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해리스의 히스토리 팩션들은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막상 돈 주고 사기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정통 역사서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런류의 소설들은 - 다빈치 코드가 그러했듯 - 한번 읽고 나면 그걸로 거의 끝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의 임페리움은 정말 심사숙고 끝에 집어들었다. 지금까지 그가 써왔던 팩션들과는 조금은 다르지 않은가 싶기도 한 것이 나치가 2차대전에서 승전했다는 가정하에 전개되는 그런 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존인물이었던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말 열심히 보았던 HBO의 드라마 ROME이 생각나기도 한데 이 책도 그 드라마와 비슷하다. 역사적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그 이면에 진행되는 배경을 작가 나름의 해석으로 채워넣고 있는 방식이다.
일단은 대단히 만족스럽게 읽었는데, 역사서에서 큰 줄거리로 서술되던 내용들이 뼈대만 제시하는 모양새라면 이 작품은 거기에 작가 나름의 살과 치장을 덧붙여서 살아 숨쉬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매력이다. 하룻동안 꼼짝도 않고 앉아서 다 읽어 버렸는데 작가의 이야기 전개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또한 독특한 점이 키케로의 비서인 노예 티로를 화자로 해서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인데 그동안 키케로가 저평가되어 온 점을 생각하면 의외이기도 하지만 돌이켜 보면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이자 변호사였던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의 소재로도 차고 넘치는 인물임에 틀림없으며 실제로 책의 내용도 그러하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닳도록 묘사해온 카이사르 보다는 흥미로운 요소를 잔뜩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홀대받아온 키케로야말로 작가의 상상력과 실력이 발휘될 여지가 풍부한 대상이리라. 그러한 점에서 작가의 영리함이 빛을 발하고 있으며 또한 로마시대를 오늘날 눈앞에 펼쳐진 현실처럼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방대한 지식이 놀랍기 그지없다.
번역은 내용 파악에 큰 무리가 없는 무난한 수준이다. 조금씩 아슬아슬한 부분들이 엿보이기는 하는데, 옮긴이 스스로가 고백하고 있듯이 로마사에 대한 상식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전문적인 소설작품은 단순히 영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문화전반에 대한 소양이 필수적인 바, 적어도 이정도 내용이라면 전문 역사학자의 감수는 거쳤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의 매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다. 아무튼, 전체가 3부작으로 진행다고 하니 나머지 두 편이 정말 기대된다. 로마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