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라 페니체 극장 실황 - 에바 메이, 미켈레 페르투치 / 마르첼로 비오티 지휘 (Dynamic)
마스네의 타이스라면 당연히 바이올린 곡으로 유명한 '타이스의 명상곡'이 너무나도 유명한데, 정작 오페라 자체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최근들어 -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 마스네야말로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 최고의 작곡가라는 점을 새삼 실감하면서 마농은 물론 그 이외의 다른 여러 작품의 음반을 모으고 들어보려고 생각중이다.
오페라를 익히는데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사람마다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일단 보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위의 DVD. 유명한 이탈리아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연출하고 이제는 어느새 고인이 된 이탈리아의 베테랑 오페라 지휘자 마르첼로 비오티가 지휘한 라 페니체 극장 2004년 실황. 연출이 좀 단촐하고 발레를 많이 생략했다는 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다듬어진 훌륭한 공연이다. 이 작품의 초심자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영상이라면 사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공연 역시 유투브에서 일부 확인이 가능하다. 명상곡 부분을 보면서 이 음악이 이토록 에로틱한 것이었나 싶었다. 마지막 장면은 가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 장면의 프랑스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면 탄호이저의 프랑스판이라 해도 좋겠다.
다소 위선적인 - 그러나 여전히 극적으로는 위력적인 - 결말로 끝맺고 있는 탄호이저에 비하면 마지막 순간에 타이스의 사랑을 갈구하며 절규하는 아타나엘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훨씬 솔직해 보인다. 에바 메이의 가창도 좋고 시종일관 야성적이며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 고뇌하는 면모를 잘 살린 미켈레 페르투치의 가창이 특히 인상적이다.
피치의 연출은 이 작품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간결하게 잘 살려내고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공연의 이야깃거리는 가슴 노출 장면인데 에바 메이의 노출장면은 확실히 이해가 안가는 측면이 있지만 - 그 대목에서 왜 노출이 필요한것인지 이해가 안간다 - 나머지 무용수들의 노출은 대단히 관능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앞서 말했듯 명상곡의 선율과 함께 한껏 관능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걸 보고 나서 이 작품에 한껏 고무되어 음반도 구입했는데, 현재로서는 음반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마스네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 마농이나 베르테르 - 정말 빈약한 상황이다.
르네 플레밍, 토머스 햄슨 / 이브 아벨 (Decca) 1998
이 음반이 어느새 녹음된지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에 순간 깜놀... 아무튼 녹음도 좋고 다 좋은데 아직까지는 DVD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지워주지는 못하고 있다. 토머스 햄슨은 물론 잘 부르지만 이지적인 모습이 좀 아쉽다. 하긴 타이스나 아타나엘이나 모두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줘야 하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타이스는 요부인 전반부보다는 성녀로 죽음을 맞는 후반부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에바 메이나 르네 플레밍이나 다들 후반부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명상곡의 솔로를 오늘날 프랑스의 간판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한 르노 카퓌송이 맡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그만큼 공을 들인 음반으로 추천반이긴 하지만 결정타는 아니라는 생각.
이러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새로 타이스 DVD가 등장했다.
바바라 프리톨리, 라도 아타넬리 / 지안 안드레아 노세다 (Arthaus) 2008년 토리노 실황
DVD시장의 두 번째 타이스인 셈인데, 블루 레이로도 발매된 최신 타이틀이다. 앨범 커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도 흥미로워서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 결과는 정말 아쉽게도 그닥 흥미롭지 못하다.
스테파노 포다의 연출은... 돈이 많이 들어간 것은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지루했다. 음악이나 극의 흐름보다는 '이미지'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이는데 내면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종일관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은 좀 너무했다 싶다. 엑조틱하게 약동하는 관현악과는 달리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가슴을 쥐어 뜯고 싶어질 정도다. --;
대화장면도 대부분 대화의 상대방이나 대상을 보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18~19세기 오페라 극장에서 그렇게들 하다가 바그너등 사실주의적인 연출 경향에 의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보니 좀 특이하지만 분위기가 깬다는 것 외에는 극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역시 재미가 없다. 저 멀리 뒤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무대 앞쪽에 서서 돌아보지도 않고 왔느냐고 반기는 상황이니.. 백미러라도 들려주었으면 좀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
등장인물의 의상, 특히 두 여자 노예들의 의상은 왠지 모르게 비어즐리의 삽화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크게 부풀어 오른 머리 모양이 그런 느낌을 준 것 같다. 그래도 그 둘의 이미지는 가장 볼만했다.
프리톨리는 잘 부르긴 하지만 초반부터 전혀 요부답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표정이 양 미간을 찡그린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요부에서 성녀로 넘어가는 과정이 실감나지 않는다. 시종일관 똑같다는 점은 아타넬리도 마찬가지.
이 공연은 발레를 모두 포함하고는 있지만 역시 별로 재미가 없다. 피치는 한 두명의 무용수들의 가슴을 노출시키며 관능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했지만 이 공연에서는 남녀 공히 평등하게 상반신을 노출하고 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가슴을 노출하니 아무 느낌이 없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발레도 원래 제목인 디베르띠스망과는 거리가 먼 난해하기 그지없는 현대 무용이나 매스게임같다.
음질, 화질 모두 최상급이고 공연이 끝난 후 객석의 반응도 열광적이지만, 영상물로 집에 앉아서 감상하기에는 재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스네의 오페라들은 주로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 상연된 것들로서 프랑스적인 아기자기하며 서정적인 내밀한 아름다움으로 승부하는 작품들인데 이 공연의 거창한 연출은 어찌보면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쓴 것 같다. 음악과 드라마 모두가 거대하고 기이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이미지에 함몰되어 버렸으니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기도 하다. 돈도 많이 쓰고 모두들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결론 - 현재로서는 페니체 극장 실황이 레퍼런스. 영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추천할만 하다. 마젤의 음반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만 왠지 기대가 안되고 이야기로만 들은 루델의 음반은 어서 재발매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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