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 코드 (feat. 생존신고)

일종의 생존신고 같은 포스팅. 그러고 보니 작년은 정말 한 건도 포스팅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2020년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나 자신의 신상에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좋은 일, 안 좋은 일 모두 두루두루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 공존한 한 해였다. 포스팅을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막상 그런 환경이 되니 오히려 더더욱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 것이 희한하다. 

 

작년의 일을 시시콜콜 쓸 수는, 아니, 쓰고 싶지도 않으나 오래간만에 먼지를 털어내고 싶은 마음은 들어 작년에 읽었던 책에 대한 포스팅을 해본다. 

 


트리스탄 코드 - 브라이언 매기

 

 

트리스탄 코드 (바그너와 철학)

브라이언 매기 지음 / 김병화 옮김

 

이 책은, 정말 오래 전부터 책꽂이 꽂혀 있던 책인데, 대략 작년 5월 한 달여간에 걸쳐 드디어 다 읽었다. 물론, 여전히 철학적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롯이 다 이해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얼마 만에 읽었나 싶어 구매 기록을 뒤져보니 무려 7년(!)만이었다. 그만큼 접근이 쉽지는 않은 책이었고 그 7년 사이에 나 자신도 이 책을 읽을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싶다. 7년 전에는 조금 읽다가 이게 뭔가 싶어서 내려놓았는데, 이번에는 여러 대목에서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동감하면서 읽기까지 했으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WAGNER AND PHILOSOPHY'이며, '트리스탄 코드'라는 제목은 나중에 듣기로 미국판 제목이었던 듯. 저자인 브라이언 매기(Bryan Maggee, 1930~2019)는 영국의 철학자인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2019년에 돌아가셨다. 저자 생전에 책을 샀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읽게 되다니.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나 자신 바그너에 대한 인식이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눌 만큼 크게 달라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바그너가 무시무시한 천재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놀라운 천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바그너의 전기를 읽다 보면 쇼펜하우어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전기에 언급한 내용 정도로는 그게 과연 어느 정도의 영향이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가 안 간다. 

 

그야말로 수박 겉핡기 식인데, 그 점에서 철학자이자 바그네리안인 저자는 그 누구보다도 이 주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적임자인 셈이다. 저자의 말대로 유명 음악평론가나 저술가들 중에 쇼펜하우어 철학을 이해하고 글을 쓴 사람이 거의 없고 개념 자체가 어려우니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너무나 당연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전이나 그 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는 서양철학 사상에 대해 깊은 이해는 없는 상황이지만, 이 책 덕분에 쇼펜하우어의 주요 주장이나 개념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나아가 니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니체와의 관계에 대해 전후관계를 자세히 알게 된 점 또한 큰 수확이었다. 

 

아무튼,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바그너 관련 번역서 중에서는 가장 중요한 필독서라고 할 만하다. 물론 다른 모든 책을 다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주제를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다룰만한 저자는 없어 보인다. 

 

이 책 외에는 깔끔하게 한 권으로 잘 정리된 포노에서 출판된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8권 '바그너, 그 삶과 음악'이 딱 좋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책 중에는 바그너를 주제로 한 책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와중에 트리스탄 코드가 번역되어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다. 

 

그래픽은 좀 다르지만 트리스탄 코드와 동일한 바그너 사진

 

이 책 덕분에(?) 그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그너를 보게 되었고, 지금 현재까지 로엔그린 이후의 악극들에 대해 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서 듣고 있는 중이다. 어느 분의 말씀이 바그너를 듣느라 다른 음악 들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바그네리안'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의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 이 책의 영향은 정말 대단한 셈. 

 

내 음악감상 생활에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준 책이 있었을까 싶다.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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