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3기 #2 - 멩겔베르크 / 콘서트헤보우

by iMac 2017. 2. 22.

명불허전


이 음반은 꽤 오래 전에 이미 블로그에 감상을 올린 적이 있다. 찾아보니 무려 2009년의 글이었다. 지금 읽어보니 뭔가 지금의 나와는 좀 다른 어떤 사람의 생각처럼 보인다. 꽤 길게도 썼는데, 지금 보면 뭔가 묘하게 설익은 맛이랄까. 옛날 사진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고, 아무튼 재미있다. (  2009/01/06 - [Classical Music/beethoven] - 멩겔베르크 - 베토벤 교향곡 전집 (Philips) 1940 )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으며 생각해 봐도 여전히 이 음반, 명불허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빌렘 멩겔베르크 / 콘서트헤보우 (1940년 실황)



1940년


빌렘 멩겔베르크는 (Willem Mengelberg, 1871~1951) 그 존재 자체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단 초창기인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자리를 지켰으니 제왕이나 다름없다. 그러했던 제왕의 마지막이 초라하게 폐위 당하는 모양새였으니 드라마틱하면서 쓸쓸한 마무리였다. 


음반에는 1940년 4월부터 11월 사이 암스테르담에서의 실황이라고 적혀있다. 그 기간이야말로 세상이 또 한번 뒤집어지던 시기였으니, 그 사이에 이루어진 기록이라는 점에서 정말 흥미진진하다. 4월만 해도 서부유럽의 전선은 애매한 교착상태였다가 5월부터 시작된 독일의 서유럽 침공으로 불과 한달만인 6월에 프랑스가 항복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 네덜란드를 포함한 서부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하고 조국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상황. 이런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연주회는 열린 것이 용하지만, 독일과의 합병이 성공적임을 선전하기에 이런 문화행사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이러한 적극적인 협력으로 인해 멩겔베르크는 전후 조국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초창기 말러 지지자였던 그가 유태인을 탄압한 나치를 지지한 것 또한 모순 덩어리이다. 예술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모순된 기질이 있나 보다.




예전 글을 읽어 보니 표현이 뭔가 설익은 듯 해도 음악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콘서트헤보우 홀의 넉넉한 울림이 잘 담겨져 있는 점이 우선 새삼 놀라운데, 여유로운 공간감 속에 묵직하고 견실한 울림이 아주 실하다. 여전히 3번 녹음이 다른 번호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점은 옥의 티. 


토스카니니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이 확 느껴진다.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이렇게도 다른 것이란 말인가? 한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밀어붙이는 토스카니니에 비하면 멩겔베르크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음향은 전체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넉넉함이 느껴진다. 생략도 더 많아서 어지간하면 다들 하는 5번 1악장 제시부 반복도 생략하고 있다. 3번 3악장도 3:55 정도로 싹뚝 잘랐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압권은 역시 9번 마지막 악장의 마무리. 아무리 반복해서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쇼킹함인데, 이런 점에서 토스카니니와 분명하게 대척점을 이룬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도록 맹렬하게 피날레를 향해 질주하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리타르단도라니. 지휘자도 지휘자지만 이걸 잘 따라와 준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나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주가 끝나고 터져나오는 박수와 환호성. 과연 당시 객석의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문득 음악 이외의 호기심이 떠오른다. 이래저래 이 음반, 명불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