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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돈 후안 - 켐페

by iMac 2008. 10. 5.

R.슈트라우스 - 루돌프 켐페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EMI) - 1970



한동안 슈트라우스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활활 불타올라서 그의 작품을 이것저것 열심히 꺼내들었는데, 역시 그의 천재적인 숨결을 접하고자 한다면 단연 '돈 후안'을 꼽아야 할 것이다. 

25살의 청년이 이토록 놀라운 기교를 구사하다니 이건 가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신선함과 매력으로 가득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종횡으로 구사하는 현란한 관현악의 향연 그 자체만으로도 놀랍지만 음악 그 자체로도 설득력이 만점이다. 

슈트라우스의 관현악작품은 오늘날에는 말러에 밀려서 신보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지만 80년대 이전까지 건재했던 옛 거장 지휘자들의 녹음에서는 빠지지 않는 필수 레퍼터리였다. 그 중에서도 돈 후안은 워낙에 인기곡이다 보니 정말 많은 지휘자들의 녹음이 존재한다. 

그 많고 많은 녹음들 가운데에서 꼭 하나만 꼽자면, 지난 몇 달간 들어본 결론은 켐페의 녹음이다. 슈트라우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경쟁자가 정말 많았지만 이 곡 하나만큼은 주저없이 켐페의 연주를 추천한다. 그 외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연주들을 대충 꼽아보면..

푸르트벵글러 / 빈 필(EMI)
뵘 /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베를린 필(DG)
카라얀 / 빈 필, 베를린 필 2회(Decca, DG)
숄티 / 시카고 심포니(Decca) 
아바도 / 베를린 필(Sony) 
진만 / 취리히 톤 할레 오케스트라(BMG)

대략 이정도.. 이 중에서 카라얀의 80년대 디지털녹음을 통해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기에 추억의 명반인데 오늘에 와서 켐페를 꼽게 된 것은 한 마디로 '가장 빠르게' 연주했기 때문이다. 

16분 9초로 전곡을 주파하고 있는데 가장 빠른 쾌속이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격정과 선율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풀어헤쳐놓은 정말 명연중의 명연이다. 특히나 처음 도입부 팀파니의 연타 이후 연결되는 악구의 단호한 처리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이걸 듣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들 너무 늘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오케스트라도 정말 훌륭한데 과연 생전의 슈트라우스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악단 답다. 일체의 허식없이 작품의 핵심에 육박한 연주로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빠른 템포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자면 슈트라우스 본인이 지휘도 활발히 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작자연 녹음이 남아 있고 그 기록들을 훑어보면 슈트라우스 본인이 노년에 지휘한 기록도 16분대이며 그보다 더 젊었을 적인 20년대 녹음에서는 무려 15분대로 지휘했었다. 이것으로 어느정도는 작곡가 본인의 생각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궁금하시면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검색해 보시라. 30초간 샘플감상이 되고 트랙시간도 확인이 된다.) 작품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과장이란 필요가 없어보인다.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은 곡이기에 악보대로만 연주하기에도 사실 벅차고 정말 악보대로만 연주한다면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달성되는 것이리라. 

작곡자 본인의 연주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하는 지침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슈트라우스 본인이 탁월한 지휘자이기도 했기에 그의 연주가 어느정도는 충분히 참고의 대상이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슈트라우스 본인의 연주에 가장 근접한 것이 켐페의 연주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 보다 더 훌륭한 연주일런지도 모른다. 

그 외에 다른 후보들은...

아바도의 베를린필 실황은 희한하게 첫곡인 이곡의 녹음이 다른 곡들보다 울림이 부족하고 메마른 음향을 들려줘서 재미가 덜하다. 16분 41초로 끊고 있고 해석도 나름대로 훌륭하긴 하지만 조금 아쉽다. 

숄티는 17분 29초인데 그 답게 칼날같은 다이내믹이 무척 흥미롭다. 잘만했으면 이것도 켐페 못지 않은 애청반이 될 수 있었으련만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갑자기 템포를 툭 떨어뜨리면서 신파조 연출을 시도하는 바람에 아쉽게 되어버렸다. 그 대목은 그런 과장이 없어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대목이라구! 

카라얀은 예전엔 그토록 닳도록 들으면서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좀 무거운 느낌이다. 초창기 빈 필과의 것은 조금 거친 듯 하고 베를린 필과의 첫번째는 좀 무지막지하고 마지막은 여전히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훌륭한 연주이긴하지만 확실히 좀 무겁다(18분 13초). 그래도 무난한 추천임에는 틀림없다. 억양은 분명하며 프레이징도 자연스럽고 그 특유의 현란한 색채감은 압권이다. 

뵘의 두 녹음은 모두 17분대로서 무난한 연주들이다. 견실하기 그지없는 연주들로서 역시 추천할만 하다. 그래도 이 곡만큼은 좀더 상큼한 맛이 필요한 것 같다. 

진만의 연주는 나중에 따로 언급해야겠지만.. 진만의 슈트라우스 전집은 덜 유명한 곡들의 연주가 더 멋진 것이 아이러니다. 

푸르트벵글러와 빈 필의 연주는 예상대로 18분 45초의 느릿한, 아니 웅장한 연주인데 나름 압도적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위해서는 그닥 추천하고 싶은 연주가 아니다. 

켐페가 지휘한 슈트라우스 관현악 작품집도 있는데(9CD) 딱 한장만 원한다면 낱장으로 발매된 위 음반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함께 수록된 곡들도 모두 훌륭한 연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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