야기이다. 딱히 주인공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당연히 없고 그 오랜 세월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드리나 강의 다리가 서 있는 것이다. 

정말 방대한 내용인데 왜 작가가 발칸의 호메로스라고 불리우는지 수긍이 간다. 읽는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지닌 사람들 각각에 대한 철저하고도 객관적인 묘사이다. 최근 한동안 우리 사회에도 '종교적 편향성' 운운하며 시끄러웠는데 어린 시절 바로 그 마을에서 지낸 바 있는 작가는 세르비아 인이든, 터키인이든, 유태인이든 드리나 강변에 살던 그들 모두에 대해서 조금도 편견이나 치우침 없이 애정을 가지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발칸반도 특유의 역사적인 상황상 갈등은 항시 존재했으나, 인종이 어떠하든 종교가 어떠하든 그들 모두 드리나 강의 다리를 건너다닌 너무나 친숙한 이웃들인 것이다. 각각의 종교와 인종에 따른 저마다의 독특한 생활문화에 대한 자연스럽고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장면장면에 따라 작가는 세르비아인이 되기도 하고 터키계 무슬림이 되기도 하고 유태인이 되기도 하며 스쳐지나가는 이방인이 되기도 한다. 

다리의 건설에서부터 1914년의 비극적인 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을 지치지도 않고 써내려가고 있는데 특히나 마지막 대단원은 정말 압권이었다. 속으로 내심 이런 식의 이야기 진행으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까 걱정도 했었지만 역시나 그러한 기우는 대작가에 대한 결례였던 셈이다. 

이 기나길고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다양한 감상을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가장 간결하고 인상깊은 문구만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이처럼 단순명쾌하게 진리를 담고 있는 문장도 흔치 않다. 최근 직장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을 경험하면서 아래의 문구가 더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21장 - '모든 인간의 가장 슬프고도 비극적인 약점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한 치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데 있었다. 인간은 재주도 많고 기술과 지식도 많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능력만은 도무지 없었다.'

* 유고어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물론 내용을 읽어보면 번역자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들고 약간씩 아쉬움도 없지는 않지만 이정도가 어디냐 싶다. 

* 이 기회에 드리나 강의 다리에 대해서 찾아보니 정말 안타깝게도 1992년 세르비아계에 의해 그 마을에서 보스니아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인종청소가 벌어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규모 학살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소설속의 바로 그 마을인 비셰그라드, 그리고 바로 그 다리위에서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감정은 마치 내가 잘 아는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그러한 비극이 닥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설속에서 간간이 묘사된 발칸반도 특유의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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