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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concert

국립 오페라단 - 보리스 고두노프 (2017.4.22)

by iMac 2017. 4. 22.


처음 보러 간 오페라


이렇게 쓰면 생전 처음 보러 간 사람처럼 들릴테지만, 그건 아니고 결혼하고 와이프랑 같이 국내에서 오페라를 보러 간 건 처음이라는 것. 연주회는 같이 숱하게 다녔지만 무대공연은 잘 보질 않았고 봤다고 해야 딱 한 번 호두까기 인형 정도. 오페라를 처음 본 건 그래도 작년 빈에 가서 빈 국립오페라에서 본 로엔그린이었다. ( 2017/02/03 - [Travel/europe] - 2016 비엔나 #10 (2016.5.21) - 빈 국립 오페라 (로엔그린)  )


눈과 귀의 기대치는 높아질대로 높아져서 사실 국내 오페라 공연은 그닥 보러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 보리스 고두노프는 어쩐 일인지 와이프가 보러 가자고 해서 가게 되었다. 사실 신기하기도 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라니, 그것도 국립 오페라단에서.





기대 이상의 만족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보고 왔다. 기대치가 '제로'에서 시작해서 그런지(사실 이게 제일 큰 요인인듯) 내가 보고 듣기에는 놀랍도록 잘했다. 제일 먼저 꼽고 싶은 것은 지휘자 스타니슬라브 코차놉스키. 음악을 자연스럽게 잘 다듬어 주고 노련하게 이끌어갔는데, 최상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바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안심이었다.  


오페라 극장에서 자주 공연을 보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콘서트홀보다는 음향적으로 더 만족스러웠다. 이날도 마찬가지. 가수들도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잘해주었다. 주역가수가 교체된다고 해서 살짝 걱정했지만 교체로 들어온 미하일 카자코프 또한 만만치 않게 멋진 목소리였다. 그 외 국내 가수진들의 가창도 훌륭했다. 피멘, 바를람, 미사일, 슈이스키. 모두 놀라운 수준. 마리나 역의 알리사 콜로소바 역시 편안하게 터져나오는 커다란 발성이 듣기 좋았다. 


원전판의 효율적인 관현악 편성을 조잡하거나 복잡하게 손을 본 듯 하면서 결과적으로 허전하게 만들어 버린, 림스키-코르사코프 판본을 사용한 점은 정말 맘에 들지 않았고 군데군데 싹둑싹둑 잘라버린 대목들도 문제긴 한데,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간소화된 상황이어서 실제 공연관람시 지루하지 않게 술술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전곡을 생전처음 아바도판으로 두 번 듣고 공연 보러 간 와이프가 즐기기엔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좋았던 것 같다. 그럼 된거 아닌가? 

2017/04/15 - [Classical Music/music note] - 무소르그스키 : 보리스 고두노프 (아바도)



림스키-코르사코프 판본에 대해 기대를 접고 들으니 영 지루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폴란드 궁정 장면도 그럭저럭 들어줄만 했다. 20세기 초엽 이 작품을 널리 소개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이 판본의 역할을 새삼 실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작품을 받아들이기엔 이 정도로도 충분한 수준이란 말인가? 아직은 이정도 수준으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맨 마지막 여담에서 확인.


스테파노 포다의 연출은 꽤 오래 전에 마스네의 타이스 연출을 보고 진저리를 친 적이 있었는데, 오랜 동안 잊고 지내다가 얼마전 Da.님의 블로그에서 이번 공연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을 접하고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 2009/09/05 - [Classical Music/music note] - 마스네 공부하기 - 타이스 ) 


그래, 그냥 보고 오는데 의의를 두자.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보니 이번 무대는 그럭저럭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의외로 볼만한 정도? 물론 폴란드 장면의 막이 오르는 순간 예전 타이스 무대의 데자뷰가 떠오르긴 했지만. 무엇보다 오페라를 많이 보지 않은 와이프가 의외로 재밌게 봐줘서 안심이었다. 역시나, 그럼 된거 아닌가?? 와이프는 나와 달리 연출가에 대해 아무런 선입견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선입견이 있던 나도 그리 큰 거부감 없이 잘 봤으니 다행이었다.


딱 하나 문제를 꼽자면, 3층에서 봤던 터라 2막의 연출은 3층 객석에서 보기에 문제가 있었다. 2층 구조로 무대를 만든 덕에 3층에서는 아래쪽에 위치한 주막집의 상황이 잘 보이질 않았다. 주무대가 주막집인데, 주막집은 안보이고 (주막집이라기보다는 그냥 공간이었지만) 포다 연출 특유의 슬로우 모션으로 어슬렁 거리는 2층이 주로 보이는 상황은 좀 그랬다. 가짜 드미트리가 도망가는 장면의 연출도 아무 느낌이 없었고. 이 장면에서 잠시나마 스펙타클하고 재기넘치는 역동적인 동선의 연출을 기대했던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싶었다. 그래, 이 사람은 스테파노 포다였어.


결론적으로, 2017년인 지금 현재 시점에 림스키-코르사코프 판본으로 보리스 고두노프를 무대에 올린다는 사실 자체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무대 연출자의 스타일 또한 내 취향은 전혀 아니었지만, 오늘 공연 자체는 충분히 잘 보고 왔다. 전제 조건들은 하나같이 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은 희한한 경험인데, 덕분에 국내 오페라 공연도 나름 핸디캡을 안고서라도 볼만하구나 싶었다. 





여담과 후기 - 오발탄


중간에 살짝 언급했던 여담 한 가지. 초반에 자리에 앉으니 오페라의 'ㅇ'자도 모르는 듯한 주변자리 아주머니들의 잡담에 순간 멘붕이 왔는데, 이런 주변의 상황을 보면서 이게 림스키 판본인지 아닌지, 스테파노 포다가 연출을 했는지 누가 했는지가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다. 


이런 식으로 주변에서 계속 떠들어대면 관람자체를 무사히 할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조금 지나니 나름 사극이라고 자막을 열심히 들여다 보시며 조용해지셨다. 1막 후반에는 더더욱 다행스럽게도 주무시기까지. 어쩌다 오페라를 보러 오셨을까? 그래도, 이게 공연예술계의 현실이구나 싶었다. 이렇게라도 객석이 채워져야 공연이 이루어질게 아닌가? 처음엔 좀 짜증났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생각했다.


아무튼, 3시에 시작한 공연은 6시 조금 넘어 끝났다. 잘 보고 나오니 저녁식사 시간. 돌아오는 길은 교통지옥이었는데, 그 속을 뚫고 '오발탄'에서 저녁식사. 




양대창 모듬을 먹었는데, 가격이 좀 쎈 편이다.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가보기는 처음. 맛도 좋고, 반찬도 정갈하고 맛있고 후식으로 팥빙수까지. 분위기도 친절하고 좋았다. 이런 류의 음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자주 가지는 않을 듯 하지만 가끔은 가볼만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