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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music note

12월 베스트 오페라 DVD!

by iMac 2008. 12. 23.
12월에 접한 오페라 DVD가운데 마음에 든 것 세 종류만 꼽아보았다. 나머지는 다른 기회에 이리저리 이야기할 지도 모르지만 여기 꼽은 세 종류는 정말 재미있었다. 


도니제티 - 돈 파스콸레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라면 돈 파스콸레이다. 옛날 19세기 오페라의 전성기에는 작곡가 혹은 프리마 돈나의 시대였다가 20세기에는 지휘자의 시대였고 이제는 분명 연출가의 시대인 것 같다. 온갖 기발한 연출이 횡행하는 가운데 정말 즐겁게 감상할 만한 연출이 드물어진 것 같은데 이 영상물의 연출가 다니엘 슬레이터는 정말정말 재미있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배경을 대충 30년대 파리로 설정한 것 같은데 볼거리로서도 충분하면서 평범하지도 않고 짜임새 있으며 아기자기하고... 한 마디로 시종일관 눈이 즐겁다. 음악과 줄거리에도 절묘하게 잘 맞아들어가고 있다. 긴 설명이 필요없다. 백문이 불여일견! 화질도 좋고 음향도 좋고..

음악은... 솔직히 이 작품은 도니제티의 다른 성공작들 같은 히트곡은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도 말년의 작품인지라 전체적으로 짜임새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타이틀 롤을 맡은 치오피는... 치오피의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 아주 쉽게 말해 허스키한 편이어서 내 취향에 딱 맞지는 않는다. 예쁘장한 미성은 아니라는 말씀. 그래도 좀 듣다보면 그럭저럭 적응이 되고 결정적으로 연기가 좋으니 그리 큰 불만은 없다. 알라이모가 구사하는 속사포 같은 스트레타도 재미있고.. 음악적으로도 불만은 없다. 이렇게 유쾌한 오페라 감상도 오랜만인 듯 싶다. 2007년 5월 제네바에서의 공연실황. 


R.슈트라우스 - 살로메



이거야말로 연출가의 오페라가 아닌가 싶다. 화제의 연출가 데이빗 맥비커의 화제작 살로메! 표지부터 누드와 유혈이 낭자한 것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슈트라우스의 교향시에 한창 재미를 붙이던 무렵엔 슈트라우스가 영웅의 생애 이후 교향시를 접어버린 것이 상당히 아쉬웠는데 요즘엔 말러의 교향곡들에게 확실히 밀려난 교향시들의 위상을 보면서 오페라로 전향한 것이 일종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교향시들과는 달리 오페라는 이렇듯 화제의 신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장의 DVD로 되어 있는데 두 번째에는 제작 다큐멘터리가 들어 있는데 그걸 보고 이정도 지명도의 연출가가 되는 것도 과연 보통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작품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이 지휘자 못지 않고 장면장면 연기지도 소품제작 무대 장치 설계 등등... 이번 연출의 컨셉에 대해서 맥비커는 파졸리니의 저 유명한 영화 '살로, 소돔 120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등장인물들의 복장에 대해서 이해가 갈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장교들의 복장 등등.. 

2층에 연회장이 있고 우측에 나선계단으로 1층으로 - 사실상의 지하실 - 연결되어 주 무대는 지하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하실의 또 다른 지하에는 세례 요한이 같혀 있는 것이고.. 

아무튼, 표지에서 보여주듯 마냥 선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출의 선정성을 탓하기 전에 작품 자체의 기발함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기대 이상으로 맥비커의 연출은 극적 호소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멋진 것이었다. 참신하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철저히 극에 밀착되어 있어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곱 베일의 춤 장면을 일곱 개의 방을 통과하는 것으로 연출한 것도 대단히 참신하면서 효과적인 아이디어였다. 

모두들 열연이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수준높은 공연임에는 틀림없으나... 살로메역의 나디아 미카엘은 고역이 시원스럽게 트이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좀 답답하다. 물론 소녀의 목소리를 지닌 이졸데를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 것이다. 토머스 모저는 언제 보아도 이 양반이 테너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답답한 목소리인데 헤롯역은 그럭저럭.. 요한 역의 미카엘 폴레도 열연이기는 하나 묘하게 답답하게 들린다. 음향 탓인지... 지휘를 맡은 필립 조르당은 상쾌한 리드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말 그대로 노련한 맛은 기대하기 힘들다. 요즘 지휘자들의 음향이 다들 비슷해져 가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모르겠다. 끈끈한 세기말적 퇴폐미와는 거리가 멀다. 라이트 모티브를 다루는 솜씨도 어딘지 허전해서 또렷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2008년 3월 런던 로열 오페라 공연실황.


R.슈트라우스 - 장미의 기사



유혈이 낭자하고 근친상간과 시체 애호증에 은근한 동성애 코드등 온갖 변태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살로메 공연을 보고 나서 장미의 기사를 보게 되면 우선 이게 같은 작곡가의 작품인가 싶고 왠지 좀 정상적인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한 안도감마저 든다. 

2007년 11월 25일 도쿄 NHK홀에 있었던 드레스덴 국립 가극장의 공연 실황. 이런 경우는 확실히 일본이 부러운 것은 사실. 이 공연은 2차대전 직후쯤으로 배경을 바꾼 것 외에는 크게 특이한 연출은 시도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인물의 동선등에는 현대적인 감각을 많이 접목시켜서 세련됨을 유지하고 있다. 시각적인 만족감은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막이 가장 만족스러웠는데 마르샬린과 옥타비안을 맡은 슈바네빌름스와 폰둥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외모도 그럴 듯 한데 사실 실제 오페라 공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가수의 용모와 극중 인물의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것으로 시각적인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뚱뚱한 여가수 때문에 비극적인 장면에서 폭소를 유발하며 초연에서 대실패한 라 트라비아타를 생각해 보라! 

이들 두 가수는 용모 뿐만 아니라 가창도 아주 훌륭해서 지금껏 보아온 장미의 기사 영상물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슈바네빌름스는 예전부터 슈트라우스 가수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보니 별로 힘들이지 않고 편안한 모습으로 아주 아름다운 발성을 이끌어내는 모습에 정말 놀랐다. 

조피역을 일본인 소프라노 마키 모리가 맡은 것이 유감이긴 한데 가창과 외모는 일단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일본인 특유의 돌출한 앞니만 빼고 말이다. 그것 때문에 딕션을 구사할 때에도 입모양이 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다행이다 싶다. 

쿠르트 리들의 옥스남작은 하이팅크와의 전곡판(EMI)에서와 그리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여전히 딱딱.. 하지만 영상물은 시각적인 연기가 결합하니 그런대로 아쉬움이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고 보면 옥스 남작을 제대로 멋지게 소화해낸 가수도 드문 것 같다. 정말로 어려운 역할이다. 

지휘를 맡은 파비오 루이지는... 일전에 장엄 미사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는데 그 후로 들어 본 음반들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는데 이 공연만큼은 제법 훌륭하게 다듬고 있다. 실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조탁이 인상적이다. 

화질, 음질, 공연의 수준, 연출등등 종합적인 면을 고려할 때 가장 추천할만한 장미의 기사 타이틀이 아닌가 싶다. 여기 소개한 DVD모두가 와이드 스크린에 최신 음향을 수록하고 있어서 보고 듣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