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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Music/beethoven

베토벤 교향곡 음반열전 #1 - 교향곡 제5번 : 니키쉬/베를린 필 (DG, 1913년)

by iMac 2016. 12. 15.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op.67


아르투르 니키쉬,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1913년, DG)




베토벤 교향곡에 대한 집중적인  나름대로의 정리는 언제고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였다. 언제까지나 마냥 생각만 하고 방치할 수는 없기에 억지로라도 시동을 걸어본다. 


첫 시작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결국은 시대순으로 포스팅해보자는 생각에 니키쉬의 기념비적인 기록을 선택했다. 앞으로 진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시대순으로 쭉 진행할지 시대를 섞어가면서 진행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초창기 5번 교향곡 녹음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 헝가리 출신 지휘자로 베를린 필의 2 상임지휘자였으며 초창기 지휘계의 전설적인 마에스트로였다. 특히나 베토벤 5번 교향곡 베를린 필 최초 전곡녹음이 알려져있다. 


예전엔 니키쉬의 이 음반이 사상 최초의 5번교향곡 녹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니키쉬의 1913년에 앞서 독일 지휘자 프리드리히 카르크(Friedrich Kark, 1869~1933) 오데온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10년의 기록이 있고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다.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자료를 볼 때 마다 유튜브에 놀란다.


아무튼, 최초의 베토벤 5번 교향곡 녹음이 니키쉬/베를린 필 음반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베를린 필 최초의 베토벤 5번 교향곡 녹음이라고 해야겠다. 어찌됐든 1913년이면 1차 세계대전 1년전이다. 유럽이 한창 좋았던 '벨 에포크' 시절의 끝자락 무렵의 소리가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연주와 녹음


이 CD에 표기된 악장별 녹음시간은 1악장 6:41, 2악장 9:44, 3악장 5:30, 4악장 8:54이다. 1악장과 4악장은 짐작대로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놀라운 점은 카르크의 경우 1악장은 반복을 했다는 점인데 니키쉬보다 훨씬 빠른 템포를 취하고 있다. 


과거 녹음들에 있어서 교향곡 제시부 반복여부는 늘 제각각인데 이 음반처럼 깔끔하게 1악장과 4악장 모두 반복을 생략하는 것도 일관성있어 보이긴 한다. 예전 녹음들 상당수는 1악장은 관례적으로 반복을 수행하고 4악장은 관례적으로 반복을 생략하는 것이 대부분. 반복구 문제는 당시의 녹음환경 탓도 있을 수 있다. 나팔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녹음을 해야 하는 초창기 녹음환경에서는 일단 이정도 녹음도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자체가 감지덕지이다.


니키쉬는 당시 독일 양대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평가받았다. 유튜브에는 아주 짧지만 바로 이 녹음이 이루어진 1913년도 무성영상을 볼 수 있다. 여러 다큐멘터리에서도 인용된 영상인데 아주 긴 지휘봉을 쓰면서 대단히 절제되어 있으면서 효율적인 동작과 지긋이 응시하는 눈빛 등 전설의 조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니키쉬는 대단히 절제된 동작을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음반에 담긴 연주도 상당부분 그런 모습이다. 물론 음반 하나를 두고 그 지휘자의 스타일을 단정지어서는 안되므로 이 음반에 담긴 연주에만 집중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연주 자체에 대해 집중하자면, 마치 잘 차려입고 찍은 증명사진 처럼 매우 반듯하고 꼼꼼한 연주라는 인상을 받는다. 1악장의 경우 제시부를 반복했다면 대략 8:30정도의 연주시간. 1악장이 8분대인지 7분대인지 혹은 7분대 초반인지 후반인지만 보아도 템포에 대한 판단은 될 것이다. 1악장 모티브를 꼼꼼하게 꾹꾹 눌러담아 들려준다. 


녹음 특성상 관악기 부분이 대단히 취약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악기간 밸런스를 세심하게 맞춘 지휘자의 손길이 느껴지는 점은 놀랍다. 결코 현악 위주의 연주가 아니이며 악보에 지시된 다이내믹과 미묘한 뉘앙스의 표현에도 소홀함이 없다. 흔들림없이 악곡의 구조를 꼼꼼하게 다듬어가는 장인의 손길을 엿볼 수 있다. 적어도 이 음반에 담긴 연주는 어떠한 경우에도 흥분하지 않고 숲과 나무 모두를 놓치지 않는 명석한 연주이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너무 이지적이어서 짜릿하지는 않다는 점.


앞서 언급한 카르크의 녹음이나 니키쉬의 이 음반이나 녹음은 매우 열악하다. 시종일관 자글자글 비내리는 소리는 기본으로 감수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니키쉬쪽이 좀 더 듣기 편안한 소리이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런 류의 음반을 들어보지 못한 분이라는 처음 듣는 순간 대단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제는 유튜브나 애플뮤직을 검색해 보면 아주 쉽게 찾아들을 수 있으니 굳이 음질도 열악한 음반을 사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음반은 일본에서 로컬 발매된 것으로 HM-CD라고 표시되어 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여러가지 고음질 포맷 CD인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실제로 듣기에 나쁘지 않다. 일본제작 음반 특유의 미묘한 손질이 가해진 느낌인데, 같은 녹음의 다른 음원에 비해 아늑하고 따스한 소리여서 지글거리는 히스음 속에서도 전곡을 끝까지 훨씬 수월하게 감상하게 해준다.


카르크의 녹음은 5번 교향곡 ‘최초 녹음’이 분명하고 니키쉬의 것보다 훨씬 스피디한 움직임이긴 하나 녹음상태와 연주 자체의 완성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그 무렵에도 이미 지휘자 마다 템포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토벤 교향곡 디스코그래피의 첫장을 여는 소중한 기록으로 의미깊은 음반이다.