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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제5기 #6 - 카를 슈리히트

by iMac 2017. 4. 8.


프랑스산 베토벤


앞서 '미국산 베토벤'이라고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프랑스산'이다. 베토벤 교향곡이라고 하면 전형적인 독일 음악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긴 하지만, 베토벤 음악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생각할 때 이런 식으로 특정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엄청난 실례라는 생각도 든다. ( 2017/03/25 - [Classical Music/beethoven] - 베토벤 교향곡 제5기 #3 - 미국산 베토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연주한 베토벤은 썩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카라얀이 필하모니아를 지휘한 녹음은 '영국산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단 영국 까지는 어딘지 모르게 유럽에 속하며 어느 정도 게르만 문화권과 가깝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만 하다. 그럼 프랑스는?


카를 슈리히트,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 (1957~58)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


이 악단의 정식 명칭은 제대로 발음하기도 어렵고, 위에 적은 번역이 제대로인지도 의심스럽게 만든다. (orchestre de la société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Paris, 1828~1967) 이 단체는 182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베토벤 교향곡 연주사에 있어 나름 중요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선구적인 곳이다. 


초창기 시절, 이곳은 당시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편성과 잘 연마된 실력있는 앙상블로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한 단체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아브넥이 지휘했던 당시 베토벤 교향곡 연주 시리즈는 베를리오즈나 바그너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도 했다. 베를리오즈가 자신의 스승을 모시고 가서 5번 교향곡을 함께 감상하고 나오는 길에 그토록 베토벤을 싫어하던 스승이 흥분으로 정신없어 하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내 기억에 이 악단은 비록 프랑스 악단이지만, 본격적인 베토벤 교향곡 연주사의 첫 시작을 장식한 곳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럼, 그 때로부터 거의 100년 넘게 지난 1950년대 그들의 연주는 어떠했을까?



카를 슈리히트


독일 지휘자 카를 슈리히트(Carl Schuricht, 1880~1967)가 남긴 유일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 프랑스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이라니 첫 만남은 정말로 의외였다. 슈리히트의 베토벤 녹음은 이것 외에도 찾아보면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이 녹음은 일단 프랑스 악단 특유의 전반적으로 밝은 음색과 슈리히트의 담백한 접근이 잘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하겠다. 


예전에 EMI에서 나온 이 세트에는 이것 외에 빈 필과 녹음한 브루크너의 3, 8, 9번 교향곡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실 슈리히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브루크너 쪽이다. 우스갯 소리로 100미터 미인이라는 표현이나 3초~ OO라는 식의 표현이 있는데, 현재까지 내가 느끼는 슈리히트의 베토벤 녹음이 그러하다. 


얼핏 들으면 대단히 멋지다. 적당한 잔향감 속에 적당한 긴장감으로 울려 퍼지는 베토벤. 50년대 연주이지만 감정과다와는 정반대인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연주. 음악 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적 경로를 통해 프랑스인들의 기질을 보면서 의외로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는데, 그 옛날 아브넥이 당대 최초로 제대로 된 베토벤 교향곡 연주를 선보였던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연주에서 좋았던 건 딱 그 지점까지이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여기저기 앙상블이 견고하지 못하고 연주력이 당대의 다른 연주들과 비교하면 - 토스카니니의 NBC, 푸르트벵글러의 베를린/ 빈 필, 카라얀의 필하모니아 등등 - 격차가 많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꺼내들으면 앞서 언급한 장점 덕에 살짝 듣기에 나쁘지는 않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 역시나 오래 듣고 있지는 못한다. 전체적인 외관을 덮고 있는 분위기 자체는 매력적이나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불안불안해서 손이 자주 가지 않는다.


슈리히트의 대표 명반이었던 빈필과의 브루크너 8, 9번에서 느꼈던 담백하고 스피디한 진행을 베토벤 녹음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무척 반가운 녹음이긴 하나, 악단의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마지막 9번은 스테레오로 녹음되었는데 역시 나쁘지 않지만 어딘지 마지막으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다. 아닌게 아니라,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는 오랜 세월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이 무렵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해체되어버리고 오늘날의 파리 오케스트라로 재탄생하게 된다. 아무튼, 내가 꿈꾸던 프랑스인들이 만들어낸 멋진 베토벤은 그 옛날 아브네크의 이야기에만 존재하는 것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