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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루돌프 부흐빈더 피아노 리사이틀 (2019.5.11.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by iMac 2019. 5. 12.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며 어찌 어찌 4월이 흘러갔다. 환절기 컨디션 난조와 사무실내 업무 조정 등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며 블로그에 글을 올릴 마음의 여유도 줄어들었다.


생각해 보면 바빠서 글을 못 올렸다는 것도 돌이켜 보면 핑계인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습관 비슷해서 쓰다 보면 잘 써지는데 안 쓰다보면 또 영영 써지지 않는다. 


아무튼, 지난 3월에 이어 이번에도 인천 아트센터에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루돌프 부흐빈더. 오롯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된 프로그램. 



루돌프 부흐빈더 피아노 리사이틀루돌프 부흐빈더 피아노 리사이틀



아트센터 인천


지난 번 연주회 때는 저녁 해질 무렵이었지만, 이번에는 한낮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날씨도 비교적 쾌청해서 다행이었다. 낮에 보니 풍경이 또 다르고 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더 잘 보인다. 


2019/03/30 - [Classical Music/concert] - 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 (2019.3.26.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국내 연주회장을 전부 다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최신 시설인데다 이정도 쾌적한 환경 속에 연주회 전용으로 지어진 공간으로는 가장 멋진 곳이지 싶다. 


이번에 앉은 좌석은 시야가 살짝 애매하긴 했지만, 피아니스트의 연주 모습을 보는데는 지장은 없었고 음향도 훌륭해서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는 모두 피아노 독주만 들어봤는데 앞으로 좀 더 다양한 편성의 연주를 연주회장 이곳 저곳의 좌석에서 들어보고 싶다. 




루돌프 부흐빈더


Rudolf Buchbinder(1946~)는 솔직히, 적어도 나에게는, 종종 연주를 찾아 듣게 되는 그런 유형의 피아니스트는 아니다. 음반을 통해 음악을 듣게 되는 현실상, 일단 음반이 그리 많지 않고,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연주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개성이 딱히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도 부흐빈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좀 더 자주 접하게 된 것은 역시 케이블 TV 클래시카 채널의 영상물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빈 필과 함께 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영상은 단연 최고.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인 해석과 빈 필의 훌륭한 연주에 무직페라인 내부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레퍼런스로 꼽기에 충분하고, 개인적으로는 빈 여행의 추억을 새록새록 곱씹을 수 있게 해줘서 무척 좋아하는 영상물이다. 


그 외에 잘츠부르크에서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회 영상도 있는데, 협주곡과 달리 소나타는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역시 소나타가 어렵긴 어렵구나 싶었다. 이 분야는 기술적인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음악적 개성과 설득력이라는 점에서 훨씬 강렬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다. 


그렇기는 해도, TV에서만 보던 분을 실제로 영접할 기회가 주어진데다 프로그램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라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다음날 프로그램 구성이 다른 서울 공연도 있지만 환경이 훨씬 쾌적한데다 가격도 보다 저렴한(!) 인천 아트센터 공연을 선택. 아마, 시간과 여유가 되시는 분이라면 서로 다른 프로그램의 공연 모두 관람하신 분들이 분명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은 모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되었다. 이런 연주회를 보기는 처음인데, 특히 월광과 발트슈타인을 실연으로 듣기는 처음이었다. 프로그램 구성상 1부와 2부의 마지막 곡들이 메인 디쉬인 구성. 특히나 발트슈타인의 화려함을 눈앞에서 실제로 듣다니.



피아노 소나타 1번 f단조 op.2-1

피아노 소나타 9번 E장조 op.14-1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27-2 '월광'


인터미션


피아노 소나타 27번 e단조 op.90

피아노 소나타 21번 C장조 op.53 '발트슈타인'


앙코르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3악장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빈의 저녁'(Soirée de Vienne) op.56(그륀펠트 편곡)



전반적인 완성도는 기존에 영상을 통해 익히 봤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멀리 빈에서 이곳까지 오신데다 연세도 있으셔서 과연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실지 살짝 걱정이긴 했는데 이 정도면 대단히 훌륭한 연주였다. 


다만, 전반부 세 곡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좀 답답했는데, 음향이 전반적으로 중저음역대를 중심으로 뭉쳐있어서 답답하게 들렸다. 높은 음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닌데 희한하게 갇혀있으면서 뚫고 나오지 못하는 답답함. 해석도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비교적 빠른 템포 속에 과장되지 않고 담백한 스타일이어서 나쁘지는 않으나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후반부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27번의 1악장은 살짝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2악장 부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나 전반부와 달리 소리가 달라졌다. 답답하게 느껴졌던 고음역이 시원하게 탁 트였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우는 많이 보아 왔지만 피아니스트의 소리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반부에서의 답답한 소리가 연주회장의 음향 탓인가 싶기도 했지만 자리에 변함은 없었으니 후반부에는 손이 완전히 풀려서 연주가 달라진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눈앞에서 보고 들으면서도 내내 신기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들었고 같이 듣던 와이프 생각도 똑같았다. 


덕분에 소리가 달라진 후반부는 훨씬 만족스럽게 잘 들었다. 연주 전반에 걸쳐 약간의 미스터치가 없지는 않았지만 거의 티가 나지 않게 노련하게 잘 넘어갔고 이 정도 나이에 실연에서 이 정도 완성도라면 기술적으로는 거의 무결점의 연주였다. 프로그램이 다르긴 했지만, 46년생이신데, 56년생인 크리스티안 짐머만 보다 컨디션이나 연주의 완성도는 더 훌륭하게 느껴졌다. 분명 짐머만 때 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던 연주회.


음향도 나쁘지 않아서 집에서 편안하게 볼륨이 맞춰진 오디오로 음반을 듣는 것 같은 좋은 소리였다. 전반부의 답답함 때문에 잠시 연주회장의 음향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후반부에 달라진 소리를 들으니 연주회장의 문제는 아니었다. 


객석의 호응은 당연히 열광적이었는데, 앙코르로 비창 소나타 3악장과 빈 왈츠 피아노 편곡 소품을 연주했다. 비창 3악장은 기존 연주회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마지막 곡은 영상물에서도 본 적이 있는 화려한 소품인데, 비르투오소풍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가운데 빈 사람 다운(!) 흐드러진 왈츠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멋진 연주였다. 





사인회도 하셨는데, 줄이 꽤 길긴 했지만 그런대로 신속하게 진행되어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백발이 가득하신데 여전히 사람 좋아보이고 활기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음반을 안 산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피아노 협주곡 영상 블루레이는 애장하고 있어서 사인을 받았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연주 들려주시길. 








결론 - 피아니스트의 소리도 달라질 수 있다는 신기한 경험을 한 연주회였다. 전반부의 답답한 소리는 인천아트 센터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베토벤은 언제 무엇을 들어도 진리라는 점이 결론이었다. 이 날 연주된 모든 곡이 다 좋았다. 역시 베토벤. 구구절절 말이 필요없다.


집에 돌아와 마지막 앙코르 곡을 찾아 보니 예전 텔덱에서 녹음한 음반이 애플뮤직에 올라와 있긴 한데, 연주회장에서 들었던 것 만큼 재밌지는 않다. 워낙 연주회에서 멋지게 들었던 기억이 강한 탓인데, 역시 이런 것이 실연과 녹음의 차이인 듯. 그래도 연주회의 추억을 곱씹기에는 나쁘지 않으니 나중에라도 종종 찾아 들을 것 같다.



슈트라우스 왈츠 편곡집 - 루돌프 부흐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