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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취리히 톤 할레 오케스트라 (2018.11.3.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by iMac 2018. 11. 4.


포스팅할 것은 많은데 어딘지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가운데 시간은 훌쩍 가버리고 있다. 일단, 어제 다녀온 연주회 후기. 기억의 잔상이 식기 전에 얼른 올려야 겠다.





취리히 톤 할레 오케스트라


취리히 톤 할레 오케스트라는 당시 오랜기간 블로그 슬럼프 상태였던지라 포스팅은 안했지만 2014년 4월 21일 예술의 전당 내한 연주회에 갔었다. 당시 프로그램은 연주회 전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으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중 '에어'를 박수없이 연주하고 이어서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 서곡, 바이올린 협주곡(기돈 크레머!), 인터미션 후 브람스 교향곡 제4번이 연주되었다.



당시가 진만의 오랜 임기 막바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월호의 강렬한 기억과 함께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연주회 였다. 


벌써 4년 전





데이빗 진만의 긴 임기(1995~2014) 동안 활발한 레코딩과 함께 악단의 인지도가 급성장했었는데 후임은 젊은 지휘자 리오넬 브랑기에를 선임해서 의외였던걸로 기억한다. 그 후 기억속에서 사라졌는데, 찾아보니 파보 예르비가 2019년 시즌부터 상임 지휘자가 된 모양이다. 


토요일 오후 5시에 열리는 연주회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연주회 가기 정말 부담없는 시간대. 밝은 시간에 주변 풍경을 찍어 보니 색다르다. 토요일 오후 붉게 물든 가을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북적인다. 








라흐마니노프


이 날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과 말러 교향곡 제5번. 전반부 라흐마니노프는 조지아 출신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khatia buniatishvili, 1987~)가 협연. 


피아니스트나 지휘자 모두 인지도가 높은 데다 연주회 시간까지 좋아서인지 객석이 가득 차 보였다. 라흐마니노프의 이 작품은 실연에서 처음 듣는데 솔직히 말하면 딱히 큰 기대는 없었다. 


부니아티쉬빌리는 물론 피아노 잘 치고 대단히 매력적인 연주자임에는 틀림없고 예르비와 이미 체코 필의 반주로 라흐마니노프 2&3번 협주곡 음반을 소니에서 녹음한 바 있으니 지휘자와의 호흡도 걱정은 없을 터.





문제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그녀에 대해 딱히 팬심 같은 것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음반으로도 딱히 큰 인상은 없었고 또 다른 문제라면 내가 라흐마니노프를 그다지 즐겨 듣지 않는 것이 문제일수도 있겠다.(결론은 내가 문제인가?)


연주는 과연 평소 유투브 등에서 보던대로 열정적인 모습으로 난곡을 큰 실수 없이(실수가 없지는 않았지만) 무난히 잘 끝마쳤다. 워낙 어려운 곡이기에 이정도 치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것이긴 하다. 객석의 반응은 역시나 열광적.


좀 까다롭게 굴자면, 예술의 전당의 음향문제는 이제 포기했다 쳐도 3층 객석에서 듣기에 피아노 음량이 충분치 않았다. 자리의 문제일수도 있는데 3악장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는 오케스트라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으니 대략 난감. 





오케스트라는, 사실 진만이 지휘해서 유명해졌던 시절에도 이 오케스트라가 음색이 멋지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적당히 깔끔하고 투명한 음색? 어제 들은 음향은 몰개성적인 무채색인데다 진만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곳곳이 삐걱거리는 아슬아슬한 연주였다. 그래도 중요 포인트는 놓치지 않고 잘 마무리한 것은 전적으로 예르비 덕분인 듯.


예르비에 대해서는 종종 언급했듯이 음악이 가끔 정체되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라흐마니노프 해석도 비슷했다. 느릴 때는 너무 느리고 빨라지는 부분은 너무 빠르게 대략 훑고 지나가듯 넘어가버리는. 


피아니스트는 이 대곡을 치고도 앙코르를 두 곡이나 해줬다. 바흐와 리스트로 기억하는데 독주로 들으니 훨씬 돋보여서 듣기 좋았다.





말러



인터미션 후 프로그램은 말러의 교향곡 제5번. 키릴 페트렌코/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5번을 들었던 것이 벌써 작년의 일이었다니. 1년만에 이번에는 톤 할레의 연주로 듣게 되었다.


2017/09/16 - [Classical Music/concert] - 키릴 페트렌코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 (2017.9.13.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부에서의 연주를 듣고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는 기대감이 바닥으로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이 말러인데다 예르비에게 기대를 걸고 들어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종일관 불안하기는 여전했지만 희한하게도 작년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연주보다는 재미있게 들었다. 전체적으로 두텁고 밀도 높은 음향이었던 바이에른 보다는 상대적으로 허전하고(?) 투명한 취리히 쪽의 음향이 작품과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지휘자의 해석도 밀도 높은 흐름을 보여준 페트렌코 보다는 구조적인 투명함과 개별 악기의 부각에 신경 쓴 예르비 쪽이 더 효과적인 듯. 전체적인 완성도는 바이에른만 못하지만 듣는 재미는 취리히 쪽이 훨씬 나았던 아이러니한 상황. 다 듣고 나서도 뭔가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오케스트라는 지난 4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목관 앙상블이 수시로 삐그덕거리고 최초 트럼펫 독주는 큰 실수가 없을 뿐 음색적인 매력은 전혀 없고 결정적으로 제1바이올린이 아무 느낌이 없었다.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줘야 할 제1바이올린이 이토록 무덤덤하다니. 


3악장에서는 호른 솔로가 비올라 뒤편에 따로 설치된 단상으로 옮겨서 연주하도록 했는데, 연주도 좋았고 음향적으로도 좋았다. 연주가 끝나고 역시나 연주회장은 열광의 도가니.





연주회 끝나고 사인회는 예상대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지휘자, 피아니스트 모두 대단한 인기. 연주는 썩 그저 그랬지만 둘 다 매력적인 연주자라는 것은 충분히 인정할만 하다. 사인은 포기하고 사인회 풍경만 틈새로 보고 돌아왔다. 


아무튼, 다 듣고 난 느낌은 우리나라에 자주 오지는 않겠지만 취리히 톤 할레의 연주회는 굳이 또 가고 싶진 않았다. 물론 이것은 예술의 전당의 열악한 음향상태(다 듣고 나니 금관의 홍수 덕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도 무시 못하겠지만, 아직 포스팅하기 전이지만 9월말 빈에 가서 빈 슈타츠오퍼에서 편안하고 화사한 음향을 듣고 와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이날의 연주회의 이색적인(?) 광경들

전반부에서는 피아니스트가 1악장 끝나자마자 주저앉아서 피아노 의자 높이를 열심히 맞추었다. 리허설때랑 높이가 달라진 것일까? 아무튼 그런 모습은 처음 봄. 

4악 아다지에토 초반에 아래층 어딘가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잠깐 들렸다. 순간 아찔. 

5악장 후반 튜바 아저씨가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시더니 오른편으로 나가심. 잘 보지는 못했지만 오른편 출연자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신 듯. 무대 뒤에서 연주하는 것도 아니면서 연주 중에 단원이 걸어나가는 모습은 또 처음 봄. 잠시 한창 연주 중에 돌아오셔서 연주. 과연 무슨 볼일을 보고 오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